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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게읽기/A painful case

가슴 아픈 사건

by 은지용 2022. 11. 5.


2022년 10월 한달 간 제임스 조이스의 단편 <가슴 아픈 사건>을 읽었다.

V-club 선생님이 텀블벅 펀딩으로 발행한 프로그램의 일환이었다. 매일 아주 짧은 분량 - 10줄에서 20줄 내외- 원서를 읽고 녹음하고, 생각하고, 되짚어보고, 짧은 느낌이나 생각을 톡으로 나누고, 그러면서 또 되짚어보게되는 프로그램이었다. 한 방에 10명 내외의 사람들과 함께 했다.

마지막 챕터를 읽고 제임스 더피의 완벽한 침묵과 어둠 속에 함께 잠길 때 즈음이 할로윈이었고,

이태원 참사 사건이 발생했다.

'가슴 아픈 사건'이란 단어로 담아낼 수 없는 일.

소설 속 신문기사와 그 제목처럼, 당사자에게는 저 단어와 문장으로 닿지 않는 슬픔, 분노, 허망함, 안타까움, 그리움이 있을 것이나. 나로썬 그 근처도 갈 수 없을 것이다.

더피씨의 슬픔, 분노, 허망함, 안타까움, 그리움 그리고 절망에 누구도 함께 할 수 없었던 것처럼 말이다.

<가슴 아픈 사건>을 보고 난 직후 나에게는 이런 화두가 와닿았다: 군중, 도덕, 양심, 통제.

사람이 그렇게 많은 광경은 대한민국 도시에 사는 사람들에게는 매우 흔한 모습일 것이다.

나의 첫 출근일을 생생히 기억한다. 평일 아침 그 날, 서울대입구역에서 사당역을 가기 위해 지하철을 얼마나 기다렸는지. 사람이 너무 많아서 못 타는 줄 알고, 열차를 몇 편을 안타고 보냈는데 자꾸 더 많아지는 사람들. 어찌저찌 밀려서 탔더니, 사당역에서 밀려드는 사람들로 인해 내리지 못했다. 물론 곧 적응해서 어떻게든 낑겨 타고, 내릴 땐 사람들 무리에 편승해서 힘 주면서 빨리빨리 밀고 나가게 됐었지.

평일 아침 8시 30분 지하철 2호선 사당역, 신도림역. 연말연시 저녁 10시 2호선 강남역, 1호선 종각역. 지하철 타고 서울 출퇴근 해본 사람치고 어마어마한 인파와 밀침, 밀림을 경험해보지 않은 사람이 어디있을까. 한강불꽃축제, 월드컵 응원 거리전...대한민국에서 우리 중 하나로 살기 위해 습득하게되는 기술 중 하나가 군중이 되는 것이다.

나 역시 그 현장에서 "밀어 밀어"를 외치는 사람들 중 하나였을 수도 있고, 사람들 사이에 끼어 숨 못쉬고 쓰러진 사람일 수도 있었다. 이게 나의 마음을 너무 불편하게 한다. 악마는 내 안에, 아니 우리 안에, 군중 안에 있구나 싶었다. 순식간에 그렇게 많은 사람을 쓰러뜨릴 수 있다니. 특별한 무기도 없이. 몸뚱아리만으로.

다음날 아이들이 어디선가 사고가 났다해서 왜 이번 할로윈에 'trick or treat'을 하면 안되냐고 되묻는 모습을 보면서 또 섬뜩했다. 사건 당시 인근에서 무슨 일이 일어난지 모르고, 알아도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술자리를 지속하며 '나의 즐거움'에 탐닉하는 사람들 모습에, 그 또한 나의 모습도 있을 수 있겠구나 싶었다.

그런 무관심과 다른이의 고통에 지독하게도 공감하지 못하는 광경에서 자연스럽게 '지옥'을 떠올리게 된다.

그 자리에서 허망하게 쓰러져간 많은 이들이 너무나 어리고 젊어서 더 안타깝다.



단편소설집 <더블린 사람들>을 출간한 이유에 대해 제임스 조이스는 "나의 의도는 우리나라 도덕사의 한 챕터를 쓰는 것이며, 더블린을 선택한 이유는 더블린이 마비(paralysis)의 중심(center)인 것 같아서다"라고 말했다고 한다.

지금 저 말을 조금 바꿔보고 싶다 :

"나의 의도는 우리나라 도덕사의 한 챕터를 쓰는 것이며, 서울을 선택한 이유는 서울이 마비의 중심인 것 같아서다."

<가슴 아픈 사건>에서
에밀리 시니코의 죽음에 누구도 비난받지 않았지만.
제임스 더피는 그녀의 죽음에 대해 유죄다.

현실 속 이태원 참사에서는
누가 과연 비난의 중심에 설지 모르겠지만.
어쩌면 군중 속에서 한 번이라도 내 자리를 지키기위해 힘을 줘본 사람이라면 모두 유죄 아닐까.

보행자 만이 아니다. 도로에서 자동차 양보 안해주거나 얌체 끼어들기 해본 사람, 그들 모두 유죄가 아닐런지. 다른 사람의 고통이나 불편함보다 나의 현재가 더 중요한 적 있는 사람이라면 모두 유죄다.

우리는,
나는, 유죄다.



** 다음날 식당에서 그 동영상을 틀면서 이 사람 표정이 변한다고 걱정하는 말투로 얘기하는 사람들. 그러면서 비난의 대상을 물색하는 모습에서 나는 욕지기가 치밀었다. 저 동영상을 우리가 밑반찬이나 디저트로 볼 자격이 있는가.
** 물론 당국의 책임회피 모습도 비겁하기 짝이 없다. 재발방지 대책 필요하다. 어느 정도의 통제도 필요하다. 그런데 얼마나 통제가 필요한지는 모르겠다. 군중은 왜 꼭 통제되어야 하는것일까. 나는 통제받기 싫은데.
** <가슴 아픈 사건>의 가슴을 후벼 파는 문장들을 기억하고 싶어서, 이 책이 오늘을 사는 누군가의 일기같단 생각에, 결국 나를 탐닉하는데 필요하기에 쓴다. 누군가에게는 정말 말도 못할 사건을 끄적여놓는 것에 죄스러운 마음이 든다.
** 다음날 지하철에서 사람들이 조금 덜 밀었다는 기사를 봤다. 희미하게나마 희망이 느껴지는 것도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