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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기일기/늘푸른지20

상추곡, 가을색 짙은 정읍에서 산과 들에 노을이 들었다. 밤이 오기 직전 화려한 색을 태우는 노을같이, 겨울을 예감하는 가을 들은 온갖 열매와 잎으로 노랗고 붉은 물이 들었다. 전북 정읍은 가을색이 유난히 곱기로 이름난 곳. 붉은 내장산, 구절초 흐드러진 소나무 동산, 황금물결 일렁이는 논 바다, 그리고 명망 높은 선비와 무명 농민의 흔적이 진하게 각인된 곳이다. 전북 정읍은. *내장사의 아침 우물이 많아 정읍이라 했다 한다. 동진강, 섬진강을 아우르고 있어 그런가, 집집마다 우물을 파면 물이 나왔다고 전해진다. 풍부한 물에 김제로 이어지는 평야와, 내장산으로 대표되는 산간지역을 끼고 있어 예부터 식재료가 풍부한 지역이기도 하다. 내장산 아래 오래된 여관에서 운영하는 식당에 들렀다. 소박한 이곳의 추천메뉴는 산채정식. 역시나 소박한 .. 2011. 11. 10.
이천 복숭아 농장의 하루 복숭아. 예부터 어여쁜 배우자의 상징이자, 신선들의 회동에 빠지지 않는 과실였다. 그 중에서도 황도는 말랑한 과육과 최고의 단맛으로 복숭아철의 대미를 장식한다. 9월이 다 지나가고 마지막 더위가 성질을 부릴 때 즈음, 수확이 한창인 황도를 찾아 경기 이천의 한 농장을 다녀왔다. 미리 말해두는데, 이번 달 여행기는 실상 여행이라기 보다 노동의 기록에 가깝다. * 토라지고 다치기 쉬운 복숭아 사람의 인연이란 참 묘해서, 어쩌다 경기 이천의 한 작은 복숭아 농장에 연고가 생겼고, 그곳에서 일품을 팔게 됐다. 농사에 신통방통해 보이지 않는 나에게 맡겨진 일은 그저 무게에 따라 선별된 복숭아를 상자에 넣기이다. 그러나 과육이 무르고 쉽게 멍드는 황도를 상자에 넣어 포장하는 것이 말처럼 쉽진 않다. 황도 수확에는 .. 2011. 10. 18.
사과 오미자 익는 문경 제법 가을분위기가 나는 높고 파란 하늘. 그 앞에 펼쳐진 산세가 힘차다. 유유자적 흐르는 영강은 오후의 햇빛을 받아 강가에서 오수를 즐기는 사람들마저 반짝반짝 빛나게 한다. 고모산성 진남교따라 놓인 옛 철길은 한가하고, 마을마다 사과와 오미자가 빨갛게 익어간다. 가을 초입에 선 경북 문경의 풍경이다. @ 사과, 오미자 익어가는 마을로 아까부터 자꾸 하늘을 올려다보게 된다. 평지로부터 번쩍 솟은 주흘산, 조령산, 운달산이 시선을잡는다. 운달산 주변 쪽빛 하늘 위로 오색의 패러글라이딩 낙하산이 미끄러진다. 햇빛은 따갑지만 높고 푸른 하늘에 마음이 상쾌하다. 901번 도로, 문경읍에서 동로면으로 넘어가는 길을 달린다. 창을 열고 바람을 맞으며 가는 길. 집이나 사람보다 논, 논보다는 사과나무가 더 눈에 띈다... 2011. 10. 18.
경기 광주 여름 빨강 지긋지긋한 장마가 끝나고 폭염이 시작됐다. 한여름이다. 충분한 습기와 뜨거운 햇빛을 머금은 자연의 녹색은 그 세가 절정에 올랐다. 한강에 비친 경기도 광주도 무서운 기세의 녹음이 장악했다. 그 기세만큼이나 농산물 간이 가판대도 도로 곳곳의 빈틈을 채웠다. 생명력 넘치는 녹색에 한창 철 맞은 광주 토마토의 빨강, 그리고 조선왕실 백자를 굽던 분원도요지의 말 없는 하얀 빛이 더해져, 지금 광주는 다채롭기 그지 없다. (이 글이 게재된 때는 7월말 8월초였으니..) # 가판대 위 빨간 토마토 이맘때 광주의 가판대는 토마토 철 막바지를 맞아 빨갛게 물든다. 서울에서 가까운데다 맛집군락과 나무가 우거진 운치있는 드라이브 코스로 이름난 남한산성 길. 아침까지 흩뿌린 비로 박무 낀 길 따라 경기도 광주로 넘어가니, .. 2011. 10. 18.
초여름 괴산, 산 높고 물 높은 유월치고 무지막지하게 더웠던 그 날, 볼일을 마치고 한밤중이 돼서야 괴산 길목에 들어섰다. 굽이 굽이 휘어진 길을 따라 고개를 넘었다. 곡선의 정점에서 '느릅재 해발 몇미터'라 적힌 표지판을 봤다. 느티나무의 고장, 충북 괴산에 들어선 것이다. 바람결에 그 흔한 고추냄새가 실리기에는 조금 이른 계절이었지만, 깊은 계곡으로부터 불어오는 초록빛 바람내는 얼핏 맡아본 것도 같다. # 속세를 떠난 산 속 아홉 골짜기 속리산(俗離山). 속세를 떠난다는 산은 충북 괴산에도 그 한 자락을 내줬다. 그리고 산은 그렇게 청천면 화양동 계곡에 아홉 절경을 흘려놓았다. 일명 '화양구곡' 그 명칭은 사람이 붙인 것이지만 그 모습은 기실 사람의 것이 아니다. 물길 저편에 하늘을 떠받친 듯 서 있는 '경천벽'이 그러하고. 깨끗한.. 2011. 7. 10.
쑥내 풀풀나는 단오절 강화 음력 5월 5일은 한 해 중 양기가 가장 세다는 단오다. 올해는 유월 초에 단오가 들었는데, 예부터 단오는 청포물에 머리감고 그네뛰고 씨름하는 것 외에 쑥을 뜯어 말리는 날이기도 했다. 사방천지에 흔한게 쑥이건만, 이것이 여행의 소재가 되는 지역이 있으니, 강화군이 그 곳이다. 요즘 강화는 향내 풀풀나는 쑥과 기름기 잘잘 밴 밴댕이가 철이다. # 아주 특별한 농업기술센터 강화군은 이름난 관광지다. 고인돌 유적에, 첨성단이 있는 마니산도 있고, 초지진 등 조선시대부터 명성을 쌓아온 안보유적지도, 낙조로 유명한 석모도 등 여행거리가 많다. 이 가운데 최고 놀라운 여행거리는 단연 농업기술센터가 아닐까. 강화의 특별한 농업기술센터는 이름도 범상치 않다. 이름하여 '아르미애월드'. 강화군 불은면 중앙로에 위치한 .. 2011. 7. 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