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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기일기/늘푸른지

사과 오미자 익는 문경

by 은지용 2011. 10. 18.

<2011. 9. 문경>

제법 가을분위기가 나는 높고 파란 하늘.
그 앞에 펼쳐진 산세가 힘차다.

유유자적 흐르는 영강은
오후의 햇빛을 받아 강가에서 오수를 즐기는 사람들마저 반짝반짝 빛나게 한다.

고모산성 진남교따라 놓인 옛 철길은 한가하고,
마을마다 사과와 오미자가 빨갛게 익어간다.

가을 초입에 선 경북 문경의 풍경이다.





@ 사과, 오미자 익어가는 마을로

아까부터 자꾸 하늘을 올려다보게 된다.

평지로부터 번쩍 솟은 주흘산, 조령산, 운달산이 시선을잡는다.
운달산 주변 쪽빛 하늘 위로 오색의 패러글라이딩 낙하산이 미끄러진다.

햇빛은 따갑지만 높고 푸른 하늘에 마음이 상쾌하다.

901번 도로, 문경읍에서 동로면으로 넘어가는 길을 달린다.
창을 열고 바람을 맞으며 가는 길.
집이나 사람보다 논,
논보다는 사과나무가 더 눈에 띈다.
문득 ‘추운가?’ 싶어 창문을 올리고 있는 내 자신을 보며, 가을이 시작됐음을 실감한다.

하지만 계절이 익으려면 시간이 더 필요한 듯 하다.
길 따라 늘어선 사과밭이 아직 빨갛게 물들지 않았기 때문이다.
볕이 유난히 잘 드는 어느 유난한 나무는 샛빨간 사과를 달았지만서도, 대부분이 아직 아오리마냥 초록빛이다.

지역 농산물 소득액의 약 20%를 차지할 정도로 사과는 문경의 주요작물이다.
문경에는 이 사과만큼이나 유명한 초가을 작물이 있다.

오미자!
오미자가 어떻게 자라는지 궁금하기도 해서 경북 문경행을 택했다.

여우목이란 해발 600여미터 고개를 넘어가니 주변은 온통 사과로부터 오미자로 바뀐다.


사과보다 작은 키에, 어찌보면 촘촘하고 몸집이 작은 포도처럼 보인다.
여우목 바로 아래에 오미자체험마을이 있다.




올해 오미자는 그러나 추석 이후에나 수확이 가능한 모양이다.
부족한 일조량 탓에 붉은색이 농염해지기 전이다.

에라 모르겠다,
체험마을 한 가운데 있는 마을 평상 위에 누워 나뭇잎 흔들리는거 구경하고,
낮잠 좀 청하다
마실나온 어느 할머니와 시덥잖은 잡담이나 나누다 왔다.


@ 문경새재 아래에서


문경 오미자는 여우목 넘어 재배단지에 가야만 볼 수 있는 게 아니다.
대표적 관광지, 문경새재 도립공원 밑둥에서도 흔하게 볼 수 있다.

길게 늘어선 노점상에선 오미자 주스를 번데기만큼이나 흔하게 팔고 있다.
번듯한 건물의 오미자 체험관도 있어, 문경 오미자에 대한 간단한 소개와 함께 다양한 가공품을 판매중이다.

체험관에서 새콤 달콤 쌉싸름한 오미자 주스를 한 잔 사 들었다.
다섯가지 맛이 난다는 시원한 오미자를 마시며 문경새재 길을 걸었다.

이 길로 말하자면, 옛 선비들이 공무원 시험치러가는 길로,
입신양명의 뜻을 지닌 영남의 선비라면 대부분이 이 곳을 지났을 것이다.


주흘산 바로 아래 제 1관문에서 조령 제 3관문까지의 코스는 그리 힘들지 않다.
계곡을 따라 난 길은 평탄한 편에, 이것저것 구경하고 쉬어가기 좋게 가꿔졌다.

과거를 치르러 가는 옛날 분위기를 살려
주막을 재현해 놓거나, 작은 마을을 만들어 두기도 했다.
마을에는 실제 소와 돼지가 있는 외양간까지 있다.

맨발로도 걸을 수 있게 조성됐음은 물론, 작은 연못에 발 담가 쉴 수 있는 쉼터도 마련됐다.
가족단위 나들이 장소로 손색이 없다보니,
아이들이 여기저기 쉼터마다 뛰어다닌다.
제1관문 들어서기 전 개울가 옆에는 아예 텐트를 치고 휴일을 즐기는 가족도 보인다.


KBS 사극 촬영장도 색다른 볼거리 중 하나다.
이 날 마침 촬영이 있는지, 한 무리의 보병 엑스트라와 군마 여럿과 마주쳤다.
무명씨들의 행진에 시간을 거슬러 온 듯한 착각이 든다.
주변의 시끄럽던 아이들도 잠시나마 조용해졌다.






@ 옛 철길 옆에서



장담컨대, 문경새재 도립공원에서만 하루를 다 보낼 수도 있다.
하지만 그 외에도 문경에는 석탄박물관이나 철로자전거 타기와 같은 이색 체험거리가 있다.

철로자전거는 아침일찍 표를 사둬야할 정도로 인기가 높다.
개인적으로는 고모산성 주변 걷기를 추천한다.

특히 진남교 주변의 옛 철길 따라 걷기가 좋다.


차는 진남휴게소에 세워두면 된다.
바로 옆에 미니 자동차 경주를 할 수 있는 카트장이 마련돼 있어 경관을 해치고 소음을 발생시키지만,

조금만 지나면 완전히 다른 세상에 진입한 듯 오래된 철로가 나온다.

잡초가 무성한 철길 한 쪽 끝에는 버려지다시피한 터널이 까만 입을 벌리고 있다.
약주를 드신 듯 아저씨 한 분은 철로에 누워 낮잠까지 자고 있다.

여기서 멈추지 않고 고모산성까지 오르면 진남교반 일대의 서정적 풍경을 조망할 수 있다.
물론 산성에 오르지 않고 철교를 따라 영강을 건너보는 것도 색다른 재미와 풍광을 보여준다.

강 한가운데쯤 멈춰 다리 위에서 주변을 둘러보니,
강 아래로 고무보트를 타고 래프팅 하는 사람들이 지나간다.


낚시하는 사람들, 물장구 치며 노는 아이들과 그냥 평상에 누워 쉬는 사람들이
햇빛을 받아 반짝반짝 빛난다.

오랜 세월 동안 이 모든 풍경을 품고 문경을 휘돌아온 강의 여유로움을 본 듯도 했고,
그 여유에 내 마음도 반짝반짝 빛나는 듯 했다.



</늘푸른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