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길게읽기/걸리버여행기7

오이, 땀, 똥 : 텃밭에서 하는 뻘생각 농장 텃밭에서 오이를 땄다. 점심으로 먹을 것이다. 유월의 햇빛과 비, 바람은 텃밭 채소를 아주 맛있게 키워낸다. 차가운 지하수로 씻어낸 오이를 대충 잘라서 하나 날름 집어먹었다. 달다. 아삭거린다. 걸리버 여행기에서 어느 학술원 학자가 연구했던 '오이에서 햇빛 추출하기 실험'이 생각났다. 햇빛은 달고 아삭거리는 것일까. 짬을 내서 이천 농장에 왔다. 한 참 복숭아 봉지를 씌워줄 때이다. 복숭아에 종이봉지를 씌우면 벌레 먹는 것도 방지하고, 복숭아가 햇빛을 받아 새빨갛게 변하는 것도 막는단다. 시장에서 잘 팔리는 복숭아는 크고, 벌레 먹지 않고, 붉은색보다는 노란빛이 도는 것이라 그렇게 한다. 유월말 시작되는 장마 전까지 봉지 씌우기를 마쳐야 한다. 땀이 난다. 한낮의 기온이 꽤 오르고 햇빛이 따갑다. .. 2024. 6. 9.
17세기 영국 조너선 스위프트 1667년생. 걸리버 릴리펏 도착 1699년. 브롭딩낵 1703년, 라퓨타 1707년. 마지막 여행지 후이늠을 떠난 것은 1715년. 걸리버 여행기가 출간된 것은 1726년. 스위프트 나이 60쯤이었습니다. 60에도 이렇게 뾰족했군요... 17세기 영국은, 어휴, 말도 못 했어요. 제가 그 시대 거기 살았다면. 목숨 부지하기도 힘들었을뿐더러, 살아있어도 너무 피곤할 것 같습니다. 왕권을 잃지 않으려는 왕과, 서서히 부와 세력을 키워간 상공인 젠트리 계층, 그리고 가톨릭도/ 영국 국교도/ 초월하고 싶은 청교도/ 간의 이합집산 및 대립이 지속됐거든요. 그것도 아주 과격하게요. 1600년대의 시작은 제임스 1세 왕부터 시작합니다. 가이 포크스 이야기로 (영화 브이 포 벤데타 모티브) 대표되는 .. 2024. 6. 1.
거짓말과 과식 걸리버의 마지막 여행지는 후이늠의 나라입니다. 걸리버의 유토피아죠. 후이늠은 말입니다. 그냥 말이 아니고, 생각하고, 말하고, 가진 것을 나눌 수 있고, 무릎과 발굽을 써서 바늘에 실도 꿸 수 있는 말입니다. 후이늠~이란 단어도 어쩐지 말 울음소리랑 비슷한 것 같아요. 히히힝~후이늠~푸~~~ 걸리버가 전하는 후이늠들은 고귀하기 이를 데 없습니다. 우정과 박애를 추구하며 먼 곳에서 온 후이늠을 차별하지 않고, 정중하며 품위 있지만 격식을 따지지 않습니다. 자식을 맹목적으로 사랑하지 않으며 전적으로 이성이 지시하는 바에 따라 행동한다고 합니다. 그리고 이 이성은 이것저것 따질 필요 없이 거의 본능적으로 알 수 있는 옳은 것이었습니다. 이를테면 양심 같은 것이요. 그들 사이에서 이성은 우리처럼 어떤 문제의 양.. 2024. 5. 9.
거인국 속 소인의 자세 "키 작은 게 나빠?" 저희 둘째의 말이었어요. 유치원에 다닐 때였나. 그맘때 아이들에게 늘 하듯 '잘 먹어야 키가 쑥쑥 큰다'라고 했는데. 아이가 곰곰 생각하더니 진지한 얼굴로 되묻는 거예요. 키 작은 게 나쁜 거냐고. 저는 키가 작습니다. 대한민국 여성 평균 신장에 크게 못 미칩니다. 그렇다고 제가 키 때문에 나쁜 인간이 되지는 않는 것 같아요. 다만 좀 불편합니다. 만원 지하철 속에서, 사람들 아래에 파묻히면 공기가 더 답답하거든요. 어디선가 방구냄새가 풍겨오면 정말 괴롭습니다. 큰 사람들은 알기 힘든 디테일이죠. 북유럽 여행 중에 키가 2미터 50은 되는 듯한 거대하고 건장한 노숙인을 보고 내심 두려워했던 기억도 납니다. 분명 같은 인간이지만 같지 않았습니다. 그가 머리카락과 수염을 휘날리며 걸어.. 2024. 4. 12.
계란 까는 방법 삶은 계란 어떻게 까 드시나요? 저는 삶자마자 찬물에 담가서, 살짝 비어있는 쪽으로 깨뜨려 먹습니다. 어떤 때는 갸름한 쪽, 어떤 때는 둥근 쪽이 비어있던 것 같아요. 에 나오는 소인국, 릴리펏에서는 갸름한 쪽부터 깨 먹습니다. 현 황제의 할아버지가 관습대로 둥근 쪽으로 깨뜨려 먹다가 다친 일이 있었다 합니다. 그 일이 있고나서 황제는 칙령을 내려 신민들이 반드시 갸름한 쪽부터 깨 먹도록 했습니다. 옆 나라 블레푸스쿠는 여전히 둥근 쪽으로 먹고 있어 서로 전쟁 중이고요. 책을 보면서 웃음이 났습니다. 저는 계란 개신교 찬물정파인가? 동시에 혹시 내게도 저런 어처구니 없는 지점이 있나 싶어, 간담이 서늘하기도 했습니다. 영국 역사에서 헨리 8세가 아내 캐서린 말고 다른 여자, 앤 불린과 결혼하고 싶은데 종.. 2024. 4. 10.
밋밋하고 만만한 첫 문장 안녕하세요?! 책 모임 진행을 맡은 쟝입니다. 책 모임은 끼기만 했지만 이렇게 시작하는 말을 꺼내는 것은 처음이네요. 모든 것에는 시작이 있다지요. 읽고 싶었던 책, 설레는 마음 일으켜 용기를 내봅니다. 아마 저 뿐 아니라 같이 읽으러 온 분들도 첫날이라 떨릴 수 있을 듯요. 걸리버는 이런 떨리는 마음 별로 얘기하지 않습니다. 아주 담담하게 얘기를 풀어가지요. 자신의 감정에 적당한 거리를 두고 있달까요. 인생은 멀리서 보면 희극,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란 말이 있지요. 걸리버 여행기가 풍자 소설로 손꼽히는 것은 이 특유의 거리감에서 출발할지도 몰라요. 이번 주 읽을 릴리펏은 심지어 스케일이 다른 소인국. 가까이하려야 가까이하기 어렵습니다. 소인국의 삶을 거인의 시선으로 보게 됩니다. 산 위에서 세상 내려다.. 2024. 4.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