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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강머리 앤2

빨강머리 앤 「누가 이런 아이를 집에 두고 싶어할까?」 앤이 못마땅했다. 앤은 감수성 넘치고 들뜨기 잘하는 아이였다. 내가 앤을 만난 것은 책 보다 TV시리즈가 한참 먼저다. 주근깨 빼빼 마른 빨간 머리 앤. 만화는 재미있게 봤는데 캐릭터는 사실 별로 마음에 안 들었다. 앤의 식탁을 차리고 호들갑 떨며 좋아한 마당에 고백하자면, 그녀 특유의 소란스러움, 수선스러움이 참 불편했다. 앤의 상상 속 새하얀 결혼 드레스에 대한 환상에는 속마저 거북했다. 비교적 모범생인 시절에 TV를 봐서일까. 그 정서적 널뛰기와 아름다움의 추구, 되바라진 말투와 지나친 수다가 만연하는 사회는 지양해야 한다고 느꼈다. 그런 것은 피해야 할 사회악 중 하나라고 받아들였다. 아마 나는 꽤나 억압된 여자아이였던 것 같다. 다 업보다. 뒤늦게 결혼하여 태어난 첫째가 엄청난 감정증폭기였다. .. 2023. 6. 2.
앤의 식탁을 차렸다 *여행가방을 끌다 여행 가방을 끌고 있다. 덜덜 덜덜. 지름 3cm 정도의 바퀴 2쌍이 가방을 받치고 있다. 손잡이를 잡은 오른쪽 손목에 아스팔트 길의 오돌토돌한 표면이 그대로 전달된다. 작고 작은 아스팔트의 산을 넘고 넘어 앤의 식탁을 차리러 가는 길이다. 진동이 온몸을 울린다. 가방이 점점 무거워진다. 목적지는 이수역 인근 하나교회 공유주방. 처음 가 보는 곳이다. 우연히 인연이 닿은 곳이다. 교회라니까 오늘 앤 식탁의 초청객인 '마을에 새로 부임한 앨런 목사 부부'가 자연스럽게 연상된다. 식탁은 어떻게 차려질까. 어떤 시공간이 될까 기대 반 걱정 반이다. 그날의 앤처럼. 집에서 나왔을 때에는 가뿐했다. 버스정류장까지 이어진 길은 한적했다. 4월의 좋은 날 오후 6시, 완만한 각도의 햇빛에 기분이 유.. 2023. 5. 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