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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지작가/고전문학 속 음식 그리고 수다

엄지살롱의 식탁

by 은지용 2023. 5. 26.

 
 
 
오후의 살롱 안은 
 
책으로 가득 차 있었다. 프랑켄슈타인, 달과 6펜스, 데미안, 지킬 박사와 하이드 씨의 기이한 사례, 고리오 영감 ...  오래전, 그러니까 적어도 70년 전 초판이 나온 고전 문학이다. 책 페이지마다 누군가의 손길이 머문 흔적이 있다. 천천히 읽고, 쓰면서 읽고, 바꿔 읽고, 여러 번 펼쳐 본 흔적이다. 책이 테마인 살롱이다. 한 권을 골라 색 테이프가 붙은 부분을 눈으로 따라갔다. 
 
 
 
 

오후의 태양 빛 안에서 시간은 잠이 든다.
Time has fallen asleep in the afternoon sunshine.

<Farenheit451> Ray Bradbury

 
 
<화씨 451>의 한 구절. 책이 혼란의 근원으로 지목된 세상, 책을 단속하고 불태우러 나간 몬태그가 자기 어깨 위로 쏟아지는 책들 가운데 우연히 마주한 문구다. 상상 속 엄지살롱에도 책꽂이 사이의 창문을 통해 늦은 오후의 너그러운 햇살이 들어온다. 천장 통창에는 초저녁 석양의 붉고 푸른빛이 비친다. 일상을 내려놓고 오래된 책을 기웃거린다. 이곳 살롱에도 시간이 잠든 듯하다. 
 
한가운데 커다란 테이블이 있다. 테이블에는 노트와 펜, 잉크병, 유리문진이 놓여 있고. 그 옆에 접시와 포크, 테이블 매트가 가지런히 정리되어 있다. 이곳에서는 읽은 책에 대해 쓰고, 떠들며, 나눈다. 교류한다. 살롱의 엄지작가들은 여기에 하나를 더 한다. 문학 속 식탁을 재현하고 먹는다. 글이 실재토록 한다. 그들이 이 곳에서 음식을 하고 떠들 때 시간은 깨어난다.
 
어쩌다 엄지살롱에 오게 되었더라. 인문 고전 원서를 천천히 읽는다는 책모임에 갔다가, 톡으로 단상을 던졌고, 그게 쌓이고 쌓여서 글이 되었고, 같이 더 써보자는 목소리들이 있었다. 그래. 그 첫 모임이 2022년 12월. 그렇게 흘러가고 있다. 첫 식탁으로 <빨강머리 앤>을 재현했고, 바닐라액이 빠진 레이어케이크를 먹으며 신나게 웃었다. 이게 2023년 5월 9일. 지금은 유월을 며칠 앞두고 있다.
 
 
나는 지금 엄지살롱에 있다.
 
 
어쩌다 엄지살롱을 기웃하게 된 그대. 들어와 먹어라. 읽고 떠들고 쓰고 먹자. 아주 오래된 이야기에서 전하길, 신이 천사를 통해 엘리야라는 어느 지칠 대로 지친 인간에게도 그 비슷한 말을 했다고 한다. 일어나 먹으라고. 에너지 덩어리 조르바도 먹기 전엔 춤추지 않았다. 고리오 영감이 죽은 직후에도 저녁식사는 이어졌다. 우리도 먹는다. 갈 길은 어차피 멀다.
 
 
 
 

일어나 먹어라, 당신 갈 길이 멀다.
Arise and eat, because the journey is too great for thee.

1 Kings 1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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