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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지작가/고전문학 속 음식 그리고 수다

앤의 식탁을 차렸다

by 은지용 2023. 5. 21.

 

 

*여행가방을 끌다

 

 
여행 가방을 끌고 있다. 덜덜 덜덜. 지름 3cm 정도의 바퀴 2쌍이 가방을 받치고 있다. 손잡이를 잡은 오른쪽 손목에 아스팔트 길의 오돌토돌한 표면이 그대로 전달된다. 작고 작은 아스팔트의 산을 넘고 넘어 앤의 식탁을 차리러 가는 길이다. 진동이 온몸을 울린다. 가방이 점점 무거워진다. 목적지는 이수역 인근 하나교회 공유주방. 처음 가 보는 곳이다. 우연히 인연이 닿은 곳이다. 교회라니까 오늘 앤 식탁의 초청객인 '마을에 새로 부임한 앨런 목사 부부'가 자연스럽게 연상된다. 식탁은 어떻게 차려질까. 어떤 시공간이 될까 기대 반 걱정 반이다. 그날의 앤처럼. 
 
집에서 나왔을 때에는 가뿐했다. 버스정류장까지 이어진 길은 한적했다. 4월의 좋은 날 오후 6시, 완만한 각도의 햇빛에 기분이 유쾌했다. 아이들 저녁식사를 남편에게 맡기고 나오니, 진짜 여행 가는 기분도 들었다. 가방을 들고 버스에 올라탔다. 앞쪽의 이런저런 배려석을 지나쳐 뒤쪽 좌석으로 갔다. 자리에 앉으려니 가방이 좌석 하나를 더 차지하거나 복도를 완전히 막는다. 곤란하다. 어찌어찌 자리를 잡았다. 한 손이나 한 다리로 번갈아가며 가방을 붙잡았다. 가방이 앞으로 굴러가서 누군가와 부딪히면 더 곤란할 테니까. 조금 불편하지만 여전히 기분이 좋았다. 이것도 경험이다. 이어폰을 꽂고 음악을 들었다. 음악 제목은 루도비코 에이나우디 '익스피어리언스 experience'.
 
 

젤리는 노랑이랑 빨강, 두 종류를 준비하고, 생크림이랑 레몬 파이랑, 체리 파이도 있어. 쿠키 세 종류랑 과일 케이크도 만들었고, 아주머니가 목사님 내외분을 위해 특별히 그 유명한 노란 자두잼도 덜어놨어.
p.304

 
 
가방은 꽤 무거웠다. 가방에는 복숭아설탕조림이 든 유리병, 살구잼이 든 유리병, 사과잼 유리병, 호밀빵과 바게뜨, 작은 유리꽃병, 돌 Dole 망고젤리, 초코칩 쿠키, 버터링 쿠키, 사브레, 그리고 그릇 몇 가지와 식탁보가 들어있다. 앤의 식탁에 차려졌다는 '노랑이랑 빨강 젤리, 쿠키 세 종류, 노란 자두잼'을 재현해 보기 위한 재료다. 또 '새로운 빵과 소화불량에 대비한 원래 먹던 빵'도 감안했다. 노랑이랑 빨강 젤리는 뭘까. 빵은 어떤 빵일까. 잘 모르겠으니 내 마음대로 상상하며 이것저것 챙겼다. 심각한 고 탄수화물 식단이다. 앤 등장인물 가운데 당뇨가 있는 사람은 없나 보다. 그런데 저걸 어떻게 다 먹지.
 
 
*잼 만들기와 마릴라의 두통
 
 
젤리는 젤라틴을 넣은 젤리일 수도 있지만, 과일의 씨와 과육을 제거한 잼을 말하는 것일 가능성이 높다. 과일 잼은 집에 좀 있는 편이다. 가까운 지인이 복숭아 농장을 한다. 정년퇴임 후 시작한 농장이라 규모는 아담하지만, 주요 작물인 장호원황도 말고도 가족 내 소비를 목적으로 하는 다른 과일나무가 종류별로 한 두 그루씩 있다. 이 나무들이 맺는 열매는 그 양이 어마어마하다. 과실수는 겨울과 봄에 침묵을 지키지만 여름과 가을에는 그야말로 열매를 쏟아낸다. 
 



신호탄은 살구가 쏘아올린다. 6월 주요 작물인 장호원황도 봉지를 씌우고 나면 살구를 딴다. 살구 다음은 자두, 자두 다음은 천도복숭아, 이어서 딱딱한 백도, 한여름 황도인 썬골드, 말랑한 백도, 짬짬이 참외, 간간히 앵두, 보리수, 가을 추석시즌 황도인 장호원황도가 피크를 이루고, 앙증맞은 사이즈의 사과 알프스 오토메, 제사상에 올릴 사과와 배가 차례로 익는다. 틈틈이 따는 호박, 부추, 상추, 고추, 아욱, 토마토, 파 등의 채소는 열외로 치자. 꽃 피는 시기의 추위, 봄철 가뭄, 한여름 태풍을 피해 간 기적 같은 열매가 많기도 많다.   
 
잘 익은 과일은 사람이 천천히 먹도록 기다려주지 않는다. 지금은 넘쳐나지만 곧 썩어서 다시 흙이 된다. 넘쳐나는 열매를 그래서 사람들은 저장한다. 그냥 저장하면 썩어버릴 테니, 설탕에 조리거나, 효소를 만들거나, 과육을 말린다. 수확기의 일상은 이러하다. 새벽에 열매를 따고 낮에 크기와 무게별로 선별 포장해서 오후에 농협에 내거나 택배를 보낸다. 저녁에는 내보내고도 남은 과일을 저장하는 작업을 한다. 효소를 만들던지, 건조기에 돌리던지. 짬짬이 채소도 재배한다. 밑반찬도 만들고 김치도 만든다. 밥도 해 먹어야 하니까. 한밤이 되면 물을 끓여 씻고, 택배 송장을 정리한다.
 
살구, 자두, 복숭아처럼 물이 많은 과일은 잼 만들기가 만만치 않다. 설탕 넣어 끓이다보면 대충 마멀레이드 형태가 되는데. 살구잼이 아주 새콤달콤하다. 불 앞에 서서 계속 젓는 고통만 견디면 우유에도 섞어먹고, 빵에도 발라먹을 수 있는 살구잼이 탄생한다. 술도 담근다. 앙증맞은 사과인 알프스 오토메는 금방 푸석푸석해져서, 바짝 먹고 아삭한 맛이 사라지면 술로 담근다. 보리수도 술이 된다. 앵두는 효소가 된다. 술이나 효소는 이 작업을 주로 하는 남편 마음이다. 이런 저장식품이 집에 쌓이면 꽤 부잣집 느낌이 든다. 
 
 

다음 날 아침, 당장이라도 극심한 두통이 몰려올 조짐 때문에 마릴라는 앤과 함께 주일학교에 갈 수가 없었다.
p.149

 
 
저장작업은 주로 남편 몫이지만, 나도 황도 병조림 만들기 보조 경험이 있다. 주말 하루였다. 농장 한 귀퉁이 천막 주변에 의자를 두고 앉았다. 복숭아를 몇 소쿠리 쌓아두고 껍질을 깠다. 내가 한 일은 설탕물을 끓이거나 붓거나 유리병을 소독하는 고되고 번거로운 일도 아니었다. 한 자리에 앉아서 복숭아 껍질을 까고 자르기만 했다. 그것도 말랑말랑한 복숭아였다. 잘 익어서 과즙이 쭈르륵 떨어지고, 껍질이 스르륵 벗겨지는 황도. 그날 나는 손가락에도 쥐가 날 수 있다는 것을 알았다. 과도를 쥔 오른손 엄지손가락에 쥐가 났다.

 

 
마릴라의 두통이 나는 그 끊임없는 집 안팎의 노동에서 비롯되었을 것이라 자신한다. 자존심도 센 그녀. 초록지붕집을 돌보는 일, 먹고사는 일에 온몸이 긴장상태에 있었을 것이다. 매일 아침 우유 짜고, 소를 돌보고, 밭과 나무를 살폈겠지. 봄에 꽃이 흐드러지게 필 때, 꽃을 솎아 주며 열매가 적당한 크기로 맺히도록 했을 것이다. 쭉정이는 바로 따냈을 것이고. 집을 청소하고, 의복을 만들고, 빨고, 냄새나지 않게 말리고, 잘 다려두면서도. 기침나고 열날 때 쓸 토근주스도 만들고, 각종 과일이 날 때마다 잼이나 조림을 만들었을 것이다. 먹을 것이 풍족한 집은 그냥 생기지 않는다. 누군가의 쥐가 나는 손가락, 과일을 졸이면서 입는 화상, 누군가의 수면부족, 누군가의 두통 같은 것을 먹이로 한다.

 

 
 
*소화불량과 백업 빵 

 
누군가의 소화불량을 토대로 자라나는 것도 있을까. 신앙은 어떨가. 앤은 린드아주머니 얘기를 인용하며 목사님 대부분이 소화불량이 있다고 했다. 귀가 번쩍 드였다. 주변에 목사님이 많지 않아서 잘 모르겠지만, 한국인이 제일 많이 소비하는 약 중 하나가 소화제라는 얘기는 들었다. 매일 국민 1000명 중 370명이 소화제를 찾는다는 2015년 보건복지부 통계도 있다. 나도 그 흔한 국민 중 하나다. 내가 딱히 신앙심이 깊다고는 할 수 없지만. 린드아주머니, 소화불량에 대해 또 해주실 얘기가 있나요? 책의 끝까지 나는 소화불량 얘기가 또 나올까 싶어 귀기울였다. 
 
 

새로운 빵도 구웠는데, 목사님이 그걸 드시고 소화가 안 될 경우를 대비해서 원래 먹던 빵도 따로 준비했어. 린드 아주머니가 그러시는데 목사님들은 대부분 소화불량이 있대. 
p.304

 

 

 
어린 시절 우리집에는 채 썬 생 양배추가 종종 식탁에 있었다.

 

양배추 즙, 매실엑기스, 마시는 소화제는 지금도 부모님댁 상비품이다. 특히 아빠의 소화불량이 심했다. 아빠가 어릴 적에는 만두 먹고 체해서 기절한 적도 있다고 한다. 이후 만두는 드시지 않는다. 주요 식단은 된장찌게, 김치찌게, 오이, 두부조림, 멸치, 떡 정도. 우리집 식탁의 모토는 맛있게, 기름지게, 배터지게 먹는 것과 거리가 매우 멀다. '먹기 싫을 때 억지로 먹지 마라'에 가깝다. 음식의 즐거움 보다는 괴로움을 차단하는 데에 총력을 기울였던 것 같은 느낌이다. 린드아주머니가 관찰한 목사님의 식탁도 그러했을까. 부모님이 종교활동에 진지하긴 하다. 그런데 가만히 보면 소화불량은 매사 신중하고 본보기가 되어야 한다는 스스로의 강박에서 오는 것 같기도 하다. 부모님, 특히 아빠에게 그런 심리적 불편함이 꽤 있지 않았나 싶다. 
 


이수역 앞 버스정류장에 내렸다. 살짝 마음이 불편하다. 집 앞과 분위기가 완전히 다른 번화가다. 유흥주점과 노점상, 사람, 자동차가 몇 갑절은 많다. 가방이 무거워서 마을버스를 타고 가고 싶은데, 가만 보니 줄도 길고 이 가방을 들고 퇴근시간 만원버스를 타는게 더 힘들 것 같아서 걷기로 했다. 번화가의 비트있는 소음에 기분이 업되는 듯 하다가도, 길바닥의 얼룩을 보니 얼른 이 곳을 벗어나고 싶었다. 간밤 소화시키지 못하도록 먹고 마신 것을 게워내고 또 치운 흔적, 누군가의 침과 껌이 붙어있는 흔적. 할 수만 있다면 앤과 마릴라의 초록지붕집으로 공간이동하고 싶었다. 그 모든 흔적들에 바퀴를 맞대며 덜덜덜덜, 가방은 굴러갔다. 바퀴는 묵묵하게 가방을 대신해서 그 흔적들과 마주했다.


 

Unsplash - Delfina Cocciardi



굴러가는 가방 안의 묵직한 빵이 생각났다. 소화불량에 대비한 빵이다. 낮에 회사 인근 빵집에서 구매했다. 한 덩어리 7000원하는 가격에도 놀랐지만, 빵을 집어든 후 느껴지는 그 무게에 또 놀랬다. 나는 앤이 말한 새로운 빵으로 바게트를 선택했다. 그리고 백업용 빵으로는 '호밀빵'을 사고 싶었다. 호밀빵이란 이름에서 왠지 소화가 잘 되는 시골빵의 느낌이 풍겼다. 오늘에야 알게 되었지만, 통밀과 호밀은 엄연히 다르다. 호밀은 밀밭에 자라던 잡초로, 더 척박한 환경에서도 잘 자란다. 통밀은 껍질을 벗기지 않은 밀이다. 호밀빵을 산다 생각하고 호밀빵 가게에 간 것인데, 결과적으로 통밀빵을 사갔다. 어쨌든 크로아상이나 식빵 같은 다른 빵 보다 소화가 잘되는 빵이었을 것이다. 화려하지 않고 백업같은 우직한 빵 임에는 틀림없다.
 


만성 소화불량자 입장에서 보면, 소화불량에 대처하기 위해서는 또 다른 빵 보다는 편안한 마음이 필요하다. 이 경우엔 회합을 끝내고 집에 돌아가 씻고 쉬는 것이 가장 효과적일 듯 하다. 물론 익숙한 음식과 양배추가 있다면 도움이 되겠지만, 주변의 시선이 없을수록 좋다. 다행히 앨런 목사님 부부는 나나 내 부모님보다는 훨씬 상냥하고 사교적이다. 그리고 앤의 말처럼 목사님이 된지 얼마 되지 않아 소화불량이 심하진 않았을 것 같다. 기쁜 마음으로 주변의 시선과 관심을 소화시켰고, 이 날 초록지붕집에서의 식탁을 즐겼을 것이다. 묵직한 빵은 없어도 됐을 것 같지만, 그게 있어야 마릴라의 빈틈없는 식탁이니까. 잘 챙겨가자. 


 
*가방들로부터

 

 
드디어 공유주방이 있는 교회에 도착했다. 교회 앞 계단에서 고양이가 반겨줬다. 주방으로 가서 엄지작가용으로 제작한 앞치마를 두르고 거울을 봤다. 앤틱한 거울에 비친 저녁 햇살의 내 모습이 생각보다 고상하고 부드러워 보였다. 이것봐라. 그곳에서 재건축 현장이 한 눈에 들어왔다. 그 공터를 비롯해서, 이곳까지 오는 골목길의 집밥을 모토로 하는 작은 식당, 의외의 옷가게, 음악교습소의 듣기좋은 소음, 손님없는 미용실, 바닥 청소를 하던 프랜차이즈 치킨집 풍경도 남다르게 보였다. 흔하지 않았다. 이 시공간은 결코 흔치 않았다. 나는 앤의 식탁으로 가방을 끌고 여행을 왔다.  

 

 
다른 엄지작가들이 준비한 음식이 속속 차려졌다. 가방에서 식탁보와 꽃병을 꺼냈다. 다른 누군가의 가방에서 방금 따와서 흙이 묻어있는 고사리아재비가 나왔고, 누군가의 품에서 하루 전 남대문 시장에서 구입했다는 장미꽃 나왔다. 또 누군가의 손가방에서 손수건에 쌓인 장미꽃이 그려진 찻잔이 수줍게 등장했고, 그렇게 식탁이 각자의 가방으로부터 마법처럼 펼쳐졌다. 집에서 하는 식탁 차리기가 이렇게 재미있었나. 누군가 레이어케이크를 굽기 시작했고, 한쪽에선 닭고기 젤리가 만들어졌다. 나는 닭고기젤리의 당근을 잘랐다! 쿠키를 접시에 담고, 황도조림과 살구잼을 그릇에 덜었다.

 

 
앤의 식탁은 확실히 특별했다. 통밀빵은 아주 맛있었다. 속이 꽉 찬 실속있는 맛이랄까. 닭고기 젤리와 따뜻한 차와 함께 먹으니 제대로 된 한 끼 식사를 먹는 것 같았다. 황도 절임을 간간히 먹으니 실속 있는 식사 가운데 앤 같은 낭만을 곁들이는 것 같았다. 레몬 파이를 가장한 레몬타르트도 새콤달콤했다. 고사리아재비와 장미꽃으로 장식된 식탁은 포근했다. 레이어 케이크의 바닐라액은 여전히 빠뜨렸지만 그대로 즐거웠다. 뭐 이런 고상한 놀이가 다 있나. 앨런 목사 부부를 제대로 대접한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두통은 없었고 소화불량도 없었다. 설렘과 즐거움, 성취감은 남았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 가방이 좀 가벼워졌다. 지금도 가방의 작은 바퀴들은 길바닥을 마주하며 덜덜덜덜 굴러간다. 그런데 가방이 바뀐 것 같다. 집에서 가방을 열면, 이 여행지의 식탁이 또 펼쳐질 것 같다. 식탁을 차리면서 엄지작가 낸 소음과 농담, 그리고 그 골목길 풍경과 과일절임에 대한 기억, 소화불량의 단상이 떠오를 것 같다. 가방 속에 엄청나게 넓은 세상이 펼쳐져 있던 어떤 영화의 한 장면처럼. 가방 속에 앤의 식탁이 들어있다. 버스에서 내려 가방을 끌며, 이어폰을 꼽고 음악을 들었다. 노래 제목은 이스라엘 카마카위우올레의 '섬웨어 오버 더 레인보우 Somewhere over the rainbow'.  


 

 
 
Experience
https://m.youtube.com/watch?v=hN_q-_nGv4U&feature=youtu.be


Somewhere over the rainbow
https://m.youtube.com/watch?v=fahr069-fzE&feature=youtu.b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