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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게읽기/The Great Gatsby

"Such beautiful shirts" chapter 5

by 은지용 2023. 6. 12.

 
 


It makes me sad
because I've never seen such
- such beautiful shirts before.


p.92 <The Great Gatsby> F.Scott Fitzgerald, Scribner

 
 
개츠비와 데이지의 셔츠쇼가 나오는 챕터다. 어렸을 때 나로선 도무지 이해가 안가던 장면. 왜 셔츠를 부여잡고 울어. 이번엔 와닿을까 싶어 기대하고 봤는데. 역시나 잘 모르겠다. 그 좋은 셔츠들. 톰은 안샀나? 따지자면 대대로 부자인 톰이 개츠비보다 훨씬 돈이 많을 것 같은데. 데이지는 왜 이렇게 아름다운 셔츠를 한 번도 본적이 없다고 하며. 아름다운 셔츠를 안고 왜 우나.
 
이렇게 예쁜데 자기 것이 되지 못하니까 우는 것 같긴 하다. 톡방 누군가는 '개츠비 왜 이제야 내게 왔어'의 슬픔일 수도 있다 했다. 오래전 한 친구는 개츠비의 원픽 장면으로 셔츠쇼를 꼽곤 했다. 그의 책/영화 추천을 믿는 편이다. 개츠비가 재미없었음에도 불구하고 관심을 잃지 않고 여기까지 온 데에는 그 친구 역할도 있다. 1챕터에서 언급한 것 처럼, 나이가 들고, 이 책이 이제 재미있다, 너무나.

그 친구에게 뜬금없이 톡을 했다. 그 장면 왜 좋았음? 답이 왔다. 셔츠 안고 우는 장면이 데이지란 인간을 확연하게 느끼게 해줘서 좋았음. 아하.
 
 

"영국에서 옷을 사서 보내주는 사람이 있거든. 봄 가을 시즌이 시작될 때마다 엄선해서 보내준다고."
그는 셔츠 더미를 끄집어내 우리 앞에서 하나하나 펼쳐 보여주었다. 얇은 린넨과 두꺼운 실크, 질 좋은 플란넬 셔츠들이 테이블위로 던져져 다채로운 색깔로 뒤엉켰다. 우리가 감탄할 때마다 그는 더 많은 셔츠를 가져왔고, 이 부드럽고 사치스러운 언덕은 점점 더 높아만 갔다. 문장이 새겨진 줄무늬 셔츠, 산홋빛의 체크무늬 셔츠, 사과및 푸른 셔츠, 인디언 블루의 이니셜이 새겨진 라벤더빛 혹은 연한 오렌지빛의 셔츠들. 그 순간 갑자기 데이지가 이상한 소리를 내며 얼굴을 셔츠 더미에 파묻고 격렬하게 울기 시작했다.

"너무, 너무 아름다운 셔츠들이야." 그녀가 흐느꼈다. 두터운 셔츠 더미에 파묻혀 그녀의 목소리가 띄엄띄엄 들려왔다. "너무 슬퍼. 한 번도 이렇게, 이렇게 아름다운 셔츠들은 본 적이 없거든."

p.117 <위대한 개츠비> F.스콧 피츠제럴드, 문학동네

 

데이지가 비싼 옷을 보며 황홀해하고 슬퍼하는 장면에. 나는 머틀 윌슨이 떠올랐었다. 톰의 흰색 셔츠와 애나멜 구두를 바라봤고, 자신의 남편 윌슨이 결혼식 때 입은 양복이 빌린 것이란 것을 알았을 때 크게 절망했던 그녀. 뉴욕에서 옷을 갈아입고, 옷을 사고, 옷을 주면서 만족감을 느끼는 그녀. 닮은 것 같지 않은 톰의 그녀들에게 공통점이 있다. 옷에 울고 웃는다.

이래 저래 옷은 중요하구나. 속물로 가는 가장 친근한 티켓. 고급화 또는 저급화로 가는 급행티켓. 어쨌든 옷은 중요하다.
 

나도 예쁘고 고운 옷 좋아한다. 대충 입는 것 같지만 나름 예쁘다고 생각하는 옷들만 입는다. 누군들 아니겠는가. 20대때 다니던 회사에서 '옷 제일 못 입는 사람 worst dresser'으로 뽑혀서 상 받았던 기억이 떠오른다. 당시에도 나는 여성스러운 스타일을 피했을 뿐이지 나름 예쁘면서 대체로 단정하고 수수한 옷을 골라 입었다.

문제는 내 눈에만 '예쁘고 조화로운 옷'이었다는 것. 남들 눈에는 촌스럽거나, 경직되어있거나, 어딘지 옷끼리 어울리지 않았던 것 같다. 당시 후배가 나를 동대문 시장에 데려가면서 했던 말도 떠오른다. "선배는 예뻐보이고 싶지 않은 것 같아요." 

너무 여성스러운건 어쩐지 약해보이는 것 같아서 피하고 싶긴 했다. 어쨌든 옷과 장신구로 표현되는 것들에 관한 이야기다. 어떤 방향이든 판단을 겉모습으로 하는 것이 기본 전제다. 겉모습. 외모. 속물 같긴한데…

그런데 거부할 수가 없다. 인간의 굴레다. 바깥을 보고 한 사람을 판단하게 되는 것. 다른 사람 뿐 아니라 스스로도 그렇게 판단하기도 한다. 옷감의 품질에 민감해지고, 머리카락의 윤기에 신경쓰게 되는 것. 내 안에도 데이지가, 머틀이 살고있다.


 


 

셔츠 장면 이후 개츠비가 바다 건너 맞은편의 데이지 집이 보인다는 얘기를 해준다. 그 집 잔교 끝의 초록 불빛도. 지금은 비가 내리고 안개가 껴서 보이지 않지만 거기에 있다고. 그러자 데이지는 갑자기 팔짱을 낀다. 개츠비는 아직 그가 이룬 꿈에 취해있다. 이들 관계가 한 걸음 진전된 것 처럼 보인다.

이제 데이지에게도 '그녀 인생'이 생기는 걸까, 조던 베이커가 말했던 것처럼? 개츠비는? 개츠비의 꿈은, 욕망은, 성취되고 사라지는 걸까? 아직 책이 절반이나 남았다. 이럼 불안하다.

 

"If it wasn't for the mist we could see your home across the bay," said Gatsby. "You always have a green light that burns all night at the end of your dock."

Daisy put her arm through his abruptly, but he seemed absorbed in what he had just said. Possibly it had occurred to him that the colossal significance of that light had now vanished forever. Compared to the great distance that had seperated him from Daisy it had seemed very near to her, almost touching her. It had seemed as close as a star to the moon. Now it was again a green light on a dock. His count of enchanted objects had diminished by one.

p.92 <The Great Gatsby> F.Scott Fitzgerald, Scribner 

 

지금 개츠비는 데이지에게 자기 존재/자기 집과 셔츠를 과시하는, 자신이 이룬 꿈에 취해있지만. 처음 닉의 집에서 데이지를 만났을 때에는 사실 크게 당황했다. 상상한 것과 달랐고 무엇부터 어떻게 얘기해야할지 너무 당황스러웠다. 데이지도 당황했단 것을 알게 된 후 달라지긴 했지만 말이다. 이제 데이지의 마음을 얻은 듯한 그는, 여전히, 잠깐씩 당황했다.

닉은 그 순간을 이렇게 서술했다.

 

작별인사를 하러 간 순간, 나는 개츠비의 얼굴에 다시 돌아온 당혹스러움을 발견하였다. 현재의 행복에 대한 희미한 의심이 피어나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돌아보면 거의 오 년의 세월이었다. 그날 오후만해도, 눈 앞의 데이지가 그가 꿈꾸어왔던 데이지에 턱없이 못 미치는 순간이 분명히 있었을 것이다. 그녀의 잘못만은 아닐 것이다. 오래도록 품어왔던 너무나도 어마어마한, 환상의 생생함 때문이다. 그것은 그녀를 넘어서고, 모든 것을 넘어섰다. 그는 자신을 스스로 만들어낸 독창적인 열정 속으로 밀어넣은 후, 하루하루 그것을 부풀려갔고, 가는 길에 마주친 온갖 깃털로 장식해왔던 것이다. 아무리 큰 불도, 그 어떤 생생함도, 한 남자가 자신의 고독한 영혼에 쌓아올린 것에 견줄 수 없다.

p.121 <위대한 개츠비> F.스콧 피츠제럴드, 문학동네

 

너무나 커져버린 그의 욕망이 현실이 되자 비로소 그 틈이 보였나보다. 그러나 의심은 간헐적이었고 희미했다. Faint Doubt. 개츠비는 바로 표정을 수습한다. 마음을 다잡는다. 의심을 거둔다. 그녀의 손을 잡은 채 그녀 목소리를 들으면서. 속삭이는 듯한 그 특별한 목소리.
 

그녀의 목소리는 '아무리 오래 꿈꾸어도 결코 질리지 않을' 것이었다. '영원히 사라지지 않을 영생불멸의 노래'였다니. 도대체 어떤 목소리일까. 그녀 목소리에는 '유쾌한 파장'이 있어 '내리는 비와 뒤섞여 한 잔의 멋진 칵테일을 만들어'낼 수도 있다. 도대체 어떤 목소리일까. 그런데 영생불멸의 노래라는 묘사는 좀 섬뜩하다. 바다에서 선원을 죽음으로 이끈다는,


세이렌의 노래처럼.
오디세우스처럼 귀를 막아야 할까.
개츠비의 목적지는 그러나 이타카가 아니라 데이지다.


어쩐지 그의 목적지가 잘못 설정되었단 느낌이 든다. 희미한 의심을 그냥 흘려보내선 안될 것 같다.

 

희미한 의심을 잠재우는 불멸의 목소리
목소리의 유쾌한 파동 ripple이 빗소리와 칵테일을 만든다. 도대체 어떤 목소리일까.
희미한 의심. 거대한 꿈. 생명력을 가진 욕망.
개츠비집 유래에도 black wreath가 나온다. Spat meditatively. 침을 명상하듯 뱉는 건 어떤 모습일까 ㅎㅎ 앞선 챕터에서 우프심이 정직하게 악수했다. 데이지가 순진하게 물었다. 표현들이 재미있다.

다들 뒤에 숨어 있는 것 맞다. 가십거리가 될 것이 분명하다.


 

2023.6.09 톡

 그 외.

개츠비가 유독 클립스프링어에게 무례하다. 한집에서 먹고 자는 하숙생은 가족인가. 식구에게 아무래도 무례하게 되는 인간 속성인가.

개츠비가 받은 전화에 ‘작은 도시’가 나온다. 그는 혹시 몬테네그로처럼. 뭔가 작은 곳에서 작전을 펼치려는 것일까. 그가 뭔가, 훈장같은걸 받을 수 있을 ‘작은’장소.
 
닉이 너무 피곤해서 개츠비의 제안을 거절할 수 밖에 없었을 때 그는 꿀잠 잔다. 거절 잘 못할 것 같은 닉이 마음 편해지는 포인트? 농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