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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게읽기/The Great Gatsby

"Little Montenegro!" chapter 4

by 은지용 2023. 6. 11.

결정적 순간__
 


 
 
거짓말쟁이는 거짓말쟁이를 알아본다.
 
개츠비가 옥스퍼드 나왔다는 말을 조던 베이커는 믿지 않는다고 했다. 치료불가능한 거짓말쟁이 조던은 진작에 알아봤었다. 7월 말의 그 날, 닉 역시 믿지 않게 되었다. 그랬었다. 결정적 순간이 오기 전까지.
 

나는 그와 여섯 번쯤 대화를 나눴는데, 실망스럽게도 그와는 별로 할 얘기가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 덕분에 어떤 신비로운 거물일 거라는 첫인상은 점점 사라지고 이제는 그저 한동네의 호화로운 여관집 주인 정도로 여기고 있었다.
그러던 참에 이렇게 난데없는 드라이브가 시작된 것이다. 웨스트 에그로 가는 길에 개츠비는 힘을 잔뜩 준 말을 널어놓다가 채 끝맺지도 않고 갈색 양복을 입은 자기 무릎을 불안하게 두드리기 시작했다.
"이봐, 친구." 그가 불쑥 말했다. "나에 대해 어떻게 생각해?"
약간 당황하여 나는 그런 질문에 합당한 일반적인 말들을 늘어놓기 시작했다.
"음, 내가 살아온 인생에 대해서 얘기를 해줄까 하는데." 내 말을 자르며 그가 말했다. "나를 둘러싸고 이러쿵저러쿵 떠드는 이야기들 때문에 자네가 나를 오해할까 봐 그래."
그는 자기 집에서 떠도는 별의별 황당한 험담들을 염두에 두고 있었던 것이다.

"맹세코 진실만 말해줄게."


p.84 <위대한 개츠비> 문학동네

 
 
개츠비는 오늘 닉에게 친척 데이지를 닉의 집으로 초대해줄 것을 부탁하려고 한다. 개츠비가 직접 부탁하는 것은 아니고 조던 베이커를 통해서. 그래서 닉에게 밑밥을 깔고 있다. 그런데 자기는 어떤 부유한 집안의 아들이라느니, 부모가 갑자기 죽어서 슬픔에 잠겨 인도왕자처럼 이곳저곳을 탐험했다느니, 슬픔을 루비 같은 보석을 보며 달랬다느니 하는 말을 늘어놓았다. 닉은 웃음을 참기 어려웠다. 나는 웃었다. 스스로 인도왕자처럼 지냈다고 얘기하는 부자가 있을까. 개츠비는 자기 부모에 대해 some wealthy people로 퉁치고, 옥스포드 나왔단 얘기를 할 때에는 곁눈질 했다. 말이 목에 걸린 것 처럼. 한 번 의심을 시작하자 닉도, 나도, 그의 말을 조각조각 뜯어보게 되었다. 맹세코 진실만 말해줄게란 그의 말이 오히려 웃음을 위한 장치 같았다.
 

"I am the son of some wealthy people in the Middle West - all dead now. I was brought up in America but educated in Oxford, because all my ancestors have been educated there for many years. It is a family tradition."

He looked at me sideways- and I knew why Jordan Baker had believed he was lying. He hurried the phrase "educated at Oxford", or swallowed it, or choked on it, as though it had bothered him before.

And with this doubt, his whole statement fell pieces, and I wondered if there wasn't something a little sinister about him, after all.

p.65 <The Great Gatsby> Scribner

 
그런데. 상황은 몬테네그로에서 완전히 바뀐다.
 
결정적 순간이 왔다. 그렇게 방랑하던 개츠비는 1차 세계대전에 참전했다가, 17:1 싸움과는 비교도 안되는 200:1 수준의 전투에서 승리하고 승승장구하게 됐다고 얘기했다. 프랑스 동북부 아르곤 숲 전투에서 백삼십명 정도의 보병으로 독일군 3개 사단을 물리쳤다고 했다. 3개 사단이면 몇 명 정도일까. 클럽 톡방에서 누군가가 확실친 않지만 3만여명은 됐을 것이라 설명해줬다. 책에 정확히 몇명인지는 안나오지만 보수적으로 잡아도 200:1의 싸움이었다. 그때 그 승리를 치하받으면서 특진했고. 작은 몬테네그로에서까지 훈장을 줬다고 했다. 이 때 닉은 훅 넘어간다.
 
 

그 작은 몬테네그로! 그 단어를 말할 때 그는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 미소는 몬테네그로의 굴곡진 역사를 이해하고 있으며 몬테네그로 인민들의 영웅적 투쟁에 깊이 공감하는 것이었다. 그 미소로 몬테네그로가 처한 일련의 국가적 사정, 작지만 따뜻한 가슴에서 우러나는 이 경의의 원천에 대해 깊은 감사를 표하는 것이었다.
나의 불신은 매혹에 가려 수면 아래로 가라앉아버리고 말았다. 한 다스의 잡지를 대충 뒤적일 때 일어나는 것과 비슷한 현상이다.


p.85 <위대한 개츠비> 문학동네

 
몬테네그로가 뭐길래.
그 작은 몬테네그로란 말에
모든 것이 갑자기 사실이 되어
그의 눈앞에 펼쳐지게 되는 걸까.
닉은 몬테네그로에서 싸웠던 걸까.
그의 먼 조상이 몬테네그로 출신인가.
개츠비 책은 은근히 웃긴 구석이 꽤 많다.
 
V-클럽에서 짚어주길 몬테네그로는 유럽 남부 작은 나라로, 큰 나라들 사이에 낀 서러운 국가 가운데 하나라고 한다. 몬테네그로의 무엇이 닉에게 마법을 걸었을까. 사기에 걸려드는 바보 같지만 진실하고 마법 같은 순간도 이러할 것이다. 케이티 홈즈의 사기사건. 청나라 공주 사칭 사기사건. 돌이켜 보면 황당하지만. 피해 당사자들이 훅 넘어가는 '결정적 순간'이 있다. 처음엔 누구나 의심한다. 그저 의심이 신뢰로 바뀌는 전환점이 분명히 있는 것이다. 리틀 몬테네그로처럼.

‘한 다스의 잡지를 대충 뒤적일 때 일어나는 현상’은 어떤 것이더라. 대충 이미지만 짜깁기하고 내 마음 내키는대로 받아들이는 현상이던가. 가장 불쌍한 사람은 창 밖에 있는 이도, 집 안에 있는 이도 아닌, 창틀에 낀 사람이라던 농담도 떠오른다. 불쌍한 사람의 공감 이야기는 사람의 마음을 쉽게 움직이던가. 작은 것에 공감하는 이야기가 사람 마음을 잘 움직이던가.
   
닉의 상황이 몬테네그로의 처지와 비슷해 보이기도 한다. 대저택 사이에 낀 작은 집에 살고. 큰 돈 굴러다니는 뉴욕에서 채권업을 하지만 돈은 많이 못 벌고. 화려한 뉴욕생활 같지만 어쩐지 공허하고. 뭔가 이도 저도 아닌. 그렇다고 어느 한쪽으로 확 붙어서 큰 돈 벌거나 방탕한 생활을 누릴만큼 뻔뻔하지는 못하고. 이렇게까지 생각하면 너무 나가나. 개츠비의 허풍도 웃기지만. 지금까지 하나도 믿지 않고 있다가 'Little Montenegro' 한 마디에 모든 것이 사실이 되는 닉의 순진함이 웃겼다. 조금 찔리기도 했다.
 
개츠비가 '개츠비 소령'이란 문구가 박힌 몬테네그로 훈장 금속메달을 보여주자 게임은 끝났다. Then it was all true.

의심은 말과 행동에서 시작되었으나, 마법의 단어와 금속조각으로 의심은 가라앉았다. 마법의 단어는 서러움의 상징인 강대국 사이의 작은 국가 이름. 금속조각은 그 서러움을 이해하고 보듬어줄 수 있는 이가 받을법한 것. 의외의 베스트셀러였던 인류학 서적  <다정한 것이 살아남는다>가 새삼 떠오른다.
 
 
 

Then it was all true.

p.67 <The Great Gatsby> F.Scott Fitzgerald, Scribner

 
 
 
 
 


 


승부조작으로 오천만명의 믿음을 갖고 놀았다. 어떻게 그런 일이?! / 기회를 본 거지 뭐
데이지 목소리의 섬씽. 뭘까.
진짜 징그럽고 무섭다 creep



그래도. 지나간 사랑 데이지를 잊지 못해. 데이지 집 맞은편에 집을 사고. 심지어 결혼까지 한 그녀 주변을 알짱대는 것은 좀 creepy하다. 1 챕터에서 가졌던 호감이 이쯤 떨어져 나간다. 이건 집착이지. 한 사람에 대한 집착. 그를 움직이게 한 동력인 건 알겠는데. 그래도 사람한테 이렇게까지 기대하면 실망할 수밖에 없지 않을까. 다음 챕터에서 보면 데이지 기사가 난 신문기사 스크랩한 얘기까지 나오던데. 하아. 개츠비 씨 이러시면 안 됩니다...
 

개츠비가 경찰 프리패스를 갖고 있는 것. 어울리는 사람들에게 신뢰를 얻고는 있지만. 승부조작범들에게도 '기회를 잡았지'라는 말로 넘어가는 것. 등에서. '오천만 명의 신뢰를 갖고 놀 수 있는' 사람이라는 것에서. 1900년대 초반의. 어쩌면 지금도 한몫 잡으려 하는 사람들의. 윤리의식을 보는 것도 같다.... 나라고 뭐 되게 도덕적이진 않지만. 챕터 4에서 느낀 것들. 적어둔다.

2023. 6. 10


톡 캡쳐 2023.6.02
톡 캡쳐 2023.6.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