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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게읽기/The Great Gatsby

"This is a valley of ashes" chapter 2

by 은지용 2023. 5. 28.

 
 
환타지물을 너무 많이 봤나. '재'라는 단어를 대하면 자동적으로 '불사조'가 떠오른다. 불 타고 남은 재에서 다시 살아나는 죽지않는 새, 불사조. 2챕터에서 재를 언급하는 문장을 보는 순간에도 그러했다. 죽지 않는 새, 영원히 사는 새가 떠올랐다. 영원히 죽지 않는 것인지 살지 않는 것인지. 계속 죽은 새인지 사는 새인지. 암튼 삶과 죽음을 반복하는 그 새. 사는 게 사는 게 아니고 죽는 게 죽는 게 아닌 그 새.

 

This is a valley of ashes - a fantastic farm where ashes grow like wheat into ridges and hills and grotesque gardens; where ashes take the forms of houses and chimneys and rising smoke and, finally, with a transcendent effort, of men who move dimly and already crumbling through the powdery air.

이 곳은 재의 계곡 - 재가 밀처럼 자라나는 환상적인 농장. 산마루, 언덕, 그로테스크한 정원으로 ; 이곳에선 재들이 집이나 굴뚝 형태를 하다가 연기로 피어오르고, 마침내, 안간힘을 다해 회백색의 인간으로 변신한다. 인간을 닮은 그 잿더미는 희미하게 움직이는가 싶다가 가루가 되어 공기 속으로 사라져 버린다.

 

그 곳은 뉴욕으로 들어오고 나가는 길목. 완전히 안에 있는 것도 아니고 멀리 떨어진 바깥도 아니다. 그 곳에 윌슨 부부가 살고 있다. 윌슨씨는 희미하게 잘생겼고 faintly handsome 윌슨 부인은 희미하게 탄탄하다 faintly stout. 재를 뒤집어 써서 faintly 일까, 닉 특유의 말투일까.

이 곳의 재의 계곡은 도시의 필수불가결한 요소다. 동시에 굳이 알고 싶지 않은 부분이다. 오렌지 주스와 레몬이 든 칵테일을 마시면 필연적으로 껍질 쓰레기가 나오기 마련이지만. 오렌지나 레몬 껍질을 집 안 또는 가까이 두지는 않는다. 쓰레기통에 모아서 어딘가로 보내지… 이 곳 재의 계곡은. 도시 생활의 부산물이 쌓이는 곳. 필연적이지만 유령 취급하고 싶은 치부다.

윌슨 부인, 머틀은 스스로 이 곳에 속해있지 않다고 느꼈을 것이다. 그러기에는 그녀 안의 생명력이 허락하지 않았다. 그녀는 인상적인 몸을 갖고 있다. Vitality. 육감적이다. 톰이랑 통한다. 둘은 결혼하지 않았지만 현재진행형 연인사이다.
 
Tom: It does her good to get away. 여기서 나가는게 그녀한테도 좋아.
Nick: Doesn't her husband object? 남편이 반대 안 해?
Tom: Wilson? He thinks she goes to see her sister in New York. He's so dumb he doesn't know he's alive. 

윌슨 씨는 자신이 살아있는 것도 모르는 바보인가. 닉은 자기 사촌의 남편이 바람 피우는데 저 정도 말 밖에 안나오나. 세련되고 정중한 답변 같지만 닉이야말로 진짜 어벙하다. 살아있음을 잘 아는 현명한 이는 어떤 사람인가. 윌슨 부인? 현명함과는 거리가 멀어 보이는 캐릭터지만. 살아있음을 즐기고자 하는 것은 분명하다. 그녀는 처음 톰과 관계를 열 때 'You can't live forever'라고 수 차례 되뇌였다. 산다는 게 뭐지. 몸 쓰는 건가. 돈 쓰는 건가.
 
톰 뷰캐넌과 머틀 윌슨이 돈 쓰고 몸 쓰는 아지트는 뉴욕 시내에 위치했다. 아마 톰의 재력었을 것이다. 윌슨 부인은 어쨌든 행복해 보인다. 부자로 태어난 톰의 돈을 펑펑 쓰면서 원하는 옷을 사고 또 살 수 있다. 대부분의 요즘 사람들만큼이나 그녀에게도 옷이 매우 중요하다. 남편이 더 이상 그녀에게 매력적이지 않게 된 결정적 순간도 윌슨씨가 결혼식 양복을 빌려입었단 것을 알게 된 때 더라. 옷을 갈아입으면 그녀는 변신한다. 변신 전후로 그녀는 '아랫 사람'에게 거들먹거리고, '잉여생명' 강아지를 구매해서 키운다.
 
Mrs.Wilson had changed her costume some time before.
With the influence of the dress her personality had also undergone a change. The intense vitality that had been so remarkable in the garage was convereted into impressive hauteur.

이들은 아지트에서 부어라 마셔라 한다. 금주법이 발령된 때라 집에서 마시던 때. 미국으로 돈이 몰리고 본격 흥청망청이 이뤄지던 roaring 20's. (당시 우리나라는 일제강점기).

아파트 층층이 흥청망청하는 사람들의 사연이 꼭 에드워드 호퍼의 그림 같다. 각자의 사생활과 고독을 대놓고 드러내진 않지만 결코 감추지 않고, 정교한 거짓으로 치장한다. Eleborateness of the lie. 다른 이들의 고독과 사생활도 그렇게 탐닉하며 술안주 삼는다. 닉은 나가서 산책 좀 하고 싶기도 했지만 이야기에 끌려 안에 머물렀다. 어벙한 닉의 모습에 보통의 사람들이 보인다. 완전히 거부하는 것도 아니고 완전히 엮이는 것도 아니고 어정쩡하게 삶이 흐른다.
 
I was within and without, simultaneously enchanted and repelled by the inexhaustible variety of life.


윌슨 부인은 술 마시고 떠들다가 허세의 정점을 찍는다. 그 아파트에 사는 맥키부인이 자신이 입고 있는 옷에 감탄했었는데, 그 옷을 그녀에게 주겠단다. 그리고 엄마 무덤에 장식할 검은색 실크로 장식된 리쓰를 사야겠다고 한다.

Black Wreath. 1챕터에서 데이지가 톰과 결혼해서 시카고를 떠난 이후에 대해 닉이 던진 시덥잖은 농담에도 블랙리쓰가 나왔다. 그녀의 부재를 슬퍼하며 자동차는 왼쪽 뒷바퀴에 블랙리쓰를 달고 다닌다고. 그 땐 참 기발하다 싶었는데 두번째 나오니 싸-하다.

하얀 국화나 근조 표시 같은 장식물. 그런데 원의 형태. 끊임없이 굴러갈 수 있고 무한히 반복될 수 있는 형태. 2챕터 앞부분의 valley of ashes에서 받은 불멸의 느낌이 두 번째 언급되는 블랙리쓰로 연결돼 멈칫했다. 리쓰에 대한 기억은 괜히 설레는 크리스마스에 빨강과 초록으로 문 앞에 하는 장식이 전부이다. 이제보니 애도의 자리에도 쓰인다. 검정색으로 장식해서 상실의 슬픔을 표현하는 흔한 물건인가보다.
 
블랙리쓰. 용산역 원불교 빌딩에 그려진 원도 생각나고. 3챕터 갯츠비의 파티를 준비하는 오렌지와 레몬이 금요일에 왕창 들어갔다가 월요일에 껍질로 나오는 반복적 장면도 떠오른다. 매주 주말 파티 동안 망가진 정원과 물품을 보수하는 월요일의 일꾼들이며, 파티 손님들이 춤을 추며 그리는 원도 이제 예사롭지 않아 보인다. 원처럼 모퉁이 없이 끊임없이 이어지고 반복되는 형태라면 다 멈칫하게 된다.

사회 초년생 시절을 돌아본다. 회사에 가기 위해 옷을 사고, 일을 더 효율적으로 하기 위해 차를 사고, 차 할부금을 갚고 운행 및 유지보수 해야하니 일에서 나오는 돈이 계속 필요하고, 그래서 회사를 계속 다녀야 하는. 그 돈의 흐름이 쳇바퀴 같기도 하고, 앞 뒤가 없는 뫼비우스의 띠 같다는 느낌을 받았었다. 사람 구실을 하기 위해 내가 함께 흘러야할 어떤 커다란 흐름. 그 때의 기억이 떠올랐다.

(물론 그 흐름이 우울하기만 한 것은 아니다. 그 땐 우울하고 답답했지만. 그 안에도 희노애락이 있고, 사람이 있다...)
 

딱히 뭐라고 결론을 내고 싶지 않다.
원을 야무지게 닫지 않고 슬쩍 열어두고 싶다.
원만하지 않게. 그럼...쓸모 없는 원이 되려나?
필멸의 사람. 불멸의 원.

 

 

이상하다.

보통 쓰면 분명해지는데,

이 챕터는 오히려 더 모호해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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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존에서 찾아보니 근조 화환용 뿐 아니라 할로윈 장식용으로도 쓰나보다. 블랙리쓰.

https://youtu.be/JSqcr_zUgv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