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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타클로스딜레마/첫째 그리고 둘째

여전히 화가 날 때가 있다 ... 여름방학 한 중간

by 은지용 2023. 8. 1.

 
선생님이 미쳐갈 때쯤 방학이 시작되고
엄마들이 미쳐갈 때쯤 개학이 된다고
여름방학이 한창인 8월 1일 나는,
히스테리 지수가 치솟고 있다.

 

아까 정말 화가 많이 났다.

 

그래서 다그쳤고. 목소리가 커졌고. 아이들이 내 눈치를 봤다. 그럴 때면 마음 한 켠에서 학대라는 단어가 조그맣게 떠오르긴 하지만, 그것과 상관없이 터져나온 불길은 스스로를 태워야 사그라지기 마련.
 
사실 아이들은 정말 많이 컸다. 샤워도 스스로 하고, 옷도 스스로 입으며, 점심도 챙겨 먹을 줄 안다. 단 식사 후 뒷정리는 별로 기대하기 어렵고, 양치는 아직도 잔소리하고 확인해야 한다. 그래도. 영화 카모메식당을 함께 웃으며 볼 수 있으며, 하교 후 제습기가 꺼져있는지 확인하고 옷장 문을 닫아달라는 요청도 가능하다. 
 
최근에는 아침 7시반~8시 사이에 3개월짜리 미션을 수행 중이다. 각자의 3개월 목표 일상을 기특하게도 꾸준히 하는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다. 첫째의 미션은 수학 숙제를 의자에 앉아 집중해서 푸는 것, 최대 20분을 넘기지 않는다. 현재 한 달 이상 이어가고 있다. 시작한 지 이틀째인 둘째의 미션은 매일 아침 줄넘기 300개 이상하기. 모두 일요일 제외다. 연속 3개월간 성공 시 보상이 주어질 예정이다. 첫째는 마인크래프트를, 둘째는 네일아트를 하기로 했다. 분명 정말 많이 컸다. 아기 때에 비하면 많이 편해졌는데. 그런데.
 
여전히.
 
아이들의 제멋대로에 화가 치솟는 불가사의한 때가 존재한다. 조금 지나고 보면 도대체 왜 이렇게 화가 난거지 싶다. 오늘 그랬다.
 
아이들과 아빠가 인근 계곡에서 놀고 있는 사이, 휴가 중이지만 처리해야 할 업무를 마친 오후 세 시 이후, 혼자 조용히 끄적이면서, 비로소 차분하게 생각해 본다. 아까 도대체 왜 그렇게 화가 났었나.

 

왜? 어째서? 무엇때문에?
 
그것은 이러했다. 민감한 아이들이 엄마나 아빠의 자존심 스크래치성 말투에 반응할 때 폭발적인 연쇄반응이 일어나는 것 같다. 부모도 스스로 인지하지 못한 사이 아이들 마음에 생채기를 내는 말투를 쓴다. 그러면 아이들은 즉각 더 날카롭고 뾰족하게 방어자세를 취한다. 여기에 부모들도 기분이 확 나빠지고, 화가 화를 부르면서 활활 타오를 때가 있는 것. 잠시 브레이크가 걸리지 않으면 자꾸 눈덩이 불어나듯 화가 커질 수 있다. 휴.  
 
요즘.
 
저녁마다 성경을 읽어주고 싶은데 아이들은 도망다닌다. 세계의 절반 이상을 이해하는 자산이 성경을 이해하는 것이라 설명한들 먹히지 않는다. 성경은 역시 성당이나 교회에서 목회자분들의 친절한 목소리로 들어야 하는 것일까. 그러기엔 내가 주일마다 나갈 자신이 없는데... 오늘 아까 부활절 관련 영어 지문을 보던 아이가 문제도 다 풀었는데. 부활절이 어떤 날인지 모른다는 사실에 충격을 받았다. 휴일로만 알고 있더라. 심지어 내 핸드폰을 통해 번역기를 돌려 퀴즈를 풀고 있었다. 번역기도 신뢰에 생채기를 내긴 했지만, 큰 마음먹고 내 시간 할애하는 성경 읽어주기를 거부하는 마음에 쌓여가던 화가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
 
그래 아마도. 그런 것이었다.
 
가방을 삼십번쯤 흘리고 갔다거나. 모자를 10개쯤 잃어버렸다거나. 책을 대충 보거나. 시간 대책없이 만화책에 심취해있거나. 수학문제를 띄엄띄엄 풀거나. 풀이과정은 하나도 쓰지 않고 감으로 푼다거나. 그러고도 자기는 잘났다고 생각하는 어처구니없는 경우도 많지만. 그래도. 충분히 잘하고 있는 것들도 있다. 사실 그게 더 많다. 그저 잘하고 있는 것은 입으로 수만 번 칭찬하니까. 손으로 하는 칭찬은 이쯤에서 줄이자.

 

한편으로 아이들 아빠에 대한 화도 쌓여갔던 것이 아닌가 싶다. 내심 마음을 내려놓고 있는데도, 남편에 대한 기대를 줄이는 것은 노력이 요구된다. 남편도 마찬가지겠지.

내일부터 정말 가족과 밀착해서 지내게 될 거다. 각자 도서관으로의 피신도, 학원으로의 도피도, 회사출근도 없다. 우리끼리 집이 아닌 휴가지에서 4박 5일을 보낼 텐데. 내심 걱정이 된다. 
 
마음에 불이 붙지 않도록.
반딧불같은 은은한 불만 켜지고.
서로 소중한 느낌, 즐거운 추억 쌓을 수 있도록.


맑은 시냇물 하나 마음에 흐르게 해야겠다.....  
내 마음이 그 냇물을 품을 수 있기를......
적어도 방학만이라도........
나흘밤만이라도.........


이날 내가 마음을 가라앉히는 사이, 아이들과 아빠가 다녀온 근처 작은 계곡. 물이 흐르고 조용하고 벌레가 좀 있었다고 한다. 물은 아주아주 차가웠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