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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타클로스딜레마/첫째 그리고 둘째

글쓰기 만세

by 은지용 2024. 7. 24.

 



이번주 월요일부터 시작했다.
 
아이는 평일과 주말을 구분해서 핸드폰을 쓰기로 했다. 평일에는 집에 오자마자 핸드폰 놓고 할 일부터 하기. 할 일 다 한 후 30~40분 핸드폰 타임, 다만 토요일과 일요일은 완전 자유. 남편은 토일 모두 자유인 것은 안된다고 반대했지만, 일단 평일습관이 필요하다고 생각했기에 해보자고 했다. 호기롭게 시작했는데. 수요일인 지금 벌써 흔들리고 있다. 가능한 플랜인가. 아이는 성장할 수 있는가. 나는 마음의 평화를 찾을 수 있는가.
 
월요일은 그럭저럭 잘 넘어갔다. 마침 내가 좀 일찍 퇴근해서 오후 4시30분쯤 귀가했다. 큰 아이의 귀가 시간은 4시 15분쯤. 아이는 웃음 띤 얼굴로 엄마가 집에 일찍 오니 좋지 않다며 핸드폰을 거실 거치대에 놓고 다른 할 일을 했다. 분위기 나쁘지 않았다. 할 일을 다 했다고 주장한 9시 반 이후 1시간 넘게 핸드폰을 붙잡고 있긴 했지만. 어쨌든 훨씬 나아진 모습이다.
 
중요한 것은 하교 후 인터넷과 떨어져 자신의 할 일을 해보는 경험이니까. 할 수 있다는 자신감, 약간의 자기긍정이 목표니까. 본인도 이대로 바보가 되고 싶지는 않다고 했다. 알긴 아는구나. 6학년 1학기 내내 스스로 하도록 내버려 뒀건만 하루 30분 하던 수학이 하루 10분으로 줄고, 한글책 소리 내서 녹음 10~30분 하던 것이 사라졌고, 영어책 듣고 소리 내서 녹음하기 매일 10~30분 하던 것도 이틀에 5분 정도로 줄어들었다. 그 시간은 고스란히 포키, 카톡, 카톡 프로필/펑 만들기, 유튜브로 대치됐다. 밖에 나가 농구라도 하면 덜 답답할 듯.
 
저녁 8시 시점으로 스크린 사용실태를 적기로 했다. 카톡은 항상 다운타임을 꽉 채우더라. 월요일 카카오톡 30분, 음성녹음 5분, 포키 5분 (사파리 5분), 유튜브 2분, 네이버 사진 3분, 메세지 3분. 화요일 카카오톡 30분, 음성녹음 10분, 포키 3분(사파리 3분), 메시지 3분. 문제의 수요일 오늘. 작심삼일이란 말이 괜히 있는 게 아니다. 확인하지 않고 나왔다. 보나 마나 카카오톡 30분, 포키 30분 (사파리 30분), 유튜브 30분 일 것 같다. 속이 터지고 한숨이 나와서 또 책 들고 집에서 나왔다.
 
마음이 불편하다. 하루 이틀 하고 말 것도 아닌데. 지난주 평균과 비교해보면 스크린 타임 무려 60% 이상 줄어들었으니까 얼씨구나 할 법도 한데. 내 마음이 그렇지가 않다. 월, 화 넘어와서 수요일 무너지는 모습에 한숨이 나온다. 왜 계속 인터넷에서 길을 잃고 너에게도 가치 없어 보이는 것에 시간을 쏟아붓고 있는 거니. 음. 따지고 보면 '계속'은 아니고 '오늘' 그런 건데. 스위치 켜고 끄듯 태세 전환되는 로봇도 아닌데. 좀 떨어져서 끄적이면 이런 생각도 다 든다. 글쓰기 만세.
 
브런치에 올라온 글을 통해 알게된 아이들 이야기를 떠올려 본다. 타투하고 피어싱 뚫고 오는 아이, 금고 속에 핸드폰 넣어도 비밀번호 바꿔서 새벽에 꺼내간다던 아이 이야기를 떠올려본다. 그래. 아이는 아직 타투도 하지 않고 피어싱도 먼 일, 밤에는 핸드폰을 두고 잠을 잔다. 눈을 씻고 찾아보면 아직도 칭찬할 일이 있다. 마음을 다 잡고. 긍정적이고 기다려줄 수 있는 마음이 된 다음에 집에 들어갈 거다. 글쓰기 만세.
 
어제저녁 기분 좋은 시간에 아이에게 물어봤다. 엄마는 왜 네가 누워서 핸드폰 하면 화가 날까? 너는 어때? 엄마가 핸드폰 보고 누워있으면 화가 나? 아무렇지 않아? 아들은 잠시 복잡 미묘한 표정을 짓더니 답하며 웃음을 슬쩍 흘린다. "그냥 엄마가 좀 더 부지런했으면 좋겠단 생각이 들어." 하. 그래 너도 그건 보기 싫구나 싶어 웃음이 났다.
 
아이나 어른이나 사람들 마음에 고약한 사장님, 치사한 시어머니가 사나 보다. 직원이 일 안 하고 놀고 있으면 왠지 손해 보는 것 같은 상사, 며느리가 부엌일 하지 않고 티브이 보며 낄낄거리면 심사가 뒤틀리는 치사한 시어머니 말이다. 물론 내가 다니는 회사의 상사나 우리 시어머니가 그렇단 얘기는 아니다. 그런 심보 고약한 어른이 되기는 싫다. 지적을 안 할 수는 없겠지만, 그렇더라도 기다려주고 긍정해 줄 수 있는 어른이고 싶다.
 
마음이 한 평 정도 넓어지도록 하는데 글쓰기가 특효다. 웃으면서 귀가할 수 있을 것 같다. 글쓰기 만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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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기 만세

아이의 작심삼일에도 기다려주는 어른 되기 쉽지 않다 | 이번주 월요일부터 시작했다. 아이는 평일과 주말을 구분해서 핸드폰을 쓰기로 했다. 평일에는 집에 오자마자 핸드폰 놓고 할 일부터 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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