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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과 6펜스「사람들은 같은 원을 늘 새롭게 돈다」

by 은지용 2023. 1. 17.



<달과 6펜스>는 화가 이야기다.
증권중개인으로 일하던 40대 중년남성이

어느 날 홀연히 가족을 떠나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폴 고갱의 인생을 모티브로 했다는데.
실상은 폴 고갱에 서머싯 몸의 상상과 인간에 대한 통찰이 덧대어져,
찰스 스트릭랜드라는 완전히 새로운 어느 예술가의 마이 웨이 스토리가 되었다.

20대의 젊은 나는 이 책이 사랑이야기가 아니라서 좋았다.
이 기괴한 주인공 화가한테는 말랑말랑한 이야기가 비집고 들어갈 틈이 없다. 미술이나 철학을 동경하기도 했지만. 세상에 존재하는 예술 절반 이상이 사랑타령인 게 마음에 안 들었던 어린 나에게, 이 책은 그야말로 매력덩어리였다. 과감히 자신을 내던지고 진정 원하는 바를 성취하기 위해 훌쩍 떠나는 인물이라니.

40대가 되어 다시 본 <달과 6펜스>는 차갑다.
사랑얘기도 결국 인간 테두리 안의 것이라 받아들이는 나이가 되면서, 아이 낳고나서, 그래서 내 마음이 너무 말랑말랑해진 것일까. 특별하고 위대한 화가 주인공 보다, 주변인물들에서 나를 더 많이 발견하게 되어서일까. 주변인물 면면 마다 작가 특유의 예리한 관조의 날이 서있다. '차가운 비웃음이 깃들어 있다(p.17)'. 그래서 책을 보면서 내가 베이거나 토막나는 기분이 들었다. 수많은 인간상에 대한 작가의 관심과 통찰이 집요하게 다가왔다.

 


남편이 돌아가기를 바라는 것도 진정으로 사랑하는 마음 때문인지, 아니면 그저 구설수가 무서워서인지 판단할 수 없었다. 부인의 상심 가운데에는 버림받아 괴로워하는 마음과 자존심을 상해 고통스러워하는 마음이-내 젊은 마음에는 그런 자존심이 야비하게 여겨졌다-뒤섞여 있지 않나 해서 마음이 어지러웠다.

그때만 해도 나는 인간의 천성이 얼마나 많은 모순투성이인지를 몰랐다. 성실한 사람에게도 얼마나 많은 가식이 있으며, 고결한 사람에게도 얼마나 많은 비열함이 있고, 불량한 사람에게도 얼마나 많은 선량함이 있는지를 몰랐다.

P.56 <달과 6펜스> 서머싯 몸, 민음사

 


그녀 역시, 고상한 여자가 흔히 갖는 속일 수 없는 본능, 그러니까, 남의 돈으로 살아야 정말 체면이 선다고 여기는 그 본능을 가지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P.306


사건은 어느 여름날 찰스 스트릭랜드가 아무 언질 없이 가족을 떠나면서 시작된다. 주변 사람들은 그가 누군가와 눈이 맞아 도망간 연애사건이라고 확신했다. 평소 예술가들과 교류하던 그의 부인은 책의 서술자인 작가를 만나 메신저 역할을 요청한다. 집으로 되돌아오도록 잘 설득해 달라고. 그가 떠난 이유가 그림을 그리기 위해서라고 생각하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작가는 상실감에 목놓아 손수건이 모자라도록 우는 그녀를 도와주고 싶었다. 그러면서도 그녀의 감정이 뭔가 앞뒤가 안 맞는다고 느꼈다. 그녀가 구설수가 무서워 우는 연기를 한 것인지, 정말 그 남자를 사랑해서 괴로운 것인지 마음이 어지러웠다고 말했다. 그 모두가 그녀의 실제이자 감정이었을 것이다. 작가가 콕 찍은 것처럼 인간은 모순투성이니까.

 

내가 그녀의 입장이 된다면.

만약 남편이 어느 날 가족여행을 마치고 왔는데 사라졌다면? 당장 아이들 사교육비용, 쓰레기 버리는 일, 가족 경조사 등을 치를 일이 걱정될 것 같다. 그리고 아이들이 받을 걱정 어린 시선과 혹시 모를 비난을 떠올릴 듯. 나의 짝꿍이 나를 버렸다는 배신감과 상실감이 있겠지만, 분노나 슬픔보다 앞으로 나와 남겨진 가족이 맞닥뜨릴 불편한 일들이 막막할 것 같다. 내 안의 가식과 비열함.

 

내가 스트릭랜드라면 어떨까.

하지 않으면 견딜 수 없는 무엇을 위해 가족을 떠난다? 오직 나만을 위해 부양가족을 저버리는 일은 상상만으로도 너무 무책임하고 불손하게 느껴진다. 그래도 한편으론 내가 선택하지 않은 화가로서의 삶, 삼류 철학가로서의 인생, 미혼의 일생을 가끔 상상해 본다. 궁핍하고, 편협하고, 그러나 영감 넘치도록 온전히 나로만 사는 이기적인 삶을 가끔 그려본다. 그래. '유리창을 보면 벽돌 조각을 집어던지고 (P.219)' 싶어지는 충동이 내 안에 있음을 인정한다. 내 안의 또라이.

스트릭랜드가 파리에서 만난 화가 스트로브에서도 나는 나를 본다.

스트로브의 그림은 그럭저럭 인테리어용으로 팔리지만 심금을 울리진 않는다. 위대하거나 훌륭하다 수식할 수 없는 그렇고 그런 직업 화가이다. 나 역시, 지금 다니는 회사에서 결코 두드러지는 인재는 아니다. 그냥 그럭저럭 밥벌이는 하고 있는 그렇고 그런 직업인이다. 심지어 딱 스트로브 같은 남편과 함께 산다. 내 안의 그럭저럭.

 

단 영화, 그림, 음악, 책을 고르는 데에는 나름의 가치판단 기준이 있다. <달과 6펜스> 같은 책을 보면 전율한다. 스트로브가 스트릭랜드의 그림을 보고 전율한 것처럼. 스트릭랜드가 그린 그의 아내 블란치 그림을 차마 찢어버리지 못한 것처럼 말이다. 나의 심미안.

 

궁핍한 생활에 다 죽어가던 주인공을 간호해 주고 화실도 내어줬지만 이들의 관계는 결국 비극으로 끝났다. 지옥으로 가는 길은 선의로 포장되어 있다 했던가. 블란치가 자살한 이후 스트로브는 고향에 돌아갈 거라며 인생의 지혜에 대해 언급한다.
다른 곳에 눈길 돌리지 않고 그저 부모님이 간 길을 밟는 평범하고도 지키기 힘든 위대한 지혜를.

그런데 이게 어쩌면

이렇게나 공허하게 들릴까.

 


아버지는 내가 당신처럼 목수가 되기를 바라셨네. 우리는 오대(五代)를 같은 직업으로 이어왔지. 하기야 그게 인생의 지혜일지도 몰라. 다른 곳에는 눈길을 돌리지 않고 그저 아버지가 간 길을 밟는 것 말이야. 어렸을 적에 나는 마구 만들던 옆집 딸에게 장가를 들겠다고 했지. 눈이 푸르고 아마색 머리칼을 곱게 땋아 내린 조그만 계집아이였어. 그 애와 결혼했더라면 아마 집안을 아주 깔끔하게 정돈하고 살면서, 나도 가업을 이을 아들 하나쯤 두었을지도 몰라.

P.183





찰스 스트릭랜드의 모델이 된 폴 고갱의 대표작 제목이 '우리는 어디에서 왔는가, 우리는 무엇인가, 우리는 어디로 가는가'이다. 미국 보스턴 미술관 한쪽 벽면을 채우는 엄청나게 커다란 작품이다.

서머싯 몸이 <달과 6펜스>에 부제를 붙인다면 이것 아니었을까 싶다; 인간의 속성 - 우리는 어디에서 왔는가, 무엇인가, 어디로 가는가.

 


지혜로운 이들은 점잖게 자기들의 길을 간다. 그들의 그윽한 미소에는 너그러우면서도 차가운 비웃음이 깃들여 있다. 그들은 자기들 역시 지금의 젊은이들처럼 소란스럽게, 그들처럼 경멸감을 가지고 안일에 빠져 있던 구세대를 짓밟아왔던 일을 기억한다. 또한 지금 용감하게 횃불을 들고 앞장선 이들도 결국은 자기들의 자리를 물려주게 되리라는 것을 안다. 마지막 말이라는 것은 세상에 없다. 옛 도시 니네베가 그들의 위업을 하늘 높이 쌓아 올렸을 때 새로운 복음은 이미 낡은 것이 되어버렸던 것이다. 말하는 당사자에게 자못 새롭게 여겨지는 용감한 말도 알고 보면 그 이전에 똑같은 어조로 백 번도 더 되풀이되었던 말이다.

추는 항상 좌우로 흔들리고,
사람들은 같은 원을 늘 새롭게 돈다.

P.17


그는 책 속에서 분명하게 꼬집는다.

모순투성이 인간은 같은 원을 늘 새롭게 돌고 있다고.

스트릭랜드는 그 루트에서 살짝 비껴 서서 그 원을 분명히 바라보았다.

그리고 작가는 스트릭랜드를 통해 그것을 엿봤다.

책 속에서 스트릭랜드가 유일하게 괜찮다 했던 다른 화가는 브뤼겔이다. 그의 작품은 여럿이 있지만 내 생각에 스트릭랜드가 마음에 둔 작품은 이카루스의 추락일 것 같다. 한번 더 강조하지만, 이건 그냥 막 내 생각이다. 그 작품이 닿을 수 없는 이상, '달'을 연상시키기 때문이다.

그리스로마 신화에서 밀랍과 깃털로 날개를 만들어 하늘을 날았던 최초의 인간이 이카루스다. 그는 그러나 하늘을 날 때 태양 가까이 가면 밀랍이 녹아 떨어질 것이라는 아버지의 충고를 무시하고, 하늘을 나는 사실에 도취해 너무 높이 날아서 결국 추락한다.

 

브뤼겔의 그림 속에서 이카루스는 거의 숨은 그림 찾기다. 일상을 계속 사는 보통 사람들, 어디 부두의 풍경화 같다. 거대한 망망대해 어디 구석에 거꾸로 처박혀 허우적대는 다리가 물 위로 조그맣게 보인다. 제목은 분명 이카루스의 추락인데 그림에서 그가 차지하는 비중은 100분의 1도 될까 말까 하다.

 

웃긴데, 웃으려니 좀 슬프다.

 

 


그는 인간을 그로테스크하게 보는 듯했다. 인간이 그로테스크했기 때문에 인간에 대해 분노를 느꼈다. 인생은 우스꽝스럽고 지저분한 일들의 뒤범벅이고 웃기에 적절한 소재였다. 하지만 웃으려니 슬펐다. 내가 브뤼겔에게서 받았던 인상은, 그가 다른 매체로 표현하면 더 나았을 감정을 자신의 매체로 표현하고자 안간힘을 쓰는 인간이라는 점이었다. 스트릭랜드가 그에게 공감했던 것도 바로 그 점을 어렴풋이 의식했기 때문이었으리라.

두 사람은 모두가 문학에 더 적합한 관념을 그림으로 표현하려고 애쓰고 있었던 것 같다.

모르긴 몰라도 그때 스트릭랜드의 나이는 마흔일곱에 가까웠을 것이다.

P.223


책 속에 달 이야기는 전혀 나오지 않는다. 다만 달이 인간이 추구하는 이상 같은 것, 닿을 수 없는 것이라면. 이카루스가 하늘을 나는 행위도 달에 가까울 것 같다. 그리고 그의 위대한 시도는 지혜로운 아버지의 충고를 무시하면서 실패하고, 이는 곧 6펜스로 대표되는 인간의 일상에 파묻히고 잊힌다.

 

많은 이들에게 이카루스란 사람이 어떤 이상을 좇았는가는 별로 문제 되지 않는다. 적어도 당장은. 그리고 이는 계속 형태를 바꿔 반복된다. 달도 초승달에서 보름을 거쳐 그믐까지 반복되는 변화를 늘 새롭게 보여주지 않던가.

인간의 속성은 달과 6펜스로 줄여서 말할 수 있을까.
2할의 달과 8할의 6펜스 정도면 좀 더 와 닿을까.

달과 6펜스.
역시 온기보단
서머싯 몸의 냉소가 느껴지는 제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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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나 많은 모순투성이인지

<달과 6펜스> 스트릭랜드와 스트로브 사이에서 | <달과 6펜스>는 화가 이야기다. 증권중개인으로 일하던 중년남성이 어느 날 홀연히 가족을 떠나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폴 고갱의 인생을 모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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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웃으려니 슬펐다

<달과 6펜스> 스트릭랜드의 화가 브뤼겔, 그리고 | 피터 브뤼겔. 서머싯 몸의 <달과 6펜스> 속에서 스트릭랜드가 유일하게 흥미를 가졌던 화가다. 브뤼헐이라고도 불리는 네덜란드 화가로 책 속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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