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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상적 개별자의 철학 산책/서양철학사 : 군나르 시르베크 & 닐스 길리에

2-1. 소피스트들 (1)

by 은지용 2025. 4. 5.

 

"이 세상에 절대적으로 옳은 것은 없다."

 

많은 소피스트가 우리가 옳다거나 정의롭다고 칭하는 것들이 단지 임의로 강요된 것에 불과하다고 주장했습니다. 도덕성도 사람에 따라 여러 다른 방식으로 정의될 수 있기에, 보편타당한 진정한 도덕성은 존재하지 않으며, 존재하는 것은 오직 서로 다른 이기적인 호불호뿐이라고요. 굉장히 회의적이고 상대적이며 어찌보면 현대적입니다.

 

소피스트들이 활동한 시대는 기원전 400년경.

 

기원전 600~450년경까지 그리스는 자연철학의 시대를 거쳐왔습니다. 누구는 물이 우어슈토프라고 주장하고 (탈레스) , 다른 철학자는 그것이 아페이론 즉 규정되지 않은 것이라 하고 (아낙시만드로스), 어떤 철학자는 공기를 (아낙시메네스), 또 어떤 이는 불을 (헤라클레이토스), 그리고 또 다른 이는 원자를 원소라고 하질 않나 (데모크리토스). 어떤 철학자는 네 개의 원소를 제창하고 (엠페도클레스), 다른 이는 그 수가 무한하다고 (아낙사고라스) ... 도대체 이 많은 주장이 다 옳을 수 없고 실상은 하나만 옳을 텐데. 어떻게 이렇게 많은 주장이 제기되는가 싶었던거죠... 사람들은 관심의 대상을 자연에서 인간과 그의 생각으로 옮깁니다. Anthropocentric (안트로포스 anthropos). 기원전 450년경 인간 자신이 관심의 중심이 되었고, 이로써 우리는 인간중심적 시기로 들어갑니다. 

 

이제 윤리적-정치적 물음이 제기되기 시작합니다.

 

최초의 그리스 철학자들이 모든 변화 속에서도 변하지 않는 하나의 요소에 대해서, 다양성 속 통일성에 대해 물음을 제기했던 것처럼. 이제 그리스 철학자들은 서로 다른 풍습과 관습의 다양성 속 하나의 보편타당한 도덕성과 정치적 이상을 찾아낼 수 있는가 하는 물음을 제기합니다. (당시 그리스는 다른 종족과의 대면이 활발히 진행됐었다고 합니다-관련 역사 궁금합니다)

 

보편타당한 도덕성과 정치적 이상에 대한 답변은, 당연히, 여러가지가 있었겠지요. 답변들 가운데 그것이 존재한다고 전제하는 쪽이 있던 반면, 사실상 보편타당한 도덕성과 정치적 이상은 없다고 전제하는 쪽이 있었습니다. 후자가 소피스트 쪽이었지요. 아주 회의적으로 들려요. 사춘기 때 소피스트들이 아주 매력적으로 다가왔던 이유가 이거였나봅니다. (고등학교 윤리 시간에 배운 철학 이야기 중 기억나는 것은 소피스트와 에피쿠로스 뿐)

 

사실 그렇잖아요. 하나의 도덕 규범을 연역적으로 입증하고자 한다면, 우리는 논증의 출발점이 되는 보다 높은 수준의 도덕규범을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오직 그 자체로는 입증되지 않은 상위의 규범을 이용해야만 하죠. 아래처럼요.

 

예1 ) 다른나라의 굶주리는 아이들에게 식량을 줘야한다 <- 곤궁에 처한 사람을 도와야 한다 <- 사람은 마땅히 그래야 한다?/ 신이 그것을 원한다

예2 ) 남편에게 밥을 차려줘야 한다 <- 남편도 스스로 차려먹을 수 있는데? 그것이 아내의 의무이다 <- 사람은 마땅히 그래야 한다?/ 신이 그것을 원한다

예3 ) 올림푸스 신에게 제사를 드려야 한다 <- 신이 그것을 원한다

 

또 도덕성과 법적 원리는 지각이나 관찰에 의해 확증될 수 없습니다. 그렇게는 증명이 안됩니다. '철수의 머리가 검다'와 같은 진술은 무언가를 봄으로써, 확증되고 반증 될 수 있지만 '철수는 심부름을 가야한다'는 윤리적-정치적 진술은 그게 안되죠. 종합하자면, 형식과학(연역)과 실험과학(지각/관찰)에서 사용되는 접근방식으로는 불충분합니다. 윤리적-정치적 문제들에 관해서는 다른 논증 방법들이 있다고 책에서 말하는데. 그게 뭘까요.

 

여튼. 소피스트들은 인식론적 문제에 대해서는 회의론적인 경향을 보였습니다. '확실한 지식은 없다'는 거죠. 또 윤리적-정치적 문제에 대해서는 상대주의적인 경향을 보였습니다. '보편타당한 도덕성이나 윤리란 존재하지 않는다.' 일부 소피스트들은 "우리가 좋은 도덕성이라고 칭하는 것은 단지 사람들이 좋아하는 것의 은폐된 표현에 불과하다"고 말했다네요.

 

이 같은 상대주의가 매력적이긴 한데. 지배층이나 보수들은 좋아했을 것 같진 않아요. 기존의 사회질서를 위협할 것 같잖아요. 

 

소피스트들은 교사인 동시에 저널리스트였으며 지식인이었습니다. 그들은 정치에 적극 참여하고 교육비를 지불할 능력이 있는 사람들에게 지식과 교양을 전수했습니다. 도대체 무엇을 배웠을까요? 논변하고 설득하는 법을 가르쳤다는데, 변호사 교육을 실시한 것 처럼 들립니다.

 

소피스트들의 고객들은 서로 다른 이해관계를 가졌기 때문에, 정말로 법정의 법률가처럼 서로 다른 목적을 위해 찬반의 논변을 해야 했다고 합니다. 고객의 목적은 승소이지, 올바른 해답은 아니었죠. 결과적으로 소피스트들은 종종 합리적 논증의 기술보다는 논쟁의 요령과 속임수를 가르쳤습니다. 그래서 오늘날 그들은 사소한 일이나 따지고 있는 궤변가로 취급받기도 합니다.

 

소피스트들은 그들의 상대주의적인 속성으로 인해 점차 사람들의 신망을 잃기 시작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