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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게읽기/Frankenstein

나, 부모, 오만과 겸양, 연금술과 엔트로피

by 은지용 2023. 11. 20.

 

 
이 소설에는 총 3명의 내가 나온다.

2챕터까지는 두 명의 '나'만 나왔다. 1. 처음 편지를 시작하는 월턴. 그는 북극 항로를 개척하기 위해 지금 막 미지의 세계로 배를 출항했다. 얼음 위에서 죽기 직전의 프랑켄슈타인을 만나 이야기를 듣게 된다. 2. 이야기를 끌어가는  프랑켄슈타인. 유복한 가정에서 사랑받으며 자라난 그가 연금술에 심취하고, 자연 철학(과학)을 공부한다. 3. 그리고 프랑켄슈타인의 피조물. 그는 프랑켄슈타인이 성취를 이룬 후 나온다. 이들 '나'는 모두 꽤 설득력 있다. 또 메리 쉘리를 연상시키기도. 무엇보다, 환경은 달라도, 감정적으로 나와 참 많이도 닮았다.
 

첫 두 주간 챕터 2까지 읽으며 내 마음에 남은 원문 가운데 몇 줄을 옮겨봤다. 


 
P.17
My courage and my resolution is firm; but my hopes fluctuate, and my spirits are often depressed. I am about to proceed on a long and difficult voyage, the emergencies of which will demand all my fortitude : I am required not only to raise the spirits of others, but sometimes sustain my own, when theirs are failing.
 
P.20
A youth passed in solitude.
 
P.21
The winter has been dreadfuly severe, but the spring promises well.
내겐 새로운 발견 - promises of spring. 한국어로는 봄이 오는 소리? 봄의 신호? 
 
P.21
It is impossible to communicate to you a conception of the trembling sensation, half pleasurable and half fearful, with which I am preparing to depart. 기쁘면서도 두려운 떨림. '존재하는 삶'과 '행위하는 삶' 중 행위하는 삶이 주는 기쁘면서도 두려운 떨림. 그것.
 
책은 '행위하는 삶'의 위험에 대해 얘기하려고 한다. 그것에는 우러러보게되는 위대함이 분명 깃들어 있는데. 역시 그것의 위험을 경고하는 이도 많다. 그러나 위험하다고 집 안에서만 지낼 수는 없지 않나... 떨림도 느껴보고, 좌절도 해보고, 성취도 맛보고, 후회도 하는게 인간 아닐까. 그러다 다같이 망하면 할 수 없고? 균형은 항상 어렵다.
 
P.35
I was their plaything and their idol, and something better - their child, the innocent and helpless creature bestowed on them by Heaven, whom bring up to good, and whose future lot it was in their hands to direct to happiness or misery, according as they fulfilled their duties towards me.
 
P.39
No human being could have passed a happier childhood than myself. My parents were possessed by the very spirit of kindness and indulgence. We felt that they were not the tyrants to rule our lot according to their caprice, but the agents and creators of all the many delights which we enjoyed.
 
메리 쉘리의 이야기를 보다가 나도 모르게 “아 진짜? Seriously?”할 때가 몇 번 있다. 프랑켄슈타인 부모는 이렇게나 완벽했다고 정말? 아무리 판타지에 괴물이 나오는 이야기라지만, 가족에 관한한 이건 너무 단순한 설정 아닌가 싶을 때가 있고, 이 부분도 그런 순간이다. 동시에 그녀의 로망이었다 생각하면, 고개를 끄덕끄덕하게도 된다. 그녀의 엄마는 그녀를 낳다가 돌아가셨고 새엄마와 살았다고 한다. 그래서일까. 이 책 보면서 부모로서의 책임을 참 많이 돌아보게 된다. 아이들이 아기였을 때 나 스스로 폭군tyrant가 되지 않으려 마음을 여러번 다잡았던 기억도 난다.

아마 부모 이야기는 외모 이야기와 함께 책을 보는 내내 언급될 주제일 듯 하다. 

 
P.40
Natural philosophy is the genius that has regulated my fate.
 
자연 철학이란 것은 사실상 물리학 같은 학문이라고 한다 ! 과학과 철학을 하나의 흐름에서 보는 관점. 그래 크게 보면 이게 더 자연스러울 것 같다.

 
P.41
I have described myself as always having been imbued with a fervent longing to penetrate the secrets of nature. In spite of the intense labour and wonderful discoveries of modern philosophers, I always came from my studies discontented and unsatisfied. Sir Isaac Newton is said to have avowed that he felt like a child picking up shells beside the great and unexplored ocean of truth. ....(중략)... The untaught peasant beheld the elements around him, and was accquainted with their practical uses. The most learned phiolosopher knew little more.
 
아이작 뉴턴의 코멘트, 칼 세이건의 <코스모스>에서도 언급이 되었던 그의 코멘트는 정말 멋있다. 나는 그저 드넓은 미지의 바닷가에서 조개껍데기를 주우며 노는 어린아이. 최고로 많이 배운 철학자(과학자)는 (농부들보다) 조금 더 아는 것이다. 그녀는 인간의 탐구 의지는 어쩔 수 없다쳐도, 오만함은 봐줄 수 없던 걸까. 겸양을 말하는 이 문장들이 마음에 들어왔다.

The most learned phiolosopher knew
little more.


 
Hubris 휴브리스. 인간의 오만함을 말하는 개념이라고 한다. 인간의 행동을 규제하는 한계를 불손하게 무시하는 자만, 교만을 일컫는다. 오이디푸스, 아라크네, 아틀란티스가 대표적 인물들인데. 모두 신의 위상을 넘보고, 자신을 지나치게 믿다가, 후에 벌을 받는다. 벌을 주는 주체는 역시 신이다. 프랑켄슈타인도 그 범주에 들어갈 수 있겠다.

v-club 설명영상 캡쳐


 
Alchemy 연금술. 프랑켄슈타인은 어렸을 때 연금술에 빠졌다. 연금술은 납을 금으로 만드는 학문(?)이었다. ‘금은 변화라는 엔트로피를 거부하는 거의 유일한 금속이다.’ 오랜 동안 진지하게 연구되어 왔지만, 다른 금속을 금으로 변환시키는 비용이 합리적이지 않기에 사실상 불가하다. 프랑켄슈타인이 연금술사 아그리파의 책에 흠뻑 빠졌을 때, 그의 아빠는 '한심한 쓰레기'라고 짧게 말했다. 마녀를 연구한 학문이 있었다면 그런 대우를 받았을까. 
 
연금술의 오래된 금언에는 '인간이 바로 신이다'는 구절이 있다. 납을 금으로 변화시키듯 인간의 내부에 숨겨져 있는 잠재력을 끌어내어 신성화된 존재로 탈바꿈시키는 것을 의미하는 구절이다. 신이 없다면 어떤 인간도 위대해질 수 없다는 것 (위키피디아 발췌)’. 연금술이 가리키는 방향을 보면 그러하다. 그 자체는 이제 의미없는 구닥다리일지 몰라도 그것이 가리키는 방향은 인간 안의 신.
 
한편으로 내게는 '가지고 오는, 빌려오는, 흘러가는, 변화하는', 눈에 보이고, 손에 만져지는 것들에 관한 개념이 연금술과 닿아있다. 물질은 정말 사라진다기 보다 어디론가 흘러가는 것 처럼 보인다. 쓰레기를 버린다고 그 쓰레기가 사라지는 건 아니며, 단지 다른 곳으로 이동할 뿐 아니던가. 시간이라는 함수가 작용하면 차원이 달라지지만, 역시나 완전히 사라진다기보다 바뀌는 것 처럼 보인다. 죽은 사람도 흙으로, 먼지로. 마법을 이야기하는 판타지 이야기에서 엔트로피의 또 다른 형태로 존재하는 것이 연금술. 이 부분은 좀 더 생각을 다듬어봐야 분명해질 것 같다. 아직은 뜬구름.
 
책을 보면서 자꾸 <어스시의 마법사>가 떠오를 것 같다. 존재하는 삶과 행위하는 삶, 나의 피조물에 관한 이야기. 그 이야기도 어느 정도 프랑켄슈타인에 빚지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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