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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기일기

I may be wrong

by 은지용 2024. 6. 30.

 
<내가 틀릴 수 있습니다>
 
두 달 동안 읽은 책. 온라인 원서읽기 브이클럽 단톡방에서 매일 한 챕터씩 읽었습니다. 총 38챕터.
 



브이클럽에서 진행하는 책을 항상 한글책과 같이 읽었습니다만. 이번 책은 문학도 아니고, 옛날 책도 아니라, 가벼운 마음으로 영어책만 읽었습니다. 작가가 전하는 메세지가 매우 분명해서 자꾸 반복되기에, 전반적인 주제를 이해하는데 어려움은 없었어요. 단어는 솔직히 단톡방의 다른 분들이 찾아주는 것을 커닝했고, 이해 안되는 부분은 브이클럽 설명영상을 참고하거나, 그냥 넘어갔지요. 물론 정말 궁금한 단어는 몇 개 찾아봤어요. 모든 문장을 이해하겠다는 생각을 내려놓은지 오래다보니, 더욱 부담 적은 영어책 읽기였습니다. (덕분에 다른 소설책도 읽고, 외국어 루틴이라는 게시물도 몇 번 작성했네요... https://m.blog.naver.com/whosfingers/223482599250 )
 
책을 쓴 비욘 나티코는 2022년 사망했습니다.
 
1961년 태어났고, 스웨덴 공기업 AGA 최연소 회계임원으로 사회생활을 했다네요. 잘 나가는 생활인 것 같았지만 뭔가 만족스럽지 않았겠죠. 마음 속 목소리를 따라 방황하다가 태국에서 승려가 됩니다. 17년간 승려로 살며 모은 에피소드며, 승복을 벗은 후 우울증으로 고생하다가 노동시장에서 자기자리를 겨우 찾은 이야기도 책에 나옵니다. 이후 엘리자베스라는 생의 협력자를 만나 노년을 함께 하지만, 루게릭병 진단을 받아요. ALS, 루게릭병은 몸의 근육이 서서히 마비되는 병으로 단추 끼우는 게 힘들어지고, 숟가락을 드는 것도 어려워다가, 급기야 숨 쉬는 근육도 멈추는 병이라고 합니다. 내 몸이 내 몸이 아닌 병이랄까요.
 
책은 비욘 나티코가 루게릭병 진단을 받은 이후, 생을 마감하기 직전까지 쓰여진 듯 해요. 책의 마지막은 삶을 마감하는 순간 내 눈에 담고 싶은 것은 엘리자베스 당신의 눈이라며, 그녀에게 하는 말로 마무리 됩니다. Elisabeth, if you're not already in my bed then, crawl in with me and hold me. Look me in the eyes. I want the last thing I see in this life to be your eyes. (p.233)

 


 
 
이야기는 그가 8살 무렵 주변의 아름다움을 다시 보게 되는 순간에서 출발합니다. 남부 스웨덴의 어느 섬, 조부모댁에서 비욘은 제일 먼저 깨어났습니다. 남동생 닐스가 깨어나길 기다리다가 문득, 부엌 창문을 바라봤습니다. 그리고 모든 것들이 새삼스럽게 너무나 아름다워 보이는 자각의 순간을 겪지요. 이 깨달음은 현재를 충만하게 사는 것에 대한 열망(?) 혹은 열반(!), 그 씨앗이 된 듯 해요. 책에서 시종일관 말하는 '현재를 사는 것 being present'의 시작인거죠.
 
I pause at the kitchen window. Suddenly, the noise inside me falls silent.
 
Everything goes quiet. The chrome toaster on the windowsill is so beautiful I skip a breath, Time stops. Everything seems to shimmer. A couple of clouds smile down from a pale morning sky. The birch tree outside the window waves its glittering leaves. Everywhere I look, I see beauty.
 
I probably didn't put my experience into words back then, but I would like to try to now. It was as though the world was whispering: 'Welcome home.' For the first time, I felt completely at home on this planet. I was present in the here and now, with no thoughts. (p.1)
 
주어진 것에 만족하는 순간이 현재에 온전히 머무르는 것일까요. 부엌 창가의 토스터기가 아름다워보이는 순간. 창문을 통해 보이는 구름, 하늘, 자작나무와 흔들리는 이파리들이 미소짓고 눈부신 순간. 여기가 내가 존재하는 집이구나 싶은 순간. 알 것도 같고, 모를 것도 같아요. 저는 부엌 창을 통해 보이는 구름과 나뭇잎이 아름다워 보일 순 있지만, 밥솥이 아름다워 보일지는 잘 모르겠거든요.
 
이미 지나간 과거나 아직 일어나지 않은 미래를 걱정하고, 그 생각들에 함몰되는 것을 경계하는 것. 현재를 충분히 만끽하며 살라고 비욘 나티코는 계속 말해요. 마음에 거리낌을 남기지 말고, 도와줄 사람 도와주고, 사과할 사람 사과하고, 용서할 사람 용서하고. 마지막 순간에도 being present를 위해 세상에서 제일 사랑하는 엘리자베스에게 내 두 눈에 당신의 눈을 담아달라고 요청했던 거겠죠?! (저는 생의 마지막에 남편의 두 눈 보다는 다른 것을 보고 싶을 것도 같은데....)
 
 


 

책의 제목에 대한 이야기며, 태국 승려 생활 이야기, 태국 승려와 왕의 귀한 어록 등 기억에 남는 문장들이 참 많아요. 좋은 말도 많고요. 제목이 된 내가 틀릴 수 있습니다도 어느 태국 승려의 매직 만트라 에피소드에서 나옵니다. 아름다운 문장이죠. 세상 사람들이 마음 속에 이 말을 품고 산다면, 분쟁이 존재하기 어려울 것이고, 분노도 강도가 약해질 것 같습니다. 내가 틀릴 수도 있거든요. 그럴 수도, 아닐 수도. I may be wrong. (p.86) Maybe, or maybe not. (p.89)
 
 
기억에 새기고 싶은 말은 카르마에 관한 것입니다. 세상을 사는 것은 Trust Fall 같아요. 여행 중이나 길에서 어려움에 처했을 때, 생각보다 도와주려는 사람들이 있어요. 비욘 나티코는 자신이 모르는 이로부터 도움받은 사례를 많이 얘기해줍니다. 세상이 그렇게 무분별하고 차갑고 무작위적인 곳이 아니라, 도움이 곳곳에 있는 곳이라고 말해요. 다만 주변환경을 통제하려 하면 할수록, 스스로 그 불편함을 많이 느끼기 마련이라고. 내가 세상을 대하는 방식, 바라보는 방식이 곧 세상인 것이라고요. What we send out eventually comes back. The world is not as it is, the world is as you are. (p.210)
 
 
그리고 Dad라는 챕터를 기억하고 싶네요. 부모님이 승려가 되겠다 했을 때와 사회로 돌아와 우울증에 빠졌을 때의 반응도 기억에 남아요. 아빠의 죽음 뿐 아니라 나티코가 죽음에 대해 하는 이야기도요. 죽음에 대한 인식과 BEING PRESENT는 불가분의 관계겠죠. 이건 따로 얘기해보고 싶어요. 조금 더 얘기하고 싶을 때 말이죠. You will know what you need to know when you need to know it. (p.127)
 
 


 
 
아쉬움. 마지막에 엘리자베스의 한 마디가 실렸다면 어땠을까. 책을 만든 이 사람 저 사람의 한 마디 가운데 그녀의 한 마디가 있었다면 좋았을 듯. 중간 제목들은 이게 정말 최선이었던 것일까. 단톡방에 공유되는 번역본의 중간제목도 썩 와닿지는 않았...  소리내서 읽을 때 아빠 챕터가 생각보다 굉장히 강력했는데, 이걸 어디에 배치하는게 제일 좋았을까요...
 
브이클럽 나리쌤의 완독 인증 이벤트에 응답하고자, 쓰는 글입니다. 항상 말하지만 혼자 읽었다면, 35번째 Dad 챕터까지 가지 못했을 겁니다. 13챕터 I may be wrong 나오는데서쯤 멈췄을듯. 무엇보다 모든 챕터를 소리내서 녹음한 나를 칭찬합니다.



 

브이클럽 설명영상 캡처
영화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앳원스 중 가장 인상적인 장면이 돌이 되는 장면이었어요. 책을 읽은 후 이 장면에 이런 자막을 붙여주고 싶어져요 “I was present in the here and now, with no though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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