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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기일기

삼체 1

by 은지용 2024. 6. 3.


저격수sniper와 농장주farmer

과학의 경계 학자들은 토론할 때 ‘SF’라는 단어를 자주 사용했다. 그들이 사용하는 SF는 과학 소설(Science Fiction)의 약자가 아니라 앞에서 말한 두 단어의 영문 약자였다. 이것은 두 가지 가설에서 출발하고 모두 우주 규칙의 본질과 관련된다.

‘저격수 가설’은 저격수가 과녁 10센티미터 간격으로 구멍을 뚫어놓았다는 설정에서 출발한다. 이 과녁의 평면에 2차원 지능의 생물이 살고 있다고 가정해보자. 그들 중 과학자가 자신의 우주를 관찰한 결과 ‘우주에는 10센티미터마다 구멍이 하나씩 있다’는 위대한 법칙을 발견했다. 그들은 저격수가 잠깜 흥에 겨워 아무렇게나 한 행위를 자신들 우주의 절대적인 규칙으로 본 것이다.

‘농장주 가설’은 공포스러운 색채를 띤다. 한 농장에 칠면조 무리가 있다. 농장주는 매일 오전 11시에 그들에게 먹이를 주었다. 칠면조 중의 과학자가 이 현상을 꾸준히 관찰한 결과 1년여 동안 예외가 없다는 것을 알아냈다. 그래서 ‘매일 오전 11시에는 먹이가 있다’는 위대한 법칙을 발견했다고 생각하고는 추수감사절 새벽에 칠면조들에게 이 법칙을 공표한다. 그러나 그 날은 오전 11시가 되어도 먹이가 나타나지 않고 농장주가 들어와 그들을 모두 잡아 죽인다.

P.37-38 <삼체 1> 류츠신, 자음과 모음




“그러니까, 우주가 당신을 향해 눈을 깜박거렸다는 말이지?”
스창이 국수를 먹듯 천엽볶음 반을 삼키고는 고개를 들어 물었다.
“참 적절한 비유로군요.”
“허튼소리.”
“당신이 두렵지 않은 것은 무지하기 때문이죠.”
“그것도 허튼소리. 자, 건배!“
그 잔을 마시자 세상이 자기를 중심으로 빙글빙글 도는 것 같았다. 앞에 앉아서 천엽을 먹는 스창만이 안정적이었다.
"스창, 당신은 궁극의 철학 문제를 생각해본 적 있습니까? 아, 예를 들어 인간은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갈까, 우주는 또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갈까하는 것 말입니다."

"없어."

"한 번도요?"

"응, 한 번도."

"당신은 살면서 계속 밤하늘을 봤잖아요. 그런데 경외심이나 호기심이 안 생깁니까?"

"밤에는 하늘 안 봐."

"어떻게 그럴 수가 있지? 밤 근무 자주 하잖아요."

"이봐, 밤에 잠복하면서 하늘을 보다가 내가 감시하던 놈이 도망가면 어떻게 하나?"

"우린 정말 말이 안 통하는군요, 건배!"

"사실 말이지, 나는 하늘의 별을 봐도 당신이 말한 궁극의 철학 같은 것은 생각 안 해. 신경 써야 할 일이 한두 가지가 아니거든. 집도 얻어야지, 애들 대학도 보내야지, 한도 끝도 없는 사건들은 말할 것도 없고 ..... 나는 척 보면 입부터 똥구멍까지 다 보이는 솔직한 사람이야. 그러니 상사의 환심을 살 수가 없지. 퇴역하고도 얼마나 뒹굴었는데 아직도 이 모양이니. 일이라도 안 했으면 진작 차였지. 이렇게 생각할 게 많은데 무슨 마음으로 별을 보며 철학을 생각하겠나?"

 

"그것도 그러네요. 자, 건배!"

"그래도 말이야, 내가 정말 궁극의 이치를 발견했지."

"말해봐요."

"불가사의한 일 뒤에는 반드시 귀신이 있다."

"무슨.....헛소리!"

"여기서 '귀신이 있다'는 것은 누군가 음모를 꾸민다는 거야."

"당신이 기본적인 과학 상식만 있었어도 누군가가 이런 일을 할 수 있을 거라곤 상상할 수 없었을 겁니다. 특히 나중에 일어난 일은요. 우주 전체의 차원에서 보면 인간의 현재 과학기술로도 설명할 수 없고 심지어 과학 외적인 일도, 나는 상상할 수가 없습니다. 초자연도 아니에요. 무엇을 초월하는지도 모르겠어요....."

"그래도 또 그 소리네. 허튼소리! 불가사의한 일은 나도 숱하게 봤어!"

"그럼 하나만 물어봅시다. 이제 나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계속 마셔, 다 마시면 자."

 

P.149-151 <삼체 1> 류츠신, 자음과 모음

 

 


 

Unsplash- Greg Rakoz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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