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중학교 입학 직전까지
산타클로스가 빨간 옷을 입고 하얀 수염을 단 배불뚝이 할아버지의 형태로 실존한다고 철썩같이 믿고 있었다.
매년 크리스마스에는 우리 집에 굴뚝이 없어도 뭔가 신비한 그 수염난 할아버지만의 방법으로 선물을 두고 가는 것이라 믿었단 말이다. 산타클로스가 세상에 실존하되, 대부분 부모님의 형태로 살아있다는 사실을 나는, 상당히 머리가 커질때까지도 몰랐다.
그 날.
또래 친구가 아파트 단지의 어느 주차된 차 앞에서 산타클로스는 엄마아빠잖아,
“그것도 몰랐어?!” 하던 그 순간을 또렷이 기억한다.
오랫동안 그 자리에 세워져있던 어느 작은 자동차 유리창 뒤에서 수다를 떨던 중였다. 한낮이었고 그 차에는 똥차라는 낙서가 있었던 것 같다. 그 친구 생일은 나보다 하루 빠르다는 것이 새삼스럽게 기억난다. 그것도 몰랐어 하던 친구의 표정이 어이없다는 그것이었는지 크게 소리내어 웃는 그것이었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쨌든. 그 때 나는 일단 부인했다. 그럴 리 없다고.
그날 저녁 회사에서 돌아온 엄마에게 그 사실을 확인할 때, 씨익 미소 지으며 그렇다고 말하던 엄마의 그 얼굴도 기억한다.
그 웃음은 이제 우리 아이 다 자랐구나하며 흐뭇하게 바라보는 부모의 그것이라기 보다 처키의 그것 같은 느낌였다. 세상이 한통속이 되어 하는 거짓말이라니, 어떻게 이렇게 모두가 한통속이 되어 순진한 아이들을 속여먹을 수 있을까.
내가 딛고 있는 서 있는 세계의 한 축이 무너지는 기분이었다.
지금? 지금은 치유됐다.
이야기라는 것은 사실이기도 하고, 진실을 담고 있기도 하니까. 팀버튼 감독의 빅피쉬처럼 말이다.
어느 성인의 이야기가 발전된 것으로, 뚱뚱한 빨간 털옷 이미지는 코카콜라에 의해 정립됐지만, 어찌됐든 수많은 사람들이 산타가 실존한다는 믿음 위에 움직이고, 돈을 쓰고, 에 또 핀란드에는 산타마을도 있고 말이다.
그런데.
아이가 생긴 지금,
방관이 아닌 산타클로스와 관련해 어떤 행동을 해야하는 지금부터는 또 문제다.
내 아이에게 산타클로스 얘기를 안 할 수 있을까.
어린이집이나 유치원 또래친구 모두가 산타클로스를 기다리는데, 아니야 그건 지어낸 이야기야라고 대놓고 말할 수 있을까.
신화처럼 약간의 사실과 믿음을 바탕으로 지어낸 이야기이기에, 사람들 마음속에 실존하는 것과 다름없지. 라고 얘기한들 3살 아이가 받아들일 수 있을까. 친구들과 어울리는데 큰 문제를 야기시키고, 나아가 사회성 발달에 부정적 영향을 끼치진 않을까. 나는 산타클로스가 되어야할까 말아야할까.
지금 뱃속에서 꿈틀대는 꼬마야, 넌 어떻게 생각하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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