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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게읽기/Frankenstein

Frankenstein

by 은지용 2021. 8. 12.

프랑켄슈타인. 놀라웠다. 헐크처럼 생긴 그 좀비 이야기가 아니다.

 

프랑켄슈타인은 스위스에 사는 어느 완벽하도록 화목한 가족의 사려깊고 똑똑한 맏아들이다. 책 <프랑켄슈타인>은 그가 유학가서 식음을 전폐하고 가족과 연락두절하면서 그야말로 심혈을 기울여 창조한 '어느 사유하는 피조물의 이야기'다. 액션이나 호러보다는 드라마에 가깝고, 그 피조물의 독백이 특히 책을 읽는 내내 마음을 흔든다.  

 

이런 저런 사체를 붙여 만든 몸뚱아리의 그는 이름조차 없다. 태어나자마자 조물주에게 버림받은 피조물은 세상을 탐구하고 '나'라는 존재에 대해 사유하고 고뇌한다. 아주 치열하게. 버림받은 이유는 너무 흉해서다. 프랑켄슈타인은 다 만들고나서 깜짝 놀라 도망쳤다. 피조물은 불어도 한다, 그것도 독학으로 배웠다. 내 존재의 이유를 찾아 방황하고, 아름다움을 열망하며, 연대를 갈망하지만 흉측한 외모와 처절한 외로움에 '타락하여' 조물주의 가족을 파멸시킨다. 의도했든 의도하지 않았든.

 

이름없는 피조물은 사춘기 아이들, 또는 그 맘때의 나를, 왠지 연상시킨다.

누가 태어나게 해달랬나요? 

 

DID I REQUEST THEE, MAKER,

FROM MY CLAY TO MOULD MAN? 

DID I SOLICIT THEE

FROM DARKNESS TO PROMOTE ME?

 

<실락원>에 이 대사가 나오고, 그 부분이 인용되었던가? 피조물이 은신처에서 접한 책은 실락원, 플루타르크 영웅전,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이었다. 1800년대 초반 아빠를 찾아오던 유부남과 사랑에 빠져 가출한 십대소녀 작가가 여행 중에 아이디어를 얻어 쓴 책이다. 메리쉘리. 십대 후반였지만 그래도 십대라니. 세상 참 불공평하다.

 

현자의 돌. 죽은 사람도 살려내고 돌을 금으로도 만들며, 세상 모든 원소를 무엇으로든 환원시킬 수 있다는 그 돌이 프랑켄슈타인의 이름에 녹아있는 것 같다. 원제는 <프랑켄슈타인, 현대의 프로메테우스>였다고 한다. 당시 실제로 처형당한 시체에 전기충격을 가해 근육을 움직이는 실험도 있었고, 이 같은 기술발달에 인간적인 것들이 매몰되는 것에 대한 설득력 있는 경고도 책 속에 있던 것 같다.

 

이 책은 영어로 제목을 남겨야 한다. FRANKENSTEIN

 

V-Club이라는 네이버 까페를 통해 영어책으로도 읽었기 때문이다. 비록 아주 짧게 다시 쓴 리더스판이었지만. 여럿이서 단상을 나누며, 또 어떤 부분은 필사해가면서 읽었다. 함께 가치있는 책, 고전을 읽는 재미에 아주 푹 빠져 7월 한달간 책 속에서 허우적대다 온 느낌이다. 그것도 한국어와 영어, 이중언어로.

 

여럿이 책을 읽는 즐거움을 알게된 건 지난해 코로나가 심해지면서다. 심심한 친구가 집 구석에 있을 법한 <총,균,쇠>를 카카오프로젝트100으로 읽어보자고 했다. 인증이라는 절차가 유치하다고 생각했지만, 100일이면 어찌저찌 읽을 수 있겠다 싶어서 시작했다. 왠걸, 여럿이서 읽으니 이해안되는 부분도 재미가 생겨나고, 인증을 위해 또 다른 사람에게 독려도 되도록 하루 한 페이지나 단 한 줄이라도 이어가니 동력도 잃지 않았다. 결과적으로 <총,균,쇠> 뿐 아니라 다른 이들이 읽는 <이기적 유전자>와 <소피의 세계>를 엿봤고, 나는 <호모데우스>를 추가로 완독했다. 그것도 즐겁게. 이게 왠일인가. 그래서 동네 독서모임도 찾아보게 되었고, 여차저차 그 끈이 이어져 V-Club을 기웃거리기에 이르렀다.

 

역시나. 얻는게 많았다. 20~50대로 다양한 연령대로 구성된 소규모 단톡방에 초대된 후, 먼저 알림을 꺼야한다. 내 카톡 알림은 항상 꺼져있지만, 즉각 답하지 않아도 된다는 공인된 규칙에 일단 안심했다. 심지어 주말과 휴일은 침묵해야 한다.

 

단톡방에 그 날 읽은 한글책 완역본에 대한 단상, 영어책 가운데 필사하고 싶은 부분을 올리면 인증을 하는 것이다. 낭독 녹음파일도 올린다. 이렇게 과제를 하면서 하루 일과 중 <프랑켄슈타인>이라는 다른 세상으로 여행을 다녀오는 즐거움을 얻었다.

 

'외모가 뭐길래 그렇게나 존재를 괴롭히는가' 란 단상부터 피조물에게 '1절만 해라 이놈아'란 코멘트, <블랙미러>에 대한 추천의 글, 전국 각지의 무지개와 구름 풍경에... 뭐랄까.. 가족이나 회사 이외의 세계에도 내가 잠시 머무를 시공간이 있다는 안도랄까. 그런 느낌을 받았다.

 

영어의 끈을 놓지 않는 것도 좋지만 무엇보다 좋은 것은 책 속 세계로 외유하고 누군가와 그 느낌을 나눌 수 있다는 것이다. 

 

<프랑켄슈타인> 피조물이 존재의 이유를 찾아 방황하고, 아름다움을 열망하며, 연대를 갈망할 때 V-Club 단톡방에 있었다면, 어쩌면 이야기는 달라졌을지도 모른다. 가족이나 반려자는 충족되지 못했을지라도 내 이야기를 들어주는 누군가를 만났을 수 있었을텐데.

 

I AM THY CREATURE;

I OUGHT TO BE THY ADAM;

BUT I AM RATHER THE FALLEN ANGEL,

WHOM THOU DRIVEST FROM JOY

FOR NO MISDEED.

EVERYWHERE I SEE BLISS,

FROM WHICH I ALONE AM IRREVOCABLY EXCLUDED.

 

글쎄. 월 몇만원 참가비가 없어서 힘들었을까...? 그 정도 사유하는 존재라면 그 곳 나리쌤이 기꺼이 초대해줬을 것 같긴 하다. 

 

창고처럼 쌓아놓기만 하는 이 공간에 굳이 V-Club을 이야기 하는 것은 그곳 나리쌤 이벤트에 대한 답변이자, 내가 받은 만족감에  보답하고 싶은 마음에서다. 참여한지 얼마 되지 않았지만, 한 번도 참여 안해본 사람은 있어도 한 번만 참여한 사람은 없을 것 같은 공간. 다음달에 나는 또 아마도 마음 한 켠에 자리를 만들어 두고 그 안에서 누군가들과 종종 함께할 것이다. 코시국에도. INCLUD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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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읽기일기 카테고리에서 길게읽기 카테고리로 옮김.

2023년 11월. 드디어 메리쉘리 원서로 읽기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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