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이스 로리 Lois Lowry의 <기억전달자 The Giver> 4부작을 봤다. 파랑채집가 Gathering Blue, 메신저 Messenger, 태양의 아들 SON 총 4권이 시리즈다. V-club에서 기억전달자 원서읽기를 하는 동안, 너무 재미있어서 다음 책들 번역본을 함께 봤다. 4권을 함께 보고, 첫번째를 원서로 차근히 보고 있는 중이다.
이야기가 펼쳐지는 시간적 배경은, 미래의 언젠가. 인류에 뭔가 큰 재앙이 닥친 이후 철저한 파괴 이후, 여기 저기 겨우 재건된 공동체가 각자의 생활을 영위하는 시대로 보인다. 공동체는 마을단위 규모인 듯 하고, 이야기는 뒤로 갈수록 비현실적인 환상이 조금씩 더해진다.
책들은 기본적으로 사람들이 모여사는 공동체에 대해 이야기한다.
공동체를 색채에 비유해서 이야기하고, 인간 관계에서 가장 근본적인 것이자 가장 강력한 것에 대해 말한다.
<기억전달자 The Giver>
이 사회는 매우 이상적이다. 마을단위의 소규모 공동체로 구성되어 있으며, 빈부격차도 없고, 인종/남녀차별도 없으며, 서로가 서로에게 예의를 갖추고, 공동체 전체가 아이들을 함께 보살핀다. 마을 원로들이 아이들의 적성을 수년간 면밀히 살펴서 공동체에 적합한 임무assignment를 준다.
기버의 주인공 조나스 아버지는 양육사이고 어머니는 법원에서 일한다. 전쟁, 기아 이런 단어는 누구도 이해못할 곳이며, 서로가 외모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도 금기시한다. 규칙을 어기거나 사소한 잘못을 하면 누구나 잘못했다는 관용구를 건네며, 사과를 받아들인다는 관용구로 화답한다.
어머니는 요리를 할 필요가 없다. 배급소에서 음식을 가져다 주고, 그릇을 집 밖에 두면 배급소에서 치워간다. 이런 부러운 시스템을 봤나. 사람들이 직업/기능별로 완벽하게 작동하는 곳. 다툼도 없고, 미움도 없고, 완전하게 안정된 상태로 보인다. 정치인들이 내거는 보통의 사회도 이렇게 생기지 않았나? 범죄없고, 빈부격차없고, 각종 차별은 최소화하고, 각자의 능력을 펼칠 수 있는 나라?
이들 가족은 혈연으로 맺어지지 않았다. 가족은 배정받았다. 사랑이라는 말은 이해될 수 없는 단어이다. 편안하거나 불편하다는 단어는 통하지만, 보고싶다나 증오한다는 단어는 없을 것이다. 사람들의 기능과 그에 따른 명예 정도는 인정되지만 기본적으로 매우 안정적인, 그러나 완전히 무채색인 사회이다.
이 곳에서 starving 굶어죽는다는 말은 거짓말이나 다름없으므로 단지 hungry 배고프다는 말만 허용된다. 이름을 말해선 안되는 자는 'not-to-be-spoken', 이 말조차 아주 정확하다. 해리포터에서 볼드모트가 'You-Know-Who'로 불리기도 하는 것과 대조된다. 하긴. 여긴 두려움이나 고통도 사실상 없는 곳이지. 고통이라고 해봐야 손가락이 문에 찧는 정도의 고통이 다다. 철저하게 기능 위주의, 탈색된, 그러나 완벽하게 이상적인 마을이다.
실제로 색채를 가리키는 단어는 쓰지 않는다. 어려서부터 배우지 않았고 접하지 않았기에 색채 자체를 보지 못한다. 휘몰아치는 감정은 알약을 먹음으로써 해소한다. 기능위주로 재편된 절대 안정 공동체. 이상적이지만 섬뜩하다. 이야기속 기버가 얘기해주길, 재앙 이후 이 곳 사람들은 '항상 같음 상태'를 유지하기로 했다고 한다. 그래서 무채색이다.
사건은 주인공 조나스가 12살 의식에서 아무 직업도 배정받지 못하면서 시작된다. 그는 대신 The Receiver 기억보유자로 선택됐다. 공동체 내에서 유일하게 인류에 대한 기억을 갖고 있을 사람으로 선택됐다. 영리하고, 착하고, 정직하며, 책임감있고, 통찰력 있는 사람에게 주어지는 역할이다. 왜냐하면 전쟁의 괴로움, 사랑의 황홀함, 파란 하늘을 보며 벅차오르는 느낌 등 모든 감정에 대한 기억을 그 지위에 있는 사람이 봉인해야하기 때문이다. 아틀라스가 대륙을 떠받치는 것처럼. 프로메테우스가 인간에게 불을 주고 대신 형벌을 받는 것처럼.
기억전달자는 모든 인류의 감정, 기억을 스스로에게 봉인해두고, 원로위원회가 질문을 하면 그 기억을 토대로 조언을 해준다. 그 기억과 감정들에 지혜가 있기 때문이다. 그가 사라지면, 기억도 감정도 사라질까? 작가는 그럴 경우 기억이 공동체 사람들에게 되돌아가도록 설정했다. 사람들이 불편해지는 것이다. 환타지적 요소가 여기에 있다. 기억과 감정은 완전히 사라지는 것이 아니다. 반드시 사람 안에 머물러야 하는 것이다. 더불어 지혜도.
임무해제 Release에 대한 비밀을 알게 된 날, 그는 자기에게 기억전달자 역할을 전수해주는 선임 The Giver와 모의하여 공동체를 떠나기로 결심한다. 그렇게하면 자기에게 왔던 기억이 사람들에게 돌아가니까. 기억, 감정을 한 사람이 짊어지지 않고 나눠갖도록. The Giver는 자기가 공동체에 남아서 기억과 감정으로 힘들어하는 사람들을 도와야하기에 남겠다고 한다. 조나스는 계획을 점검하며 집에 돌아갔다가, 다음날 아침 자기 집에서 밤마다 임시보육하는 아기 Gabe 게이브가 방출될 Release 예정이란 말을 듣고 무작정 떠난다.
이후 그들 공동체는 어떻게 되었을까. 긍정적인 변화가 있었을까. 후에 3번째 이야기 메신저를 보면, 희망이 보인다.
<파랑채집가 Gathering Blue>
이 공동체는 매우 원색적이다. 색깔로 치자면 빨강에 가깝다. 원시 공동체처럼 부족단위를 이루며, 먹고 사는 것이 매우 팍팍하다. 감정과 혈연은 인정되지만, 워낙 먹고 살기가 팍팍하고 고되어 생존자체를 위협받기 일쑤다. 주인공 키라는 다리 한쪽이 불편한 불구로 태어났다. 그러나 손재주가 워낙 좋고 색바느질에 타고 났다. 키라는 본인이 바느질하는 것이 아니라 실과 바늘이 저절로 움직인다고 표현했다.
그녀가 태어날 때 아버지가 사냥하다 야수에게 물려 돌아가셨고 (나중에 반전있음), 엄마는 이야기 초반에 병으로 돌아가신다. 이 사회에선 예술적으로 타고난 아이들이 종종 고아가 된다. 고아가 된 아이들은 친인척에게 보내지거나 사실상 버려진다. 단 타고난 아이들이기에 원로회 건물에서 숙식하며 (훨씬 좋은 환경에서) 예술작업에 매진한다. 원로회가 원하는 방향의 예술에만.
이 사회에는 파랑이 없다. 희망이 없다. 행복이 없다. 미래가 없다. 파랑은 숲 너머 어딘가 마을에서 채집할 수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 파랑을, 마을의 천덕꾸러기 맷티가 키라를 위해 가지고 온다. 학대받던 아동 맷티가 강아지 '막대기'와 함께 숲을 건너 가져온다. 죽은 줄 알았던 키라의 아버지도 함께.
키라의 아버지가 있던 곳, 파랑을 채집하는 사람들이 사는 곳은, 4부작을 통털어 가장 이상적인 사회다. 상처받고 버려진 자들을 보듬어 모두가 모두를 살피며 지지고 볶으며 그러나 따뜻하게 살아가는 곳이다. 그 사회는 이어지는 이야기, 메신저에서 자세히 나온다. 키라의 아버지는 키라를 데리고 돌아가고 싶어하지만. 키라는 이 파랑없는 마을에 할 일이 있다며 남는다.
<메신저 Messanger>
맷티의 이야기다. 기억전달자 4부작의 숲에는 생명이 있다. 숲은 의지를 갖고 어떤 사람은 지나가게 두고, 누구는 지나가지 못하도록 한다. 맷티는 그런 숲을 자유롭게 넘나들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이다. 숲이 좋아하는 사람이랄까. 동물을 보살필 줄 아는 마음이 따뜻한 아이다. 맷티가 이주해온 공동체는 다채롭다.
이 공동체는 버림받은 사람들을 보살핀다. 조나스를 구해준 사람들도 그들이며, 조나스는 여기에 정착했다. 여기서 그는 마을 지도자다 되어 있다. 이 곳에 거래장이 열리면서 평화로운 마을에 소란이 인다. 단순한 물물교환으로 시작했던 거래장에 거래마스터라는 정체불명의 존재가 등장하고, 사람들이 변하기 시작한다.
마을의 스승은 시와 글과 아이들을 사랑하는 어르신인데, 언젠가부터 그의 얼굴 모반이 희미해지고 어깨가 펴지고 인물이 훤해졌다. 그와 수반해 그를 특징짓던 사려깊은 말투와 행동, 시와 글에 대한 열정이 사라졌다. 그의 깊은 자아가 사라진 것. 그는 젊음과 자신의 자아를 거래했다. 누군가는 물건을 내놓는 게임기를 얻는 대신 건강이나 배려심을 잃기도 했다. 사람들은 이같은 거래를 통해 점차 이기심을 익힌다.
급기야는 마을을 봉쇄해야한다는 여론이 일어 투표로 마을폐쇄가 결정된다. 맷티는 마을의 메신저로서 숲 길목 곳곳에 마을폐쇄 안내문을 붙이고, 숲 너머에 사는 키라를 데려오러 간다. 그런데 마을을 경계하는 숲이 이상하다. 항상 우호적이었던 숲이 맷티를 공격한다.
키라의 마을은 달라졌다. 파랑이 곳곳에 쓰였으며, 사람들이 전보다 부드러워졌다. 이 부분을 보면 조나스가 탈출해온 마을도 조금 달라지지 않았을까 싶다. 조나스가 용서받았음을 증명하는 어떤 이벤트에 대한 언급도 있었던 것 같다. 키라를 데리고 다시 숲으로 들어온 맷티는 숲의 공격을 당해내지 못하고 땅에 엎어져서 에라모르겠다 하게 되는데. 이 때 맷티가 부여받은 어떤 능력이 발휘된다.
판타지다. 4부작의 각 인물들은 부여받은 특별한 능력이 있다. 조나스는 사물너머를 보는 능력, 키라는 미래를 수놓을 수 있는 능력이 있고. 맷티는 ...
<태양의 아들 SON>
클레어는 조나스와 같은 공동체 사람이다. 이야기는 다시 조나스가 있던 '기억전달자' 시공간으로 돌아간다. 클레어는 조나스가 데리고 탈출한 아기 가브리엘 Gaberiel 의 Birhtmother 출산모다. 그곳에선 아기를 상품이라고 불렀다. 출산모와 상품간의 유대는 불가했으나, 우연히, 클레어는 자신의 아기를 안아보고 먹여보고 놀아보게 된다. 공동체에서 약 공급을 잊었던 것.
조나스가 가브리엘을 데리고 탈출했단 것을 알게된 날 클레어는 여행을 시작한다. 아들을 찾아, 바다를 표류하고, 바닷가 어느 시골 마을에서 색깔, 동물, 사람을 알아가고 절벽을 올라, 거래마스터를 만나게 된다. 그녀는 거래마스터에게 젊음을 내주고 아들을 보게 되었으나, 너무 늙어버렸다. 클레어는 살날이 얼마 안남은 것을 깨닫고, 조나스에게 도움을 요청한다.
나중에 밝혀지길, 가브리엘에게도 특별한 능력이 있었다. 아주 강력한 힘. 그것은 상대방이 인식하지도 못하는 사이에 상대방의 영혼 그 자체가 되는 것이다. 상대를 완전히 이해하고, 그 상대가 원하는 것과 두려워하는 것을 나의 것처럼 느끼는 능력이다. 무기도 제대로 잡지 못하고 겁많은 가브리엘은, 그 힘으로 비극을 자양분으로 살아가는 거래마스터를 상대한다.
병상에서 일어난 클레어는, 다음날 아침 눈부신 태양 SUN을 뒤로 하고 걸어오는 SON 아들을 바라본다. 이야기는 이렇게 태양을 보여주며 빛나는 막을 내린다.
모든 색의 근원은 사실 빛에 있으니까. 모든 인간 관계상에서 가장 강력한 힘은 다른 사람의 감정을 내 것처럼 느낄 수 있는 능력이란 것 아닐까. 4부작을 통털어 작가와 등장인물들이 이야기하는 인간 관계, 공동체의 근간은 서로 이해하는 힘에 기대어 있을 때 제일 눈부시고 따뜻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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흡입력 있는 이야기. 숨도 못쉬고 다음엔 어떤 이야기가 나올까 궁금해하며 책을 빌렸다. 환타지를 좋아하지 않는 이들에겐 별로일 수도 있겠다. 그나저나 색깔이라니, Brilliant! 무채색의 사회, 빨강위주 파랑없는 사회, 파스텔톤 느낌의 다채로운 마을, 그리고 태양. 거래마스터는 까만 칼날주름 정장을 입고 역겨운 입냄새가 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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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만 '아 또 푸른 눈? 설마 금발은 아니겠지?'싶은 마음도 있고. 공동체가 마을 단위로 작은 편이라는 설정적 한계로 실제 세상과의 거리도 느꼈다. 전쟁이나, 외부로부터의 위협, 애국심 혹은 국뽕 등의 요소를 공동체에서 뺐기에, 실제 생활과 더 거리가 느껴지긴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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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브리엘의 능력을 보면. 빅픽처작가가 썼다던, 이 세상 모두가 나 한사람의 윤회로 만들어진 곳이란 이야기도 떠오른다. 나는 장수였고, 보병이었으며, 적군이었고, 고문한 사람인 동시에 고문당한 사람인. 그 이야기. 아주 짧은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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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브리엘 능력을 '접혼'이라고 표현한건. 음...좀 깬다. 그런데 그런 능력은 신으로부터 오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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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전달자의 사회는 플라톤이 썼다는 소크라테스의 이상국가에 대한 이야기로 연결됐다. V-Club에서 터치해준 플라톤의 <국가> 이상향에 소름 돋았다. 정치인들이, 혹은 정치에 관심있는 사람들이 이상적으로 생각하는 모양이 그 피라미드 모양 아닐까. 군인은 군인답게 지도자는 지도자답게 평민은 평민답게, 분수에 맞게 살며, 범죄는 없고(범죄자는 쫓겨나고), 가난과 기아도 없고, 개인은 각자 능력을 발휘하는 안정적이고 안전한 세상.
테스형 세상이 왜이래 하는 가수 나훈아도 그걸 알고 만든 노래겠지?! 그게 섬뜩하다는 것을 인지하지 못하던 나에게 새삼 놀랐고. 기억전달자 공동체와 같은 모양새를 입에 달고 살며 종종 열변을 토하는 우리 아빠도 떠올랐다. 군인과 지도자에 좀더 포커스가 맞춰져있긴 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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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분명 모였을 때 놀라운 일을 해내긴 하는데. 업무 효율과 감정적 인정.
감정을 중시하는 시대에 살고 있어서 다행이란 생각도 들고. 이런 저런 잡다한 생각과 느낌이 인다. Stirr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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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가족은 무슨 색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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