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길게읽기66

어른스러운 친구 '나'는 동경해 마지않는 다른 세상의 아이들과 종종 어울렸다. 한 번은 다리 아래에서 영웅적 사과도둑 행세를 했다. 이야기를 마치고 박수를 기대했건만, 지독한 일에 휩쓸려버렸다. 프란츠 크로머가 우리집 현관에서 나를 협박하고 없는 돈을 내놓으라고 했다. 이미 신을 걸고 맹세했기에, 이제와서 아니라고 해봐야, '나'는 유죄이다. 내가 훔쳤다고 말한 사과는 선악과였다. 둘로 확고하게 나뉘어 있던 세상은 더 이상 분리되지 않았으며, 부모님은 더이상 나를 지켜줄 수 없게 됐다. 나는 안전하지 않았다. 일생일대의 죄를 짓고 들어왔는데, 아버지는 내 신발에 묻은 더러움을 야단쳤다. 그 때 나는 그런 아버지에게 우월감을 느끼고 냉소를 짓고, 이 때문에 더 죄책감에 시달린다. 결국 누구에게도 말 못하고 저금통을 헐어 .. 2022. 6. 19.
왜 여기보다 저기가 가치있어 보일까 나는 지금도 종종 의심한다. 여기는 내가 있을 곳이 아닐지도 모른다하고. 이쪽보단 저쪽이 더 가치있고, 만족스럽지 않을까 생각한다. 이쪽이 무엇이든간에 말이다. 어렸을 땐 훨씬 더 했다. 내 가족보다 다른 가족이 좋아보였다. 다른 집 부모는 자상하고, 형제 자매는 이야기가 잘 통하는데, 나는 그렇지 못한 것처럼 느껴졌다. 친구들은 심적으로 물적으로 가진 것이 많아 보였는데, 나는 그렇지 못한 것으로 단정했다. 지금은 현재 내가 하는 일 외에 다른 일을 동경하기도 한다. 마흔이 넘도록 직업에 대해 반복적으로 고민한다. 부끄럽지만. 고민만 한다. 왜 여기보다 저기가 내가 있을 곳 같을까. 왜 항상 진실은 저 너머에 있을 것만 같을까. 왜 파랑새는 지금 나한테 있지 않고 저기에 있을 것 같을까. 왜 '나'는 .. 2022. 6. 13.
A story of youth 데미안을 보기 시작했다. 소설책으로 시작하고 철학책으로 귀결되는 그 책이다. 방탄소년단 BTS의 '피, 땀, 눈물'이 데미안을 모티브로 했다고 한다. 새는 알에서 깨기 위해 하나의 세계를 깨트려야 한다. 세상의 불완전한 구도자들에게 위안을 주는 그 문장. 이날까지 나는 내가 이 책을 읽은 줄 알았다. 책을 읽기 시작하면서 깨달았다. 데미안을 처음 본다. 프롤로그 두 세계 카인 예수 옆에 매달린 도둑 베아트리체 새는 알에서 나오려고 투쟁한다 야곱의 싸움 에바 부인 종말의 시작 프롤로그, 두 세계, 책의 시작부분에서부터 헷세는 명치를 강타한다. 젊은 시절 한번쯤 내게 주어진 세상에 마음 두지 못하고 방황해본 사람이라면, 마음을 격렬하게 흔들고 공감해주는 이 책의 이야기에 푹 빠져들 것이다. 북클럽에서 두 달.. 2022. 6. 13.
Without the memories, it’s meaningless 원서읽기모임 v-club의 프랑스어소모임 톡방에 남긴 말을 옮겨 본다. 프랑스어는 정말 너무나 새롭다. 완전히 외국어다. 그 가운데 방장님이 영화 ‘라따뚜이’의 노래 한 곡을 프랑스어*한국어 자막과 함께 소개해줬는데, 이게 신의 한수였다. 잘해보자고 학습지 구매해서 호기롭게 시작했는데. 이 외국어 같은 언어에 살짝 질리기 시작했던 차였다. 프랑스어가 남의 일처럼 느껴질랑말랑 할 때 감동과 웃음이 있던 이야기로 프랑스어에 접근하니, 뇌도 좀 말랑말랑해지는 기분이었다. 그래서. 또 기억전달자가 떠올랐다. ——— 2022.3.16 수요일 +15 (+4) 학습지 4일차. 도대체 왜 저런 악상accent를 표시하고, 발음하지도 않을 자음은 단어 끝에 왜 써놓는지 모르겠네요 @.@ Comment allez-vou?.. 2022. 4. 3.
냄새가 사라졌다 2022. 3. 27. 일요일 지난주 일요일 이맘때 희미하게 느꼈다, 냄새가 희미해졌다는 것을. 남편이 라면을 끓이고 있었고, 큰 아이가 멀리서 "라면 냄새다!"라며 환호성을 질렀다. 평소 같으면 내가 먼저 맡았을텐데, 내 감각기관에는 아무런 자극이 없었다. 하루가 지난 후 나는 확진자가 됐다. 요즘 유행하는 감염병 코로나 19에 감염되었다고 확실하게 병원에서 진단받았다. 코로나 19는 나에게 그렇게 아픈 병은 아니었다. 타이레놀 3~4알 정도 먹었고, 평소에도 찾아먹는 오메가3, 강황, 비타민C 외에 다른 약이나 보조제는 필요없었다. 하루이틀 머리가 아팠고, 하루이틀 콧물이 났고, 반나절 정도 코막힘 있었고, 또 다른 반나절엔 가래가 있었던 듯 싶다. 끙끙 몸져 눕는 상황은 없었다. 변덕스러운 감기와 .. 2022. 3. 28.
BOOK ONE/ 그 남자, SYME 책에 사임이라는 인물이 나온다. 주인공 윈스턴의 가까운 동료이다. 책에선 동지의 개념이지만, 윈스턴은 동지들 가운데서도 좀 더 같이 있기에 즐거운 사람이라고 표현했다. You did not have friends nowdays, you had comrades; but there were some comrades whose society was more pleasanter than that of others. (Signet, P.48) 그는 땅딸막하고, 안경을 낀 똑똑한 언어학자로, 살짝 변태스러운 느낌이 든다. 그도 윈스턴처럼 내부당원이다. 그는 '신어사전' 편찬업무를 담당하고 있다. 당에 완전히 충성하는 정통파(orthodox)이지만, 타고난 심미안과 그에 대한 욕망으로 인해 정통파로 남아있기에 살짝 .. 2022. 3. 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