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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다반사194

호밀밭의 파수꾼 「그 오리들은 어디로 가는지 혹시 알고 계세요?」 걱정 불안 분노 체념 그리고 그리움 매미들을 생각한다. 땅 속에서 애벌레로 7년을 살고, 일주일간 땅 위에서 산다는 그 매미들. 긴 시간 어둠 속에서 기다리다가 마지막 일주일간 마음껏 소리 내며 찬란하게 생을 마무리하는 매미들 말이다. 땅 아래에서 수년을 살았는데, 어느 날 자신들의 거처 위로 도로가 깔리거나, 주차장이 만들어지거나, 그러면 어떻게 되는 것일까? 그곳은 매미 대량학살 현장이 되는가? 매미들이 한여름에 그렇게나 시끄러운 것은 땅 속에 갇혀 나오지 못한 애벌레들 몫까지 더해서 울어대는 것일까. 흙 덮인 길과 공터가 아스팔트 길이 되거나 시멘트로 덮이는 모습을 보면서 그것이 궁금했다. 오늘처럼 비바람이 몰아치는 날이면 나뭇잎의 벌레들을 생각한다. 저 커다란 나무는 사람뿐 아니라 벌레들에게도 좋.. 2023. 5. 7.
빨강머리 앤 「통닭구이네요!」 그날 초록 지붕 집에는 닭 굽는 냄새가 진동했다. 마릴라는 앤이 나흘간의 여행에서 돌아오는 날 통닭구이를 준비했다. 요즘처럼 30일 만에 키워 파는 고기용 닭이 따로 있었을 것 같지 않던 그 시대에, 마릴라는 달걀을 내주는 귀한 닭을 잡았다. 외국 영화에서 보이는, 추수 감사절에 커다란 칠면조 고기를 저녁식사로 준비하고 온 식구가 둘러앉아 먹는 장면이 연상된다. 혹시 그날은 추수감사절 즈음 되었을까. 쌀쌀한 가을밤이었으니 비슷한 시기였을 것도 같다. 집집마다 불이 켜지기 시작하던 그 가을밤에, 앤은 다이애나와 함께 시내의 다이애나 할머니 댁에서 나흘간 도시 생활을 즐긴 후 시골 초록 지붕 집으로 돌아오는 길이었다. 빨강머리 앤의 그 장면을 보면서 온 가족 월례행사로 먹을까 말까 했던 전기구이 통닭이 기억.. 2023. 5. 1.
오월 첫 날 출근길 국도변 멀리 보이는 산에 나무에 이파리가 제법 꽉 찼다 싶었다. 연두색 새싹들이 올라온다 싶었는데 어느새 초록이 차올랐더라. 아, 날짜를 보니 오늘 오월이 시작됐다. 매년 반복되지만 한 번도 진부한 적 없는 봄. 올해도 사월이 열리고 오월이 왔다. 2023. 5. 1.
빨강머리 앤 「전에는 어떻게 살았나 싶을 때가 있다」 마릴라 그리고 동쪽 다락방 https://brunch.co.kr/@7bef61f7eaa2497/29 빨강머리 앤 이야기를 보면서 많은 이들이 앤의 생기발랄함과 엉뚱함, 그럼에도 불구하고 착실하고 바르게 자라나는 모습에 웃고 운다. 말이 좀 지나치게 많다 싶을 때도 있지만. 앤을 어찌 사랑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그녀의 솔직함, 안드로메다급 상상과 엉뚱함을 캐나다 동부 어느 섬의 자연 속에서 만나는데. 어찌 사랑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앤에 웃고 울던 많은 이들이 나이가 들어서는, 마릴라에 방점을 찍는다. 나도 그랬다. 만화에는 자세히 표현될 길 없었던 마릴라의 속 마음이 유난히 눈에 띄었다. 심히 당돌한 앤을 대하는 그녀의 당혹스러움을 알아봤고. 아이를 키우면서 어떤 때는 져주고 어떤 때는 바르고 대쪽같.. 2023. 4. 27.
쓰고 달콤한 직업 언제나처럼 나에게 리뷰를 쓰게 하는 것은 의외의 울림을 얻은 책이다. 천운영 도 그러했다. 고전문학 읽고 쓰는 엄지작가 모임에서 쓰기 주제를 정했다. 고전문학과 음식으로. 그러면서 참고도서로 얻어 걸린 책이다. 솔직히 누군가 이런 책이 있다 했고, 마침 집 앞 도서관에 있길래 빌려갔다. 슬쩍 들춰보기만 했을 뿐 읽을 마음이 없었다. 도서관에서 빌린 책 중에도 안 읽고 반납하는 책 많다. 이 책도 그런 책이라 여겼건만. 아 이런. 역시나 허를 찔렸다. 이 책은 주파수가 나에게 맞춰져 있다. 먹는 것에 진심인 그녀가 '돈키호테의 식탁'이라는 스페인 식당을 열고 주방에서 일하면서 겪고 생각하고 느낀 바가 기록되어 있다. 관광객처럼 체험하거나 기자들처럼 취재한 게 아니고 식당으로 하루 하루를 유지한 기록이다. .. 2023. 4. 18.
프롤로그// 나는 먹는다, 고로 존재한다 엄지작가 모임에서 고전 문학과 음식을 시작하면서 음식을 먹거나, 요리하는 나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지 않았다. 왠지 모를 거부감이 있다. 그게 무엇일까. 왜일까. 나도 모른다. 집에서 요리를 하긴 한다. 먹기 위해 한다. 먹어야 살고, 먹여야 할 어린 식구가 있기 때문에 한다. 아이들 수유와 이유식의 시기에는 나름 할만큼 했다고 자부한다. 그리고 그 시간은 어쨌든 지나갔다. 지금은 최대한 간단하게 해 먹는다. 거추장스러운 요리는 딱 질색이다. 그래서 내가 가장 좋아하는 음식은 라면이다. 아이에게 해주긴 꺼림직하지만. 간단하고, 스스로 해 먹기 쉽고, 빠르다. 천사 그림이 그려져 있던 해피라면, 일요일엔 내가 요리사 짜파게티, 10대 때 친구들과 아파트 옥상에 쪼그리고 앉아 부셔먹었던 아무 라면, 캐나다 토.. 2023. 4. 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