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렇게 서리와 눈에 둘러싸여 있으니, 여기서는 얼마나 시간이 느리게 가는지 모르겠어요. 하지만 제 기획을 향한 두번째 발걸음을 디디고 있습니다. 배를 한 척 빌렸고, 지금은 선원들을 모집하는 일에 집중하고 있답니다. 이미 고용한 선원들은 신뢰해도 좋을 것 같거니와, 뭐니뭐니해도 거침없는 용기만은 대단합니다.
하지만 한 가지 부족한 점이 채워지질 않는군요. 지금 이 순간 그 부재는 무엇보다 혹독한 불행으로 느껴지네요. 저는 친구가 하나도 없습니다, 마거릿 누님. 성공에 대한 열의로 뜨겁게 달아오를 때 환희에 동참해줄 이도 없고, 실망감에 시달릴 때 쓰러지지 않게 붙들어줄 사람도 없습니다. 물론 제 생각들을 종이에 적을 수야 있지요. 하지만 그것이 감정을 소통하는 데는 썩 훌륭한 매체가 아니지 않습니까. 공감해줄 사람이 동행한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p.23 <프랑켄슈타인> 메리 셸리 씀. 김선형 옮김. 문학동네
<프랑켄슈타인>에서 이야기를 처음 시작하는 탐험가의 편지 중 부분이다. 탐험가의 이름은 로버트 월턴. 때는 17xx년 3월 28일. 장소는 아르한겔스크. 그는 북극항로를 탐험하고 새로운 길을 찾아 모험을 떠나는 길이다. 미지의 세계와 성공에 대한 기대로 들떠 있고, 그가 모은 대단한 선원들과 함께 있지만. 그와 대등한 입장에서 공감하고 지지하고 가끔 면박줄 수도 있는 친구가 몹시 아쉬웠던 것 같다.
책을 읽기 시작할 때 이 로버트 월턴의 섬세한 감성에 벌써 고개 끄덕끄덕했던 것 같다. 이런 사람의 이야기라면 좀 더 들어봐도 좋겠다 생각했던 것 같다. '나도 그 마음 알거든. 너도 그렇구나.' 뭐 그런. 책으로 들어가는 길목에 있던, 작가 메리 셸리의 '어서 와' 환영인사였던 듯하다.
인간은 혼자서는 정말 보잘것없고 한없이 약하다. 스스로를 보호하기엔 변변찮은 턱에, 음식은 익혀 먹어야 하고, 추위에 견딜 두툼한 털도 다른 동물한테 얻어야 한다. 하다못해 내 볼일 뒤처리도 혼자서는 하지 못한다. 인간 여럿과 기계가 미생물을 활용해 만들어둔 하수처리시설이 필요하다. 인간이 생존과 존엄을 유지하려면 혼자서는 안된다.
북극 같은 야생과 극한, 미지의 한복판에서 로버트 월턴은 자신의 자아를 유지하기 위해 얼마나 친구가 절실했을까. 나의 취향에 대해 설명하지 않아도 알아봐 주는 그런 친구. 동행이라도 함께 책과 음악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는, 지적 허영을 함께 해주고, 나를 하나의 인간으로 봐줄, 친구가 아마 정말 그리웠을 것이다.
고전 읽고 단상 쓰기를 할 때도 동행이 필요하다. 고전처럼 켜켜이 시간을 둘러매고 있는 미지의 대상을 탐험할 때, 함께 책을 읽고 짧은 생각을 나누는 이들의 존재는. 북극 항로 여행 중 절실해지는 친구 같은 존재이다. 내가 브이클럽에서 처음 읽은 책이 미지로의 여행과 동행하는 친구 이야기로 시작 하는 <프랑켄슈타인>이란 사실이 새삼스럽다.
그리고 엄지작가 1기로 도전하면서 다시 읽는 첫 번째 책이 <프랑켄슈타인>이란 사실이 또 한 번 새삼스럽다. 이번엔 브이클럽에서 알게 된 사람들과 새로운 여행을 떠나는 참이니까. 과연 엄지작가 1기는 어떤 세상을 열어나갈까. 책에서 프랑켄슈타인이 열의에 차 피조물을 창조하고 도망가버리는 그런 무책임한 세상은 아니길. 프랑켄슈타인과 달리 동행이 있으니까. 안심하고 한 걸음 내딛는다.
로버트 월턴은 그 여행에서 새로운 북극항로를 찾지는 못한다. 미지의 세계에서 성공과 함께 친구를 열망하던 그는 그러나, 친구가 될 수 있겠다 싶은 프랑켄슈타인을 만나고, 그의 피조물 이야기를 얻는다. 나는, 우리는 이 여정에서 무엇을 만나게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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