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필리어. Ophelia
많은 작가들의 영감의 원천이 되어온 아름다운 여인. 햄릿을 보지 않았던 때에도 그녀의 존재감은 엄청났다. 이런저런 연극 소재로 쓰이거나 영화 주인공 이름이거나, 뮤지컬이 만들어진다던가, 그림이 그려졌다. (가끔 나는 오르페우스하고도 좀 헷갈렸음을 고백한다. 물론 오르페우스는 남자이며 음악천재이자, 지하세계로 자신의 그녀 에우리디케를 데리러 갔던 신화 속 남자이다. 오필리어와는 완전 다르다.)
낭독모임하면서 본 오필리어는 그러나 아무 존재감이 없었다. 오빠 레어티스의 길고 긴 충고를 적당히 되돌려줄 때에는 '어 똑똑하네' 싶긴 했다. 햄릿이 야심 차게 준비한 극을 보면서 그의 농담을 받아칠 때에도 '살아있네' 싶긴 했다. 그런데 행동이 없다. 스스로 뭘 하는게 없다. 심지어 물에 빠져 죽는 장면조차 거트루드의 말을 통해 전해졌다.
대사도 많지 않았다. 아빠 폴로니어스의 말은 아주 잘 들어서, 햄릿의 접근을 차단하라 할 땐 차단하고, 만나보라 할 땐 만나더라. 당시 시대상이었겠지만 극 중 오필리어는 거의 뭐 있으나마나 하다. 오필리어는 왜 이렇게 유명한 거지?
아무에게도 해가 되지 않고.
어른이 하라는 대로 하고.
아름답기까지 한데.
처녀인 채로 죽어서?
아직 잘 모르겠다.
* 오필리어라는 이름이 도움을 뜻한다고 한다. 그녀는 누구를, 무엇을 도왔나. 모두의 재회가 그녀 무덤가에서 이뤄지긴 했다. 중요한 얘기를 해주는 무덤일꾼까지도. 업보의 완성을 도왔나. 여전히 잘 모르겠다. 이렇게 착하다 못해 맹해 보이기까지 하는 그녀가 어쩜 이리 많은 영감의 원천이 되고 있는지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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