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은 지혜를 얻기 위해 돈을 쓰는 것이 전혀 이상하지 않습니다. 명품 같은 물건에 돈을 쓰는 것보다 더 숭고해 보이기도 합니다. 명사의 수백만 원짜리 강연, 차별화된 값어치의 자기 계발서적, 들어가기도 어려운 유명 학원 강좌 같은 것에 돈을 지불하는 것은, 비슷한 가격의 명품을 구매하는 것보다 숭고해 보이기까지 합니다. 넷째 날 <변론>에선 여기에 물음표가 찍힙니다.
고대 그리스에는 소피스트라는 존재가 있었습니다. 돈을 받고 지혜를 가르쳐주는 최초의 직업 교사라네요. 지리, 수학, 문법 등도 가르쳤지만 출세를 위해 수사학 즉 대중연설기법, 달변의 기술 같은 것을 특히 많이 가르쳤다고 합니다. 중학교 윤리시간에 이들이 궤변론자란 얘기를 들었던 기억이 나는데, 아마 달변가들이라 그랬나봅니다. (당시 저는 소피스트들이 멋지다고 생각했거든요 그래서 기억이 납니다. 혹시 왜곡된 기억일지도 몰라요.)
소크라테스는 이들을 별로 좋지 않게 봤습니다. 그는 가르침의 대가로 돈을 받는 것 자체가 말도 안 된다 생각한 모양입니다. 송아지나 망아지라면 농부나 조련사가 훌륭한 선생이 될 수 있겠지만, 인간은 그런 존재가 아니란 거죠. 아마도 삶에 중요한 것은 달변의 기술이 아니며, 숭고한 지혜/앎은 스스로 생각하고 말하며 깨우쳐야 한다는 주의였을 겁니다. 그는 이 세상에 정말 인간의 미덕과 시민의 덕성을 잘 아는 사람이 있긴 하냐고 되묻습니다.
Is there anyone who understands human and political virtue?
그가 이런 이야기를 꺼낸 것은 오래된 혐의 가운데, 그가 (소피스트들처럼) 선생노릇을 하며 돈을 받는단 보고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는 이건 뭐 너무 기본도 없는 이야기라 제일 놀라운 혐의 중 하나였다고 말합니다. 그러면서 자신은 지혜를 준다며 돈을 받은 일도 없고, 심지어 그런 걸 알지도 못한다고 한거죠. 정말 그런 걸 아는 사람이 존재할 리 있냐는 것 같아요.
저는 이쯤에서 소크라테스가 참 꼬장꼬장하다 생각했습니다.
처세를 가르쳐서 돈을 버는 이들이 있었다한들, 그것은 구매자들의 불안을 덜어주는 대가가 포함된 것이고, 가르침의 가치는 받는이의 만족도에 따라 다를 수 있으며, 금전적 가치를 매기는 것이 꼭 나빠보이진 않았거든요. 어쨌든 사람은 내가 가진 재주로 먹고 살아야 할 것 아닌가요?! (제가 꼭 그러하지는 못합니다만. 제가 받는 급여의 가치는 하려고 생각은/생각만 종종합니다. 혹시 저희 사장님이 보고 계시진 않겠죠?!)
소피스트가 전해주는 출세의 지혜에는 부수효과가 있었을 것입니다. 선생님을 고용하는 부모로서 아이에게 필요한 교육을 제공해 준다는 기쁨, 아이들이 잘 자랄 것이라는 희망, 그런 느낌적 느낌에서 오는 만족 효과. 스스로를 진정시키고 설득하는 효과요. 이를테면, 소고기가 꼭 영양학적으로 가치가 높아서 비싼 건 아니잖아요. 소비자가 구매하는 소고기에는 단순 단백질과 맛뿐 아니라 소고기에 대해 그 사회가 갖고 있는 관념도 포함되는 거지요. 그래서 소고기로 접대 받는 것이 닭고기 접대보다 만족감이 크고 가격도 높은거라 생각합니다.
그러다 브이클럽 설명영상을 들으면서 <변론>에 언급된 사례에서 나온 가르침의 비용이 엄청나다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소크라테스는 어떤 아버지와의 대화를 통해 파로스 출신의 유명한 스승이 있는데, 그 대가로 5미나가 필요하다고 인용합니다. 물론 그 소피스트가 특히 많은 금액을 받기는 했다고 부연합니다만 비용이 정말 어마어마합니다. 5미나는 100드라크마를 의미하고, 1 드라크마가 당시 평균적인 일당이었으며, 5미나는 500 드라크마, 약 5000일의 값어치가 비용인거죠. 요즘 하루 아르바이트 비용을 하루 10만원으로 가정하면, 약 5천만원. 통도 큽니다.
요즘의 수천만원짜리 아니 억대 대입과외에 견주겠네요. 사기성 강연으로 돈을 번다는 어떤 정치인도 생각나고. 사교육 컨설팅만으로 비용을 받는다는 '공부엄마'란 직업도 떠올라요. 한술 더 떠서, 당시 사람들은 그런 비용을 내면서 가르침을 받고, 그것을 엄청나게 감사해했다고 합니다. They(=citizens) not only pay, but are thankful if they(=citizens) may be allowed to pay them(=sophists). 소크라테스가 혀를 차는 일이 좀 이해가 되는 것도 같습니다. (저는 돈 안 싫어합니다. 돈은 소중하고. 그 근원과 흐름에 관심 많아요.)
직업은 누군가 돈을 받고 특정한 일을 지속하면서 생기는 개념입니다.
A라는 직업이 생겨나는 것은, 내가 A라는 일을 하지 못하거나 않하기 때문이겠죠. 누구는 다림질 할 시간이 부족하고 귀찮아서 와이셔츠 세탁을 맡기고, 누구는 집 청소할 시간에 일을 하려고 청소부를 고용합니다. 나 대신 아이에게 수학을 가르쳐줄 사람을 붙이기도 하고, 자기소개서 대필을 맡기기도 하고. 또 지금의 저처럼, 원서읽기 설명영상을 제공받고 완독스케줄 독려 차원에서 회비를 내기도 합니다. 물론 소소하게 말이죠.
어떤 이들에게는 그 소소한 비용, 감당할 수 있는 비용이 훨씬 크겠죠. 네. 그럼 당연히 더 낼 수 있죠. 더 큰 만족감을 주는 일에 더 많은 비용을 치르는 것이 합리적이죠. 인기 많은 스포츠 선수의 고액연봉을 저는 그렇게, 구단주에게 큰 만족을 주는 것으로, 이해합니다. 이렇게 또 돈이, 경제가 돌아가지 않겠습니까만은.
어쩐지. 생각하는 것까지 직업으로 분리시키면 곤란해 보입니다. 지혜를 돈으로 살 수 있다고 인정하는 것은, 돈이 있으면 더 지혜로워질 수 있고, 더 나은 사람이 될 수 있다는 말을 인정하는 것도 같습니다. 비약을 조금 더 지나치게 하자면, 돈이 없으면 덜 지혜로울 가능성이 있고, 더 나쁜 사람이 될 수 있다는 말 같기도 합니다. 너무 나갔나요?
생각하고 말하는 것을 다른 사람에게 맡기면 안 될 것 같습니다. 지혜를 가꾸는 것. 그건 분업하지 말아요 우리.
https://brunch.co.kr/@7bef61f7eaa2497/64
'길게읽기 > Apology' 카테고리의 다른 글
Day 7, 8 생각보다 독실한 (0) | 2024.01.30 |
---|---|
Day 5, 6 지혜가 뭐더라? (0) | 2024.01.24 |
Day 2, 3 아무도 답변하지 않았기 때문에 (1) | 2024.01.21 |
Day 1 이방인의 언어 (0) | 2024.01.20 |
소크라테스의 변론 읽기 프롤로그 (0) | 2024.01.2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