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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게읽기/Apology

Day 9, 10, 11, 12 멜팅 멜레토스

by 은지용 2024. 2. 4.

 
이번 주 내내 멜레토스는 녹아내렸습니다.
멜레토스는 소크라테스를 기소한 인물입니다.
 
소크라테스는 앞서 그에 대해 안 좋은 소문이 떠돌게 된 이유에 대해 해명했습니다. 그에게 내려진 신탁, '그 보다 더 지혜로운 자는 없다'는 신의 말씀을 해독하려고 다닌 일을 전했죠. 그 과정에서 정치인, 시인, 장인, 연설가 등 지혜롭다 알려진 자들을 찾아가 그들의 무지를 공개적으로 확인하면서 뜬소문 같은 반감이 생겼다고요. 이제 그는 그를 법정으로 불러낸 이름 있는 기소인들에 대해 얘기하기 시작합니다.
 
본격적인 변론이죠.
 
기소장은 멜레토스 Meletus, 아뉘토스 Anytus, 뤼콘 Lycon, 세 사람 이름으로 되어 있었습니다. 멜레토스는 시인을 대표하고, 아뉘토스는 정치인과 장인을, 뤼콘은 연설가를 대표하여 소크라테스를 고발했습니다.
 
기소내용은 "소크라테스가 젊은이들을 타락시키고, 국가가 인정하는 신들 대신 새로운 신들을 믿음으로써 불법을 저지른다 (Socrates is a doer of evil, who corrupts the youth; and who does not believe in the gods of the state, but has other new divinities of his own.)"입니다. (*other new divinities of his own 그 고유의 새로운 신성. 천병희 선생님에 의하면 여기서 divinity는 문맥에 따라 '새로운 신' 또는 '초인간적인 것'으로 해석된다고 합니다.)
 
배심원과 청중들 앞에서 소크라테스는 멜레토스에게 질문합니다. 좀 짧게 각색해봤습니다. 
 
S: 청년들의 타락을 걱정하는거 보니, M은 그들의 성장에 관심이 많은가 보오?
M: 그렇소. (당당)
S: 평소 남다른 관심을 기울이고 있으니, 청년들의 성장에 누가 큰 도움을 주는지도 잘 알겠고만? 그게 누구인고?
M: 어... (당황)
S: 모르는가? 생각해 본 적은 있고? 답해보시게.
M: 법! (다시 당당)
S: 그건 답이 아니지. 난 사람을 아냐고 물어봤소. 법을 잘 아는 이가 청년을 도와준다 치고, 그게 누구인고? 그건 알고 있나?
M: 배심원이죠, 소크라테스 나으리, 여기 법정에 있는 저 분들말이오. (슬슬 화남)
 
 
청년들의 타락이 우려된다며 기소장을 내민 이들이 사실상 청년들의 성장이나 타락에 대해 제대로 고민해 본 적이 있는지 소크라테스는 묻고 있습니다. 기소인이 안다고 자부하고 있지만 사실은 제대로 모르고 있다는 것을 드러내주는, 그의 질문법인 거죠. 질문은 계속됩니다.
 
 
S: 배심원들이 청년들을 가르치고 인도한다고(instruct and improve youth)?
M: 그렇소.
S: 배심원 일부요? 아님 전부요?
M: 전부 입죠.
 
여기서 멜레토스가 일부라고 답했다면, 구체적으로 누구냐는 질문이 들어왔을 것이고, 그 답변에서 소외된 배심원은 자기편이 아니게 될 가능성이 높아졌겠죠. 멜레토스도 그것을 알고 있었겠죠?! 이건 뭐 법정 드라마 보는 기분입니다. 소크라테스에 대한 뿌리 깊은 반감이 없는 배심원과 청중이라면, 멜레토스 말이 앞뒤가 안 맞는 것을 느꼈을 겁니다. 멜레토스는 이쯤 '뭐라고 답해야 할까? 어떻게 답해도 이상하네'하는 곤란한 표정을 짓고 있었을 것 같네요.
 
 
S: 대박. 아테네 젊은이들은 발전시켜 줄 사람 엄청 많았네. 여기 법정의 청중들은 어떠한가? 그들도 청년들을 도와주나?
M: 그들도 청년들을 도와주지요. (청중도 내 편?)
S: 의원들은 어떠한가?
M: 그들도 도와주지요. (의원들도 내 편?)
S: 아니 그럼. 아테네 사람 전부가, 나 한 사람만 빼고, 청년 성장에 도움이 된다고? 확실한가?
M: 분명히 확신하오. (못 먹어도 고!)
 
 
멜레토스는 논리의 무덤으로 들어갔습니다.
 
모든 아테네 사람들이 청년을 도와주는데 그만 예외라는 것도 억지처럼 보입니다만. 무엇보다 아테네 청년을 도와줄 이가 이렇게나 많은데 소크라테스 한 사람이 청년들을 타락시킨다면, 그의 말이 가진 힘이 엄청나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 소크라테스는 앞서 말의 힘은 진실을 말할 때 얻어지는 것이라 언급한 바 있습니다. 그에 의한 타락이 아님을 인정하면 기소내용에 반하는 것. 멜레토스는 곤란합니다.
 
 
S: 세상에 나쁜 사람과 살고 싶은 사람도 있나?
M: 당연히 없소.
S: 그런데도 내가 의도적으로 젊은이들을 타락시키나?
M: 확실히 의도적이지요.
S: 그럼 내가 나쁜 이웃을 두고 싶어서 주변을 타락시킨단 말이오?!!
 
 

이 책에서 멜레토스는 어쨌든 나쁜 놈이지만, 조금 불쌍해집니다. 소크라테스는 앞부분에서 돈을 받고 가르침을 준 일도 없고, 신을 모시고 사느라 가난하기 그지없다고 말한 바 있습니다. 사람들을 타락시켜서 그가 얻을 이득은 아무것도 없지요. 논리적으로 죄가 성립되기 어려워 보입니다. 
 
멜레토스는 왜 이렇게 무리해서 그를 기소했을까요? 
 
그는 기소인 3명 가운데 가장 젊은 축에 속했던 것 같습니다. 소크라테스가 '그렇게 이른 나이에'라는 언급을 하거든요. 정보의 바다 인터넷에 그의 생몰연도는 검색이 되지 않습니다. 시인이긴 했지만 지금까지 전해지는 작품도 찾기 어려워요. 소크라테스도 기소인 3명 중 멜레토스가 제일 만만해서 그를 지명했나 싶습니다. (<-이건 톡방에서 언급된 바 이기도 합니다.)
 
기원전 399년 경 그리스에 사는 멜레토스를 상상해 봅니다. 당시 기울어가는 그리스에서 활동하던, 그렇고 그런 젊은 시인으로. 비약을 조금 더 심하게 해 보자면, 딱히 제대로 되는 일은 없고, 앞으로 잘 될 가능성도 없어 보이는데, 기득권의 분노에 편승해서, 자신에 대한 실망을 분출 또는 잠재워보려 했던 젊은이로도 그려봅니다. 투사 대상이 마침 사회적 지탄의 대상이 되던 소크라테스였던 걸로. (또) 너무 나갔나요? 
 
멜레토스라는 인물에 이런저런 상황들이 녹아들어 있는 것은 확실합니다. 멜레토스에 저도 좀 녹아있는 것 같습니다. 불쌍한 멜레토스. 그에게도 철학책과 함께 책 볼 사람들, 그리고 약간의 여유가 필요했던 것인지도 몰라요.
 
 


 
 
소크라테스는 멜레토스로 대표되는 기소인들이 제기한 죄목을 살살 질문해 가며 잘근잘근 반박합니다. 배심원과 청중이 그의 논리를 이성적으로 따라간다면야 그의 무죄는 확실해 보이는데요. 
 
소크라테스는 젊은이들을 타락시켰다는 내용에 대해, 혹시라도 자신이 의도적이지 않게 사람들을 안 좋은 길로 인도했다면, 그것은 법정을 오갈 일이 아니라, 멜레토스가 자신에게 가르침을 주고 훈계했으면 될 일이라고 이 부분을 마무리합니다.

 
 

"멜레토스는 젊은이들의 성장을 정말로 고민해 본 적도 없고, 관심도 없으면서, 고민하는 척하고 나를 기소했습니다. 정말 젊은이들을 생각했다면 내게 가르침을 주고 훈계를 했어야 합니다. 그러나 그는 가르침을 주기보다 벌을 주기 위한 법정에 나를 세웠군요."

 

"And you bring me up in this court,
which is a place not of instruction,
but of punishment."

 
 
 

톡방의 한 분이 그의 질문이 '소몰이 같다'라고 표현했습니다. 사방이 열려있는 것 같지만 목표지점이 확실하죠.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을 검토해라, 사실은 모를 수 있다, 당신이 틀릴 수 있다. 질문받는 이의 한계가 적나라하게 드러납니다. 물음표로 구성되어 있지만 느낌표로 마무리될 수밖에 없네요. 
 
그의 질문은 기소장만큼이나 날카롭게 느껴집니다. 그의 죄를 주장하는 기소장은, 처벌을 바라는 무기인데 그럴싸한 말로 포장되어 있잖아요. 뭐 논리 면에서 소크라테스에 한참 뒤떨어지긴 합니다만. 야튼. 제가 만약 직접 여러 사람들 앞에서 소크라테스의 질문을 받았다면? 얼굴 벌게지고 매우 당황했을 것 같습니다. 나약한 마음에 뒤돌아서서 나를 벌주는 것 같은 그를 미워했을지도 몰라요.
 
그는 그의 꾸밈없는 언변이 사람들을 화나게 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I know my plainess of speech makes them hate me, and what is their hatred but a proof that I am speaking of truth. 다만 한 가지, 그는 사람들의 이성을 과대평가한 것 같습니다. 그가 인간 이성에 대해 갖고 있던 이상은 얼마나 높았던 걸까요.

소크라테스는 어쩌면 사람들이 생각보다 이성보단 감성에 기댄다는 사실을 과소평가한 것 같아요. 그가 보는 사람은 끝 간 데 없이 고매해질 수 있던 게 아닌가 싶습니다. 그의 질문을 깨달음으로 이르는 길이라고 기쁘게만 맞아들였을 사람이 얼마나 있었을까요. 소크라테스는 사람들 이성의 가치를 훨씬 높게 봤기 때문에, 감성을 애써 모르는 척했던 걸까요. 
 
돌고 돌아 감정의 시대에 사는 저에게는. 소크라테스의 질문이 좀 무섭습니다.
 
그래도 그의 가르침은 받아보고 싶습니다. 질문은 피해 갈 수 없을 터. 그러니까 만약 만난다면, 사적인 공간에서 질문을 받고 싶습니다. 소크라테스 선생님, 그렇게 부탁드려도 되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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멜팅 멜레토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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