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크라테스 변론 계속 읽고 있습니다. 이제 중간 지점을 지나온 것 같습니다. 생각이 머물렀던 자리들이 있는데, 완성된 글로 남기기가 왜 이렇게 어렵나요. 매일 글 쓰는 분들 정말 어떻게들 하시는 것인지. 대단합니다. 글이 되지 못한 생각들이 하루 이틀 자꾸 쌓여갑니다. 귀한 연휴의 마지막 날, 한 꼭지는 남기고 싶은 욕심에, 생각이 머물렀던 좌표만 공유합니다.
소크라테스는 기소 내용 가운데 '국가가 정하는 신을 믿지 않는다'는 부분에 대해 멜레토스에게 질문합니다. 기소내용이 소크라테스가 신을 믿지 않는단 것인지, 다른 신을 믿는단 말인지.
멜레토스는 답합니다. 소크라테스는 무신론자라고. (you are a complete atheist.) 소크라테스가 이런저런 방법으로 추궁하자, 멜레토스는 배심원들을 향해 힘주어 말합니다.
그는 무신론자가 확실하다.
태양이 돌이고 달은 흙이라 말하기 때문이다.
I assure you, judges,
that he does not (believe in god):
for he says that the sun is stone, and the moon earth.
태양이 뜨거운 돌이며 달은 흙이란 주장은 아낙사고라스라는 고대 철학자의 것이라고 합니다. 소크라테스(BC 470~399) 보다 조금 앞선 시대의 사람으로(BC500~428), 이런 이야기를 하고 다녀서 사형을 선고받았다고 전해집니다. 당시 사람들에게 태양은 공식적으로 헬리오스가 끄는 마차이고, 흙은 가이아의 품에만 있어야 했나 봅니다. 이 이야기가 소크라테스의 유죄를 뒷받침하는 결정적 증거인 것처럼 멜레토스가 말하니까요.
아낙사고라스는 누구일까요. 그는 어쩜 이렇게 놀라운 관찰과 추론을 했던 걸까요. 브이클럽 설명영상에서 아낙사고라스의 또 다른 놀라운 이야기를 접했습니다. 그는 태양의 열기는 너무 멀어서 느껴지지 않는 것이며, 달은 태양의 빛이 반사된 것이라고 했답니다. 천잰데요?!
그는 또 관념론의 시초로 여겨진답니다.
정신, 관념, 이성(Nous)에 대해 얘기했습니다. 특히 누스라고 불리는 이성은 인간 바깥에 객관적으로 존재하는, 근원적인 것이라고도 했다네요. 누스라는 개념이 너무나 고고하고 대단해 보이지 않나요? 저는 이 '누스 Nous'에서 절대자, 신을 떠올립니다. 올림푸스 신들처럼 변덕스럽지 않고, 한결같고 고고하고 초월적인 신이요. 소크라테스는 이 '누스'의 개념을 이어간다고 합니다.
그냥 제 느낌인데, 이런 흐름이라면 소크라테스가 올림푸스 신을 믿지 않는단 말도 이해가 갑니다. 소크라테스는 정말 신을 믿긴 했지만 좀 다른 신을 믿은 것도 같아요. 망구 제 생각입니다. 누스로 존재하는 신. 유물론이나 실존주의 철학보다 훨씬 마음을 고요하고 고매하게 해주는 느낌적 느낌이 '누스'에 있습니다. 철학사적 의미는 들어도 잘 모르겠습니다. (개인에 내재된 초월적 이성이 아니고, 바깥에 존재하는 절대 이성이라면, 사람들의 생각이 연결될 수 있는 걸로 본 걸까요. 누스 네트워크? 융?)
이오니아라는 지역도 궁금해집니다. 아낙사고라스는 이오니아 출신입니다. 아낙사고라스뿐이 아닙니다. 소피스트들도 이 지역에서 왔고, 만물의 근원이 불이라고 했다던 헤라클레이토스는 이오니아 에페소스 출신, 만물의 근원이 물이라 했다던 탈레스는 이오니아 밀레토스 출신이라는데요. 기원전 시대에 뭔 사상가들이 이렇게 많이 나오는지, 도대체 어떻게 생겨먹은 땅인지 궁금하더군요.
이번 책을 읽으면서 찾아보고 전해 들은 얘기로는, 튀르키예와 마주 보는 그리스 동쪽 지역, 에게해 연안의 무수히 많은 섬으로 이뤄진 지역이라고 합니다. 현재 튀르키예 서부해안 일대의 고대지명이지요. 섬이 너무 많아 지역별로 그들만의 세상이 만들어질 수 있었던 환경이랄까요. 역시. 사람들은 조금 떨어져 살아야 내면에 뭔가를 짓는 것 같습니다. 모임 규모는 적당해야 하고 말이죠. (남편 보고 있나?)
다시 변론 이야기로 돌아가서. 아낙사고라스는 이미 그리스 전역에 널리 알려진 철학자였다고 합니다. 그가 전하는 누스에 대한 개념에 이단 성향이 있지만 꽤 신선했던 걸까요. 1 드라크메만 주면 누구든 그 저작을 읽을 수 있다고, 소크라테스가 굳이 언급합니다. 배심원들이 설마 그것도 모르는 무지한 사람들이겠냐며 멜레토스를 타박하고. 은근슬쩍 아낙사고라스에게 사람들이 써먹었던 굴레를 자기에게 씌우려는 것이냐 추궁하죠.
사실 맞습니다. 당시 아테네에는 그들의 쇠락의 원인으로 지목되어 비난받을 사람, 마녀사냥 당할 대상이 필요했던 것으로 평가받습니다. 그리스 내 다른 도시국가인 스파르타와 대판 싸우는 펠로폰네소스 전쟁에서 지면서, 아테네는 더 이상 그리스 정치 경제의 중심이 아니었다고 합니다. 소크라테스도 이 전쟁에 직접 참가해 싸웠다고 하네요.
먹고사는 일이 예전 같지 않아 지면, 누군가 욕할 사람이 필요해지는 인간 마음은 예나 지금이나 같나 봅니다. 명망 있다 알려진 정치인, 장인들 가운데 소크라테스한테 혹독한 질문 안 받아본 이 없었을 것이고, 소크라테스에게 딱히 군사가 있는 것도 아니고, 나이도 많고, 뭔가 만만하니까 그를 내세워 당시의 세태를 탓했던 것 같습니다. 물론 그 한 사람 사라진다고 그 상황이 나아지지 않죠. 그것도 예나 지금이나 같습니다.
소크라테스는 그가 무신론자라고 비난하는 밀레토스에게 쐐기를 박는 질문을 합니다.
"인간에 관한 일은 있다고 믿으면서 인간은 없다고 믿는 사람도 있는가? 말과 관련된 일은 있는데 말은 없다고 믿는 사람이 있는가? 피리 연주는 있지만 피리 연주자는 없다고 믿을 수 있나? 초인간적인 일은 있지만 초인간적 존재는 없다고 믿을 수 있나? “
Did ever men, Meletus, believe in the existence of human things, and not of human beings?
Can a man believe in spiritual and divine agencies, and not in spirits or demigods?
멜레토스의 대답은 '그런 사람은 없다 No'였습니다. 소크라테스는 한 번 더 묻습니다. '초인간적 존재는 신을 말하는 것인가?'하고. 대답은 '그렇다 Yes'였습니다.
그는 방금 그가 법정에서 힘주어 말했던 '소크라테스는 무신론자'라는 말을 부인했습니다. 동시에 '소크라테스가 초인간적인 것을 젊은이들에게 믿게 한다'라고 쓴 기소장의 가치도 떨어뜨렸습니다. 소크라테스는 '멜레토스 본인조차 자신의 말을 믿지 못할 것'이라며 기소 자체를 어불성설로 만들었습니다.
이미 소크라테스는 신탁에 따라 사람들의 지혜를 검토해 왔고, 그 때문에 많은 미움을 받았다고 밝힌 바 있습니다. 신탁을 믿으면서 신은 믿지 않는 경우가 있을 수 있을까요? 무릎 치고, 이마 치고, 손뼉 칠 노릇입니다.
그런데.
생각해 보면. 신탁은 믿으면서 신을 믿지 않을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자동차에 무지하지만 운전은 하고 다닐 수 있는 시대잖아요. 음식 배달에 플라스틱 산이 만들어진다는 것을 알지만 음식 배달을 멈출 수 없잖아요. 신에 대해 몰라도 기도는 할 수 있고요. 사랑하지만 사랑하지 않는다고도 말할 수 있고, 좋아하지 않지만 좋아하는 행동을 할 수도 있지 않나요?
생각의 좌표는 끝없이 옮겨 다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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