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가 나면 무심해지고 싶다.
흥. 나도 너처럼 주변 신경 안 쓰고 노는 일에 빠질 수 있거든?! 아이에게 보여주고 싶어진다. 그래서 농구 팀수업시간이 다가와도 알려주지 않았다. 핸드폰에 빠져있는 아들에게 밥 먹어라, 농구 준비해야지, 가방 챙겼니, 등의 말을 하기 싫었다. 그냥 내 책 읽기 했다. 끼니는 챙겨야 했기에 저녁 밥을 차리기 시작했다. 농구 팀수업 시작 20분 전이 되니, 허겁지겁 나와서 허둥지둥 몇 숟갈 뜨고 헐레벌떡 뛰어간다.
야 이 녀석아. 핸드폰을 하더라도 할 일은 하면서 해야지. 누가 일깨워 주고 잔소리 가득해야만 멈추면 되냐. 하고 싶은 것이 있으면, 네가 스스로 챙기렴. 아이고 꼬시다. 목소리 높이지 않고, 나름 좋게 말할 수 있었다. 무심함으로 대응했기 때문일까. 내 마음에 여유가 조~~금 있었다.
저녁 9시가 넘어서 돌아온 아들을 위해 햄버거를 준비해놓았다. 역시나 씻고 맛있게 먹더라. 이제 좀 힘들지만 남은 숙제 잘하겠지?! 설마 핸드폰을 또 붙잡진 않겠지?! 그러면서 나는 노트북을 열고 챗지피티와 내가 쓴 글에 대해 의견을 주고받고 있었다. (나도 네트워크에 있었네). 중간중간 숙제 마무리하고 잠잘 준비하라고 목소리를 내긴 했지만, 대체로 베란다 캠핑의자 내 자리를 지켰다. 아들이 당연히 알아서 하고 있으리라.
밤 11시. 아들이 너무 조용하다. 뜨아. 아이는 불 끄고 잠들어 있었다. 뭐냐 너. 농구하고 씻고 먹고 숙제는 안 하고 자는 아들을, 굳이 흔들어 깨웠다. 숙제했니? 했다고 하지만 믿을 수가 없다. 구몬 다 했다고 하면서, 들춰보면 국어만 했거나 한자만 했거나, 전날 것을 다 했다는 식으로 둘러댔던 때가 하루 이틀이어야지. 대충 하는 척 하다가 불 끄고 누운 것이 분명하다. 혹시. 하는 척도 안했었나.
핸드폰 실랑이는 끝이 없다. 치사함과 너그러움, 이해, 스스로 숙제한 날의 감탄, 칭찬, 다음날 또 분노, 실망, 비난 사이를 오락가락하며 아이와 핸드폰 실랑이를 벌인다. 하루 순탄하면 이틀 울퉁불퉁하다. 아마, 아이가 성인이 되고 내가 무력해질 때까지 이러겠지?! 아이고 한숨이 나온다.
내일 아침 안 깨울 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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