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라톤적 에로스 :
아름다움과 좋음, 참됨에 대한 동경을 말합니다. 아름다움은 이데아에 가까운 것이고, 플라톤에게 이데아의 세계와 지각의 세계는 동등하지 않죠. 인간이 감각할 수 있는 지각의 세계에서 이상적 이데아 세계를 동경하는 것은 자연스럽고, 그러한 경향은 우리 안에 내재되어 있습니다. 높고 좋고 참되고 이상적인 것을 향하는 마음이 제 안에 내재되어 있다는 것, 부인하기 힘들어요. 플라토닉 러브가 육체를 배제한 정신적 사랑을 뜻한다는 새삼스러운 사실을 떠올리게 됩니다 ㅎ
이데아를 인식하는 과정:
이데아의 세계와 지각의 세계. 사람들은 이 두 세계 사이의 역동적인 긴장 속에 살고 있다고 합니다. 지각의 세계에서 사람들은 어떤 행위들이 다른 행위들보다 더 좋다는 것을 인식하는데, 이 같은 인식(=좋음의 이데아에 대한 희미한 불빛)은 우리로 하여금 좋음의 이데아에 대한 일시적이고 불완전한 통찰을 획득할 수 있게 해 줍니다. 이 같은 인식은 직관에 의한 것입니다.
이데아를 직관하는 것(이론)과 감각세계를 경험하는 것(실천) 에피스테메와 독사? 사이의 지속적 상호작용(변증법)을 거치면서, 우리는 좋음의 이데아와 이 감각세계의 삶에서 좋은 것에 대한 우리의 통찰을 개선해 나갑니다.
이런 방식으로 철학은 보편적이면서 동시에 구체적입니다. 지식인 동시에 교육이죠. 교육과정은 위로는 이데아(빛)을 향하고, 아래로는 지각 가능한 사물들(그림자들의 세계)을 향한 끊임없는 여정이래요. 아카데메이아를 설립하고 운영했던 그의 행보에 이런 생각이 있었나 봅니다. 종종 플라톤이 진리를 위한 진리만을 추구한다는 주장이 제기되지만, 이는 플라톤을 단편적으로만 본 것 같네요. 그는 분명하게 말합니다 :
진리는 부분적으로 이데아에 대한 통찰과 지금 여기에서의 삶의 상황에 대한 통찰 사이를 왔다 갔다 하면서 획득된다고. 이데아에 대한 충분한 통찰을 성취한 사람은 세계를 계몽하기 위해 다시 이 삶의 세계로 돌아와 사회를 이끌어 나가야 한다고요.
이데아론의 비유 :
<국가>에서 플라톤은 이데아론을 명확히 설명하기 위해 3가지 비유를 제시합니다. 태양의 비유, 분할된 선의 비유, 동굴 속 수인의 비유.
태양의 비유는 태양이 좋음의 이데아와 비교될 수 있다는 것을 나타냅니다. 좋음의 이데아가 오로지 사유만이 접근 가능한 세계에 대해 갖는 관계 = 태양이 감각 세계에 대해 갖는 관계.
태양은 절대적 지위를 갖고, 태양이 빛을 주는 것처럼 좋음의 이데아는 진리를 줍니다. 또 햇빛이 있어 눈으로 볼 수 있듯이, 이성은 진리의 빛을 통해 이해됩니다. 눈이 우리와 태양을 연결시켜 주는 감각기관이듯, 이성은 우리와 좋음의 이데아를 연결시켜 주는 능력입니다. 다만 눈 또는 보는 능력이 태양과 동일하지 않은 것처럼 이성도 좋음의 이데아와 동일한 것은 아닙니다.
분할된 선의 비유는 우리의 인식능력이 상이한 차원에서 실현되고 있다는 것을 나타냅니다.
통찰(사유) (정신이 모상들의 도움 없이 순수하게 이데아만으로 사유할 때의 원형들에 대한 지식)/
주의 깊은 추론(사유) (주어진 전제들에 대한 지식) /
확신 (감각) (그림자를 만들어낸 사물에 대한 지식) /
추측 (감각) (그림자에 대한 지식)
예를 들면...?
통찰(사유) (정신이 모상들의 도움 없이 순수하게 이데아만으로 사유할 때의 원형들에 대한 지식)/ "소명의식? 은총? 혹은 혁명?"
주의 깊은 추론(사유) (주어진 전제들에 대한 지식) / "일의 의미, 일하지 않는 삶의 황폐함, 혹은 나만 너무 많이 일한다는 망상?"
확신 (감각) (그림자를 만들어낸 사물에 대한 지식) / "나는 SNS 올릴 게 없다. 재미없는 인생. 내 업무가 너무 많다."
추측 (감각) (그림자에 대한 지식) "다른 사람들 SNS를 보니 여유시간이 너무 많다. 다른 이들은 잘 놀고 있다. 나는 부족하다."
동굴 속 수인(갇힌 사람)의 비유. 드디어 나오네요. 이 비유는 지각 가능한 세계에 대한 우리의 지식과 이데아에 대해 우리가 취득하는 통찰 간의 관계를 조명합니다.
동굴 속에서 수인들은 오로지 동굴 뒤쪽의 벽만을 볼 수 있도록 그 쪽을 향해 묶여 있습니다. 그들 뒤에는 불이 있고, 불과 수인들 사이로 여러 대상이 한쪽에서 다른 쪽으로 옮겨지면서 그 그림자들이 수인들 앞의 동굴 벽면에 비칩니다. 이 움직이는 그림자들을 수인들은 실재라고 상상합니다. 수인들 중 한 명이 풀려나서 이 그림자들을 만들어내는 대상들을 볼 수 있다면, 그는 그가 지금까지 실재라고 믿어왔던 것이 단지 실재 대상들의 모상에 불과하다는 것을 깨달을 것입니다. 나아가 이 수인이 햇빛 속으로 나와 태양을 본다면, 그는 압도될 것이죠. 다시 동굴로 돌아가 그가 본 것을 얘기한다면, 다른 수인들은 그가 하는 얘기를 거의 믿지 않을 것입니다.
https://youtu.be/1RWOpQXTltA?si=Yo_1AR-SjClbLHar
https://youtu.be/d71tYwcpHNM?si=jSysf2GqGtrhQOLt

분할된 선의 비유와 연결하여, 동굴 속 수인들의 비유는 우리가 어떻게 지식의 위계질서 속에서 추측으로부터 통찰로, 그림자들의 세계로부터 햇빛으로 올라갈 수 있는지, 그리하여 마침내는 태양 자체를 볼 수 있는지를 설명해 줍니다. 그래서 플라톤의 이데아론은 존재론일 뿐 아니라 인식론입니다.
지각 가능한 사물들과 우리가 가진 대부분의 의견은 가변적이고 불안전합니다. 이러한 지식은 완전한 지식이 아니죠. 우리는 오로지 그 자체가 불변적이고 완전한 이데아들에 대해서만 객관적 지식, 즉 에피스테메를 가질 수 있습니다.
우리는 우리의 감각 경험과 언어적으로 표현된 표상들에 대해 성찰함으로써 이 객관적 지식에 닿을 수 있습니다. 이데아들은 우리의 표상들과 지각 가능한 사물들 근저에 놓여있기 때문입니다. 이를테면 정의로운 행위의 이데아는 다양한 좋은 행위와 우리가 정의로운 행동에 대해 갖고 있는 개념들의 근저에 놓여 있습니다. 우리는 언어적으로 표현된 정의로운 행위에 대한 다양한 개념 배후에 있는 놓여 있는 정의로운 행위에 대한 이데아를 인식할 수 있습니다 : 공통의 일상언어에 대한 개념 분석은 우리를 이데아에 대한 통찰로 이끌어줍니다.
이데아론과 인간 :
인간이 이데아의 세계 및 각각 세계와의 관계에서 차지하는 위치를 고찰해 봅니다.
플라톤은 인간이 전생과 후생을 갖는다고 말했다고 합니다. 영혼, 즉 실재 인격체는 출생 이전에도 존재했고, 육체의 죽음 이후에도 계속 산다는 것이죠. 인간은 이데아의 세계와 감각 지각의 세계 사이에 있는 창조물입니다. 영혼은 이데아의 세계에 속하고, 육체는 감각지각의 세계에 속합니다. 그래서 영혼과 육체를 가진 인간은 두 영역 모두에 거처합니다.
그러나 한 인격체의 실재적 부분은 플라톤에 따르면 영혼입니다. 우리가 삶이라고 부르는 것은 영혼이 육체 속에 구체화되었을 때 영혼의 존재기간입니다. 영혼은 감각 지각의 세계로 '풍덩 뛰어내린다'라고 할 수 있으며, 이것이 출생입니다. 일정기간 후 자신을 육체에서 해방시키고 다시 이데아의 세계로 돌아가면, 그것이 죽음입니다.
그러니까 영혼이 이데아의 세계에서 살던 전생 동안 영혼은 이데아들을 직접 볼 수 있었고, 출생 시에 육체를 취함으로써 자신이 전에 알았던 모든 것을 망각하는 것이죠. 다만 삶을 사는 동안 영혼은 자신이 전에 알았던 것을 떠올릴 수 있습니다. 자연 속의 불완전한 원들을 봄으로써 원의 이데아에 대한 이전의 통찰을 떠올리는 거죠. 그래서 출생에서 사망까지의 모든 학습은 재인식의 과정입니다. 우리는 지각 가능한 사물들 배후의 이데아들을 재인식합니다.
이 재인식은 통상 어렵습니다.
많은 영혼이 인식론적 암흑 속에 존재합니다. 그들은 진정한 통찰(에피스테메)로 뚫고 나가지 못한 채 근거 없는 의견들과 피상적인 감각경험들(독사)을 갖고 살아갑니다. 이 지상의 삶에서 지각 가능한 현상들 배후에 있는 이데아들을 직관해 내는 사람들은 소수일 뿐입니다. 이데아에 대한 명료한 통찰을 성취하는 일은 뛰어난 능력과 혹독한 훈련을 요한다고, 그래서 극소수만이 진리에 접근 가능하다고, 플라톤은 믿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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