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선 글에서 이어집니다. 플라톤에 대한 이야기.
이번엔 이데아론에 대한 반론으로 들어갑니다.
처음 반론을 제기한 것은 플라톤 자신이라네요. 허 참.
https://thefinger.tistory.com/312
3-1. 플라톤 : 이데아, 지식, 좋음
아기다리고기다리던 플라톤. 플라톤은 천천히 갑니다. 6월 한 달 내내. 그리고 이후로도 아마 죽 평생 같이 가겠죠. 책의 9주 차 분량에 이런 말이 있었어요 : 플라톤은 그가 말하고자 하는 바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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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데아는 시간 및 공간과는 무관하게 독립적으로 존재합니다.
일곱이라는 개념이 색깔을 표현하는 술어들로 서술될 수 없듯, 시간-공간의 술어들로 서술 될 수 없습니다. 정말 아는 것이 가능하긴 한가요? 이데아를 감각기관을 통해 지각하는 사물들과 근본적으로 다른 것이라면, 그리하여 이데아들이 공간, 시간 및 변화에 적용되는 술어들로는 전혀 서술될 수 없다면. 그렇다면, 우리 같은 '시간 공간 속의 변화 가능한 지각대상들'이 어떻게 이데아에 참여할 수 있나요?
위와 같은 근본적인 문제가 있다고 책에서 지적합니다.
그 외 2 가지 반론을 책에서 제기합니다.
1. '정의(선)'와 '나쁨(악)'과 같은 용어들은 이데아를 가리킵니다 그러나 이데아들은 또한 바람직한 이상들이죠. 그렇다면 다음과 같은 역설에 직면하게 됩니다 : '나쁨(악)'은 악의 이데아를 가리켜야 합니다. 반면 악은 바람직한 이상이 아니고, 따라서 악의 이데아는 존재할 수 없습니다. 읭?!
2. 이데아는 불변, 감각적 사물은 가변. 이데아론은 사물을 이데아의 복사본으로 봅니다. 그런데 어떻게 가변적인 감각적 사물들이 불변적인 이데아들의 복사본일 수 있을까요? 논리적으로 문제가 있어 보입니다. 만약 이 두 요소들, 즉 이데아와 감각 세계가 완전한 대립물로 정의된다면, 그것이 서로 어떤 관계를 가질 수 있나요?
과연... 플라톤이 이데아의 세계와 감각의 세계 간에 절대적인 논리적 구분을 했었을까요?
책에서는 의구심이 든다고 했습니다. 플라톤 <국가>에서는 무엇이 정의로운 행위인가에 대해 토의하는데, 거기에서 언급되는 '정의롭다고 칭할 수 있는' 상이한 행위와 의견들, 표상들은, 플라톤에 따르면, 그 모두가 정의의 이데아인 하나의 이데아에 참여하고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이 상이한 예들을 토론할 수 있게 해주는 것이 바로 정의의 이데아라는 거죠.
그러나 이것은 또한, 플라톤에 의하면, 정의의 이데아를 그것만 따로 분리해서는 이해할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정의의 이데아는 그 자체를 넘어서 한편으로는 지혜와 용기 그리고 중용의 덕을 가리키고 (정의란 이 덕들간의 올바른 조화이기 때문에: 이렇게 플라톤 <국가> 스포일러?), 다른 한편으로는 좋음의 이데아를 가리킵니다.
이데아들은 이렇게 서로 착종되어 있습니다. 연결되어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의 이데아에 대한 참된 지식은 가질 수 없습니다. 이데아들에 대한 통찰은 연관관계들에 대한 통찰, 총체성들에 대한 통찰입니다. 극단적으로 표현하자면 참된 지식은 '모든 것'에 대한 지식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전체에 대한 통찰, 이데아들의 모든 내적 관계 속에서의 이데아들에 대한 통찰은 인간으로서는 거의 성취 불가능하겠죠. 우리는 단지 불완전한 총체성들, 즉 불완전하고 잠정적인 총체성들에만 도달할 수 있습니다. (플라톤에 마음이 편안해지는 또 다른 측면이네요. 어차피 안되는거야~ 이루기 어려워~?)
이데아들에 대한 통찰은 지속적인 왕복 활동에 의해서 - 한편으로는 현상들과 이데아들 간의 위 아래로의 움직임에 의해서, 다른 한편으로는 일정한 이데아들의 다른 이데아들로의 지속적인 초월에 의해서 - 성취되기 때문에 총체성에 결코 도달할 수 없습니다. 이 해석을 토대로 우리는 좋음의 이데아 (일자 The One 의 이데아 : !!! )가 여러 이데아 가운데 하나가 아니라, 이데아들 간의 바로 그 상호관계를 나타내고 있다고 말 할 수 있습니다.
이 이데아들 간의 관계가 바로 실재의 토대이며,
우리의 감각기관이 우리에게 드러내주는 특정한 현상들을 지탱하고 있는 기본적 모형[패턴]입니다.
이 지속적으로 초월하는 전체론, 즉 변증법이 바로 플라톤 철학의 핵심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 이로부터 플라톤은 심리학, 사회학, 정치학, 경제학, 윤리학 등의 구분과 같은 고정된 아카데믹한 구분들을 토대로 한 현상의 탐구에 반대하는 입장을 취한다는 것이 도출됩니다. 참된 통찰은 궁극적으로 학제적 interdisciplinary, 그러니까 총체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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