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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상적 개별자의 철학 산책/서양철학사 : 군나르 시르베크 & 닐스 길리에

2-1. 소피스트들 (2) 고르기아스, 트라쉬마코스

by 은지용 2025. 4. 12.

 
고르기아스 Gorgias (기원전 약 483~374)
 
그는 시칠리아 출신입니다. 시칠리아, 이탈리아 장화의 앞코 부분에 있는 거대한 섬이죠. 펠로폰네소스 전쟁 중 아테네에 왔습니다. 뛰어난 웅변가였습니다. 무엇을 사람들 앞에서 외쳤을까요.

본래 자연철학을 공부했으나 엘레아학파의 철학을 접하고 난 뒤 철학적 회의론자가 되었다고 전해집니다. 또 엄청난 전쟁을 겪으면서 철학적 주장들 그게 다 무슨 소용인가 싶지 않았을까요. 당장 먹고 살고 죽느냐의 문제 앞에서 세상의 본질이 뭔들 무슨 소용?! 이런 식?
 
*엘레아학파 : 파르메니데스, 제논,,,, 피타고라스? 처음엔 뭔가 이상적으로 생각하는 피타고라스가 떠올랐으나 아무래도 피타고라스는 빼는게 맞는 듯. 파르메니데스를 다시 돌아보자면 : 녹색의 사과가 빨간 사과로 변하는 경우 녹색이 사라져서 '있지 않은 것'이 되는 셈-> 이는 변화가 비존재를 전제한다는 것을 보여줌 -> 성립불가 -> 변화는 논리적으로 불가능 <- 이성은 변화가 불가능하다고 말하는데, 감각은 변화가 존재한다고 말함 <-이성이 옳고 감각은 우리를 기만하는 것 <<= 이성과 감각지각의 타협 불가능한 구분을 설정 <<= 실재는 감각 현상이 아닌 오직 이성을 통해서만 파악될 수 있음
 
그의 저작으로 <있지 않은 것, 즉 자연에 대하여>가 전해지고, 플라톤의 대화편에 <고르기아스>가 있다고 합니다. 있지 않은 것, 즉 자연에 대하여. 운동과 변화에 대한 역설(논리적으로 아킬레스는 거북이를 따라잡을 수 없다던 제논의 설명)을 성찰하면서 참된 앎은 불가능하다고 주장했습니다. 철학 자체가 전적으로 자기모순이라는 결론을 이끌어 냈습니다 :
 
있는 것이 (운동/변화가)
있지 않은 것에 (자연에) 어떠한 관여도 하지 않는다면, (엘레아학파 말처럼)
또한 있는 것이 (운동/변화가) 모든 현상에 관여되어 있다면,
논리상, 어떠현 현상도 있는 것이라 말할 수 없다. 없다.
그러니까,
1. 어떤 것도 존재하지 않는다.
2. 무언가 존재한다고 해도, 그것은 알 수 없다.
3. 앎이 가능하더라도, 그것은 다른 사람들과 공유할 수 없다.
 
더 이상 참된 지식의 가능성을 믿지 않았습니다.
 
철학 쓸모 다 없어 했나봅니다. 그는 수사학을 순전히 설득의 방법으로만 활용하는 입장을 택했을 수 있다고 하네요. '이 견해에 따르면 합리적 토론과 합리적 확신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고, 남는 것은 오로지 설득의 기술뿐이다'라고 군나르 시크베르는 고르기아스의 소피스트적 특징을 언급합니다. 여기서의 합리는 이성으로 이해됩니다. 확실하진 않아요. 고귀한 이성 있잖아요. 소크라테스나 플라톤을 읽다 보면 정말 인간이 이렇게 고귀할 수 있어 싶어지는 그 이성이요. 쨌든. 그에게 수사학은 설득의 방법으로서 연마하는 것이지, 참된 앎을 추구하기 위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고르기아스의 관심은 참과 거짓, 타당한 것과 타당하지 않은 것을 구분하는데 있는 것이 아니라 청중에게 영향력을 행사하는 데 있었습니다. 수사학은 무엇보다 조작의 수단이 되었고, 참여자들이 서로 열린 자세로 설득을 통해 최상의 주장을 수용하는 Discourse 논의와는 아무런 관련 없는 것이 되었습니다. 어쩐지 현대의 보편적인 정치판이 연상됩니다.
 
트라쉬마코스 Thrasymachos (기원전 약 470~)
 
소크라테스와 동시대인. 플라톤의 대화편 <국가>에 등장.
 
옳음은 강자의 이익에 복무한다. 옳음은 힘이다. 이것과 배치되는 옳음과 정의에 대한 견해는 순진한 어리석음에 불과하다. 현행법은 최강자의 이해관계의 표현. 보편타당한 법질서가 존재한다는 견해에 절대 반대. 
 
언뜻 부인하기 힘든 매우 현실적인 견해로 생각됩니다. 그런데도 마음 속으로 보편타당하고 고귀한 무언가가 존재했으면 하는 것은 무슨 심보인가 싶네요. 같은 시대를 살아도 누구는 소크라테스가 되고 누구는 트라쉬마코스가 되네요.
 
 
*시칠리아 : 이탈리아 장화의 앞코 부분에 있는 섬. 지중해 최대 크기의 섬.
*펠로폰네소스 전쟁 : 기원전 431~404년 고대 그리스에서 일어난 전쟁. 아테네를 중심으로 한 델로스 동맹과 스파르타가 중심이 된 펠로폰네소스 동맹의 충돌. 이름에서 보다시피 스파르타 측이 승리. 아테네는 유린당하고 종속국 형태가 됨. 그리스의 전쟁은 본래 정형적이고 제한된 형태였으나, 나라 사이의 전면전으로 변했고, 대규모 잔학행위도 이뤄졌다. 전쟁은 종교적, 문화적 금기를 훼손했으며 농촌과 도시를 파괴했다. 기원전 5세기 그리스의 황금시대를 종식시킨 전쟁. (위키피디아)
전쟁의 첫 단계는 기원전 421년에 니키아스 평화조약이 체결되어 막을 내렸다. 그러나 펠로폰네소스에서 다시 교전이 일어나 이내 조약의 효력은 약해졌다. 기원전 415년 아테네는 시켈리아(시칠리아)의 시라쿠사이를 공격하기 위해 거대한 시켈리아 원정대를 파견하였으나, 기원전 413년 공격군은 대패하여 군대 전체가 궤멸되었다. 이 패배로 전쟁은 마지막 단계에 돌입하였는데, 보통 ‘데켈레이아 전쟁’ 혹은 ‘이오니아 전쟁’으로 불린다. 이때 스파르타는 페르시아의 도움을 받아 아테네에 종속된 에게해와 이오니아의 나라에서 일어난 반란을 지원하여 아테네의 패권을 잠식하였으며, 결국 아테네의 제해권을 빼앗았다. 아이고스포타모이 해전에서 아테네 함대가 궤멸되면서 사실상 전쟁은 끝났으며, 아테네는 이듬해에 항복하였다. https://ko.wikipedia.org/wiki/%ED%8E%A0%EB%A1%9C%ED%8F%B0%EB%84%A4%EC%86%8C%EC%8A%A4_%EC%A0%84%EC%9F%8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