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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상적 개별자의 철학 산책/서양철학사 : 군나르 시르베크 & 닐스 길리에

3-2 플라톤 : 국가와 좋음 - 권력, 능력, 남녀

by 은지용 2025. 7. 12.

플라톤은 극우인가 진보인가.

 

이번 분량은 플라톤을 인용하기 좋아하는 (혹은 플라톤이 저술한 소크라테스를 인용하기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해주는 이야기 같았습니다. 플라톤은 어찌 보면 극우 같고, 어찌 보면 극좌 같아요. 철저하게 나뉜 계급사회를 옹호하는 것 같으면서, 남녀 모두 평등하게 교육을 받을 것을 주장하기도 했거든요. 이번 챕터를 보면서 그런 의문이 쪼~끔 풀렸습니다. 그리고 <기억전달자>가 많이 생각나는 챕터이기도 했습니다.

 


 

 

플라톤이 보는 이상사회는 좋음의 이데아에 끈으로 매달려 있는 피라미드. 좋음의 이데아에 대한 통찰은 지배자들 속에 확고히 뿌리내리고 있으므로 그 끈은 파괴 불가능. 다만 지배자들 사이 당파와 이기심에 의한 알력이 위험요인. => 정치 권력을 가진 사람들에게 사적 소유와 가족생활 금지 처방 필요.

 

'가족생활은 구성원들을 사적 이해관계에 물들게 한다. 부는 질투와 갈등의시발점. 가족생활과 부가 사회의 공동체 정신을 약화시킨다.'

 

경제를 정치적 문제로 봄. 재화의 불균등한 분배, 심한 빈부격차는 사회 안정 위협. 나아가 경제적 이해관계를 가진 정치가들이 공동의 이익에 반하는 방식으로 행동할 수 있음. (꽤 현대적?) 도시국가가 능력 있는 지배자들 (교육), 공동체에 대한 충성심 (지배자들의 사적소유와 가족생활 금지), 자급자족 (인구와 영토의 균형), 국방력에 의해 지탱되어야 한다고 믿었음. 추후 <법률>에서는 <국가>에서 개진한 이 같은 관점을 완화함 : 인간 본성상 공동의 소유권을 요구하거나 부모자식 관계 해체를 가져오는 국가관리 하의 성 파트너 교대제 등은 불가능. 그래서 최선이 아닌 차선 국가를 옹호.

 

그렇다고 공산주의를 도입한 것은 아님. 오늘날 공산주의는 통상 맑스주의 (정치권력이 생산수단에 대한 경제적 통제로부터 나온다고 주장). 플라톤이 말하는 공동 소유권은 물건의 생산 (토지, 연장, 배 등) 보다 소비 (재화와 가족 구성원) 측면을 대상으로 하는 것으로 보이기 때문.

 

폴리스와 오이코스. Polis Oikos

 

도시국가와 가정을 뜻하는 폴리스와 오이코스는 그리스 사람들에게 매우 기본적인 개념. 공적인 것과 사적인 것으로 통함. 공동체 내에서의 좋은 삶은 삶의 주기와 그 자연적 한계 내에서 공동의 가정을 지속적으로 조화롭게 유지, 관리하는 것. 수신제가치국평천하 그런데 천하가 전세계 아니고 도시국가? 플라톤은 팽창하는 경제, 국가를 원했던 건 결코 아닌가 봅니다. 그에게 도시국가는 늘지도 줄지도 않는 일정한 수의 인구를 가져야 하고 (<법률>에서 5,040명의 주민을 가정하며 언급) 영토는 이들이 먹고 살기에 충분한 정도면 되지, 그보다 커서도 작아서도 안된다고 말함. 끊임없는 성장은 플라톤에게 말도 안 되는 생각으로, 불균형(혼란 chaos)을 초래하는 오만함(휘브리스 hybris). 

 

플라톤의 정치철학은 개별인격체의 인간적 성장을 성취하는 것을 목표로 함. 이거 너무 좋지 않나요? 플라톤에게 이것은 직업에 따른 사회 계급들을 기반으로 하는 도시국가에서의 안정적이고 조화로운 공동체적 유대 관계 속 좋은 삶을 뜻함. 개인과 구분되어 따로 존재하는 공동체나 국가 같은 것은 존재하지 않았음. 좋은 시민은 좋은 공동체를 전제로 하며, 좋은 공동체는 사람들이 자신에게 주어진 공동체 내에서의 기능을 수행한다는 것을 전제로 함. 각자의 아레테를 실현. 국가가 개인 위에 존재하는 파시스트나 집단주의 또는, 개인을 중시하는 현대의 개인주의와 다른 개념.

 

그래서. 이기주의는 플라톤에 의하면 도덕적 오류보다 더한 것. 이기주의자들은 한 개인은 언제나 공동체의 일부라는 것을 이해하지 못한 것. 개인과 사회가 어떻게 따로 존재하는가. 한 사람이 욕망하는 것은 좋은 사회가 요구하는 것과 동일한 것. 정의로운 직업 배분에 따른 분업으로 한 사람의 최상의 능력을 실현하고, 그 사람의 실제 욕구를 충족시키는 것. (<천 개의 파랑>에서 잘 달리는 투데이가 달릴 때 행복한 것처럼? <기억전달자>에서 각자 적성에 맞는 직업을 결정해 주는 것처럼?)

 

자유란,  자기 자신의 삶을 실현할 자유이며,

오로지 사회 안에서만 자신의 삶을 실현할 수 있다.

개인의 권리는 사람들이 사회 내에서 갖는 역할 및 기능과 연관되어 있는 어떤 것.

그러니까 플라톤의 이상국가에 자유가 너무 제한된다고 불평하는 사람들은 '좋음'이 무엇인지 오해하는 것.

이론상 개인의 이익과 공동의 이익 사이에 어떠한 모순도 존재하지 않는다는게 그리스 도시국가의 플라톤.

당시 공동체는 귀족이나 자본주의 시대가 아니었음.

 

그럼에도 불구하고 플라톤의 사상에 불편한 그 무엇, 권위주의가 있다. 그가 능력 있는 시민을 만들기 위해 필요한 교육체계를 서술하는 부분에서 특히 그러함. 국가론에 대한 전제들에 대한 토론을 허용하지 않음. 자유롭고 비판적인 성찰이 금지되어 있음. 아마도, 이것은 단지 이상에, 유토피아에 불과했었을 것. 군나르 시르베크와 닐스 길리에의 시각?

 

플라톤의 위치를 오늘날 정치 이데올로기와의 관계 속에서 논하는 것은 어렵다.

 

플라톤이 말하는 지배자들은 '좋음'에 대한 전문가들, 이데아에 대한 최상의 통찰이 있는 사람들로 목표와 가치들에 있어서도 전문가. 무엇이 최상인지는 좋음의 이데아에 의해 결정되는데, 이걸 잘 아는 사람들이 전문가. 가장 덕 있는 사람들이다.

 

반면 요즘 우리가 생각하는 전문가들은 '좋음'에 대한 전문가가 아님. 어떤 목적을 성취하기 위해 이런저런 것들을 해야 한다고 말할 수 있을 뿐, 그들은 우리에게 우리가 가져야 할 목적이 무엇인지 다른 누구보다 더 많이 말해줄 수 없음. 따라서 우리 사회에서는 전문가 의견보다 민주주의가 상위에 있음.

 

 

그가 극우 보수주의? 글쎄올시다. 앞서 살펴본 바와 같이 권위주의가 분명 감지되지만, 그는 전통에 대해 비판적이었고, 무엇이 보존할 가치가 있는지 무엇이 보존 가능한지 질문했음. 합리적 비판을 토대로 기성 질서를 변혁하고자 했음. 다만 이상실현의 어려움을 아주 잘 인지하고 있었음.

 

그의 후기 저작 <법률>과 <폴리티코스>에서 이상 실현의 어려움을 더 많이 고려함. '차선국가'를 옹호하며, 모든 사람에게 재산을 소유하고 가족생활을 할 권리를 허용함. 사회가 법에 의해 통치되어야 한다고 인정함. 최상의 해결책으로 왕정(능력)과 민주정(공중의 통제)의 혼합이라고 말함.

 

플라톤은 남녀 평등을 주장했다?

 

플라톤은 여성과 남성 간의 전반적인 평등을 옹호한다. 그는 남녀간 생물학적인 것에 근거한 분업과 위계질서를 지지하지 않음. 왜 여성이라고 남성처럼 공적인 의무 수행능력이 없단 말인가? 당시 그리스 사회에서 여성이 차지했던 낮은 위상을 고려할 때 주목할 만한 것. 당시 관습과 반대로 교육과 적절한 직업의 배분, 사회적 지위에 있어 여성과 남성의 기회균등을 옹호했고, 모두에게 평등한 법적 정치적 권리를 부여할 것을 주장했다. 다만 이 권리들이 근대적 의미는 아니고, 한 개인이 사회 내에서 차지하는 위치와 연관되어 있음(?)

 

플라톤에게 인간은 일차적으로 정신적 존재/ 지성적 존재/ 정치적 존재.

생물학적인 것은 부차적.

 

한편, 다른 곳에서 플라톤은 그가 살던 시대에 전형적인, 여성을 얕잡아보는 견해를 드러냄 : <티마이오스> 남성을 우월한 성이라고 말함/ <국가> 와 <법률>에서 여성을 사회적 해악의 원천이라며 경고. 성별에 대한 플라톤 논의의 불일치. => 여성들과 그들의 영역, 즉 출산과 새 세대의 양육을 두려워하였다는 주장이 제기.

 

재생산과 사회화의 영역에서는 자연과 사적생활이 군림한다. 이 영역은 합리적 통제의 범위를 넘어서는 곳. 플라톤이 남성과 여성에게 동등한 사회적 위상을 부여한 것은 맞지만, 이것은 그가 여성들의 전통적 영역을 뿌리째 뽑아내버리려고 시도했기 때문. 실제로는 여성들이 마치 통제 불가능한 세력인 것처럼 두려워했고, 사적 영역에서 아이들과 젊은이들을 키워내는 힘을 두려워해 억압한 시도라는 시각. 

(<기억전달자>에서 부모와 아이, 형제 모두 배정됐고, 산모도 직업의 하나였죠, 산모와 아이간 유대는 금기사항...사유재산처럼요..) 

 

확실한 것은 플라톤이 생물학적 본성보다는

지성과 교육을 우위에 두었던 것처럼

사적 생활보다는 공적생활을

우위에 두었다는 것.

 

여성의 위상에 대한 플라톤의 견해는 생물학적인 것과 문화적인 것, 사적인 것과 공적인 것의 관계에 대한 그의 견해를 명료하게 하는 데 도움이 된다.

 

 

 
서양철학사 1
『서양철학사』제1권. 이 책은 노르웨이를 대표하는 철학자 군나르 시르베크와 닐스 길리에가 함께 쓴 철학사 입문서로 인구 500만의 노르웨이에서 출발해 전 세계 14개 언어로 번역된 명저이다. 애초에 일반 대학생을 위한 교양 철학 교재로 집필되어 지적 호기심을 자극하는 쉽고 명료한 서술이 특징이며, 노르웨이의 학생이라면 반드시 치러야 할 철학 시험인 '엑사멘 필로소피쿰'의 대표적 교재로 자리잡은 후 점차 스칸디나비아 전역에서 이 시험과 상관없이 읽히게 되었고
저자
군나르 시르베크, 닐스 길리에
출판
이학사
출판일
2016.02.27

 

 
기억 전달자
북 아너 상 수상작이다. 모두가 똑같은 형태의 가족을 가지고 동일한 교육을 받으며 성장하는 곳. 이곳에서는 열두 살이 되면 위원회가 직위를 정해 준다. 열두 살 기념식을 앞둔 조너스에게 내려진 직위는 '기억 보유자'. 과거의 기억을 유일하게 가지고 있어야 하는 사람이 된 것이다. 선임 기억 보유자는 이제 기억 전달자가 되어 조너스를 훈련시키기 시작한다. 조너스는 효율적이고 평화로운 사회를 이루기 위해 희생된 진짜 감정들을 경험하게 되는데
저자
로이스 로리
출판
비룡소
출판일
2007.05.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