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고 같은 곳이고 딱히 누가 읽지는 않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끔 들어오는 사람이 있으니.
혹시라도 1984 안읽은 누군가가 이 글을 보고 있다면 ; 여기엔 1984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말하면서도 혼자 트루먼쇼를 찍는 기분이 든다 ... 쨌든.
1984 결말부분이다. 읽는 내내, 또 읽고 나서도, 괴로웠다.
도대체 나는 왜 이 책을 보고 또 보고 있는 것인가 싶었다.
번역본으로 처음 이 부분 읽을 때에는 괴로워서 설렁설렁 넘겼던 것 같다.
그런데 원서와 함께 천천히 보니 다르다.
단어 하나하나, 문장 하나하나 앞서 얘기했던 것이 뒤집히거나, 뭔가 걸리적 거리는 것들이 있었다.
꼭 느와르 영화를 보는 것 처럼. 유머는 쏙 빼고. 비장미, 뼈때리는 말들, 처절한 파괴가 난무하는 책의 뒷편이었다.
우선 괴로웠고. 한정된 공간 안에서 인간군상을 집약해서 관찰하는 기분이 들었다.
오디오북으로도 들어봤는데 꽤 실험적인 연극을 보는 것 같기도 했다. 오브라이언과 윈스턴의 대화가 주인 연극.
오브라이언의 광기와 다정함이 매우 섬뜩했다.
오브라이언이 설파하는 전체주의(totalism보단 집단적 유아론 collective solipsism)가 묘하게 설득력 있어서 불편했다.
윈스턴의 신체적인 항복은 예상할 수 있는 범위였으나.
줄리아와의 재회로 마음 속 남은 한 조각 불길마저 꺼진 후
체스트넛 까페에 돌아와 일어나는. '간증', '회개'에 가까운 정신적 항복은 너무나 찝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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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괴로웠고. 한정된 공간 안에서 인간군상을 집약해서 관찰하는 기분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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윈스턴은 결국 사상경찰에게 체포되어 애정부Ministry of Love로 끌려간다.
끌려간 시점이 낮인지 밤인지도 헷갈리고, 창문도 없고 끼니도 제공되지 않아 도대체 언제인지 알 수 없는 상태, 내가 지금 정확히 어디에 있는지도 모르겠는, 앞서 'the book'에서 얘기된 'cut off from contact with the outer world and with the past, the citizen of Oceania is like a man in interstellar space, who has no way of knowing which direction is up and which is down' 의 물리적 상태에 놓인다.
처음엔 유치장 같은 곳에서 그는 생존을 위해 사람들이 완전히 달라지거나, 그들의 똥싸고 토하고 욕하고 알랑방구를 끼는 장면과 이야기를 숱하게 듣는다. 또 다른 유치장에서는 앰플포스, 파슨스, 턱없는 사람과 해골같은 사람을 비롯한 사상범죄자들과 잠시 머문다. 모두 외부당원으로 보인다.
어리숙해보이던 동료 앰플포스는 정글북 작가에 관한 시에 'ROD'(막대/봉) 라임에 맞춰 'GOD'(신)을 넣는 것을 외면하지 못해서 끌려왔다. I could not help it. 그가 얘기했다. 그 안에 있는 예술본성을 어쩔 것인가. 그는 시인이고 rod 라임에 맞는 글자는 12개인가 밖에 없다던데. 그곳에 끌려와서도 시의 미래에 대해 얘기하는 인간 앰플포스를 어쩌겠는가.
열성 외부당원 파슨스씨 잠자는 동안 잠꼬대로 '타도 빅브라더 Down With Big Brother'라고 외친걸 어린 딸이 밀고하여 붙들려왔다. 사방이 텔레스크린에 프라이버시라곤 보장되지 않는 유치장 안에서, 더욱이 고장난 변기에, 파슨스는 바지를 내리고 큰 볼일을 본다. 그도 얘기했다. I can't help it. (p.234).
무턱의 얼굴을 가진, 영화 해리포터에서 스캐버스 같은 모습이라고 생각하면 될까. 그 턱 없는 사람도 아마 어쩔 수 없었을 것이다. 배고픔으로 굶어죽어가는 것이 분명한 해골같은 사람이 유치장 안에 끌려 왔을 때 바지 주머니에 있는 부스러기라도 주고 싶었던 것. 그런 연민이 일어나는 것. 지나가다 개가 죽은 것을 봐도 마음이 쓰이는게 인지상정 아닌가. 그러나 텔레스크린은 소리친다. 당장 멈추라고. 그리고 간수가 와서 그의 입에 한 방 크게 먹인다.
His mouth had swollen into a shapeless cherry-colored mass with a black hole in the middle of it. From time to time a little blood dripped onto the breast of his overalls. His gray eyes still flitted from face to face, more guiltily than ever, as though he were trying to discover how much the others depised him for his humiliation.(p.236)
* despise 경멸하다/ flit 스치듯 날아다니다
해골같은 사람은 Room 101으로 끌려가기 전에 끔찍한 말을 쏟아부으며 그곳으로 가기를 거부한다. Room 101에 안가려고, 자기를 도와주려다 맞은 무턱의 사내를 얼토당토않게 밀고하려고도 하고, 아사하기 직전인데도 괴력을 발휘해 의자다리에 매달리기도 한다. 그가 그러다 힘없이 끌려 나갈 때까지도, 유치장 내 다른 사람들은 두 손을 무릎위에 올린채 정면 만을 응시한다.
무기력하게.
앞서 Only feelings matter 했던 윈스턴, 여기서는 뭘 느끼기가 힘들다고 말한다.
In this place, you could not feel anything, except pain and foreknowledge of pain.(p.238)
책 전반부와 중반부 내내 윈스턴은 사실 자신이 애정부 안에서 처참하게 맞고 고문당하다가 죽을 것이라 예견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매질과 고문의 신체적/실재적 고통은 상상 이상이었다. Nothing in the world was so bad as physical pain. In the face of pain there are no heroes, no heroes, he thought over and over as he writhed on the floor, clutching uselessly at his disabled arm.
이런 저런 무시와 학대에 몸을 비틀며 봤다.
서대문, 남영동 일대에서 이뤄진 만행도 떠오르고.
캐리어 가방에 갇혀 죽은 10살짜리 아이도 생각났고, 울산 24시 어린이집 아동학대 사건도 떠올랐다...
일전에 부모상담 때 그런 얘기를 들었다. 사람의 뇌는 파충류의 뇌, 포유류의 뇌, 영장류의 뇌로 이루어져 있다. 각각 생존, 감정, 이성을 관장하는데 두뇌작용은 항상 파충류-포유류-영장류의 순으로 이뤄진다. 즉 생존이 보장되고, 감정이 안/전/하/다/ 여겨진 후에, 생각이란 것을 할 수 있게 된다는 것. 아이가 스스로 생각해볼 수 있도록 하려면 우선 아이의 감정을 인정해줘야 한다는 취지의 얘기였다.
고문이나 폭행은 사람의 생각을 사실상 멈추게 하고, 파충류의 뇌에 머물게 하겠지.
1984에서는 먹는 것도 만족스럽지 않고 생존도 가까스로 할 뿐이고.
감정은 증오와 승리 외엔 남지 않게 하니.
스스로 생각이란걸 할 수 없는 상태일수 밖에 없겠다...어쩔 수 없는 상태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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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브라이언에 대한 이야기를 이어서 하고 싶다.
도대체 왜들 이렇게 남의 자유를 침해하고 괴롭히는지에 대해 오 선생이 묘한 이야기를 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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