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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게읽기/1984

BOOK THREE/ 오브라이언 설교

by 은지용 2021. 12.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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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브라이언에 대한 이야기를 이어서 하고 싶다.
도대체 왜들 이렇게 남의 자유를 침해하고 괴롭히는지에 대해 오 선생이 묘한 이야기를 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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윈스턴은 체제전복을 위해 구체적으로 무슨 행동을 한 게 없다. 조직을 만든 것도 아니고, 누구를 해친 것도 아니다. 그의 죄목이라면 외부당원간 연애가 금지되어 있는데 줄리아와 사랑을 나눈 것, 프라이버시가 금지되어있는데 채링턴씨 상점 위에서 개인적인 시간을 가진 것(그곳에도 텔레스크린이 감춰져있었지만), 당이 몰딩하는대로 생각하지 못한 것 정도가 되지 않을까. 그 책도, 오브라이언이 취조중에 말하지만, 당이 맛사지를 해둔 책이고, 오브라이언을 통해 받지 않았던가.

고문은 당과 다른 생각을 할 줄 아는 사람들을 모욕주는 수단이다. 오브라이언이 취조하면서 말하는 내용을 보면, 윈스턴은 결국 제정신이 아니라서 그 수모를 겪는 것이다. 미친놈이 제정신에 대해 설교를 하는구나 싶었다. 그의 말에 이하면 이 모든 고초는 더 나은 인간이 되기 위한 것이다(To cure you. To make you sane. /Signet p.253). 더 나은 인간의 기준은 당이 세운다. 당에서 오세아니아는 유라시아와 전쟁 중이라고 하면 그런 줄 알고, 이스트아시아와 전쟁중이라 하면 또 언제나 그런 상태인 것으로 받아들일 수 있어야 한다. 당이 손가락이 둘이라고 하면 둘로 보이고, 여섯이라고 하면 여섯으로 봐야 한다. 진짜로.

Whatever the Party holds to be truth is truth.
It is impossible to see reality except by looking through the eyes of the Party. (p.249)

이 무슨 황당한 소리인가 싶겠지만. 당의 입장에서는 생각과 행동에 차이가 없다. 그 둘은 같은 것이다. 현실이란 것은 사람의 인지체계를 통해 받아들여지는데, 사람들의 인지체계를 통제하면, 현실이 통제된다. 당은 사람들의 인지체계, 마음, 생각을 통제함으로써 현실을 관리한다.

영화 매트릭스 1편 같은 세상.
진짜 인간은 생체에너지 흡수를 위해 인큐베이터에서 평생을 보내고, 일상생활을 하는 두뇌자극을 줌으로써 평생을 살고지고 하던 그 영화속 세상이 떠올랐다. 단 로봇이 아닌 인간에 의한 매트릭스.

사실 인간이 보는 세상과 개가 보는 세상이 다르고(시세포의 차이, 청각 및 후각의 차이 등). 10대때 들을 수 있는 음역대와 40대때 들을 수 있는 음역대도 다르다. 내가 인식하지 않으면 어떤 것은 보이지 않기 마련이다. 다른 누군가의 바램이나 문제부터, 오래전부터 책장에 꽂혀 있는 별 감흥없는 책, 냉장고 옆에 있는 자동차 열쇠도 보이지 않을 때가 있긴 하지...

오브라이언의 대사로 주로 이뤄진 이 궤변 가득한 연극은 취조실을 배경으로 계속된다.

윈스턴은 처형될 것이라고 했다. 단 '순교'가 되어선 안된다. 과거 종교재판이나 전체주의 때 처럼 다른 인간을 자극하거나 영감을 불어넣어줘선 안되기에, 당에서는 사상범들을 철저하게 파괴한 후 처형한다. 몸, 마음, 생각 다 굴복시켜 개종된 상태에서만 처형한다. 굴복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며 빅브라더를 사랑해야 한다고도 오브라이언은 얘기한다.

이런 얘기를 주로 메마르게,
때론 다정하게,
때론 엄격하게,
때론 행복감에 도취된 상태로
오브라이언이 긴 대사를 이어간다.
윈스턴은 몸을 움직일 수 없는 상태에서,
경우에 따라 전기 충격을 받아가며 말한다.
종종 그 충격을 주는 다이얼을 잊은 채.

"It would have no vitality. It would disintegrate. It would commit suicide."
오브라이언이 말하는 사회엔 확실히 생명력도 생동감도 없다. 그런 사회는 자살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1984 시대에서는 다른 과학은 모두 쇠퇴하지만, 신경학만큼은 발전한다. 애정부 안에서 사람들을 고문하고 '개조'할 때 활용되는게 신경학인 것 같다. 그리고 사람들은 모두 같은 것을 사유하도록 길들여지고, 언어도 제한되고, 당의 생각을 곧 나의 것으로 받아들인다. 아니 나의 것이라는 개념조차 상실한다. 개인은 하나의 세포일 뿐.

Never again will you be capable of love, or friendship, or joy of living, or laughter, or curiosity, or courage, or integrity.
You will be hollow.
We shall squeeze you empty, and then we will fill you with ourselves.(p.256)

입 속에 온 우주가 든 것이 아닌. 속이 텅 빈. 그런 생명은 어떤 가치가 있을까.

신경학이 집중 발달한 1984의 시대, 발달한 과학의 혜택이 독점된 1984의 시대. / 인간 몸에 관한 과학이 급진적으로 발달하는 지금, 그 혜택이 골고루 돌아가는 것 같지 않은 지금. 그 둘이 아주 멀리 있어보이진 않는다.

<호모데우스>에서 언급되었듯 지도자를 보고 반응하는 뇌의 영역으로 충성도를 판단할 수 있는 시대가, 언젠가 올 수도 있지 않을까. 중국에선 혹시 이미 어느 정도 현실화되었을까. QR코드로 내 일거수 일투족을 빅데이타에 주고, 내 생활패턴에 따른 맞춤형 광고를 받는 요즘 모습은. 영화 마이너리티리포트의 홍채인식 시대를 떠올리게도 한다. 방역패스 이후 전화기 없이는 공공장소 출입도 어렵다. 미래는 과연 어떤 모습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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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통털어 제일 무게감 있던 말이 이 오브라이언의 설교파트에 있다 ; 당이 이렇게까지 힘을 추구하는 이유. 윈스턴이 '그 책'을 볼 때도 궁금해했던 부분 why에 관한 것이다.

사회 발전, 인류구원, 등등의 뭔가 그럴듯한 명분이 있을까 싶었지만. 오브라이언은 적나라하게 말한다.
당은 오로지 그 자신을 위해서 힘을 추구한다.
The Party seeks power entirely for its own sake. (p.263)

그리고 그 힘을 어떻게 확인할 수 있는가 한번 더 질문한다. 윈스턴이 다른 이들을 고통받게 함으로써’ 가능할거라고 대답하니, 아주 정확하다며 흡족해한다. 다른 이들을 고통받게 함으로써 내 힘을 확신한다..

He paused, and for a moment asuumed again his air of a schoolmaster questioning a promising pupil: "How does one man assert his power over another, Winston?'

Winston thought. "By making him suffer."

"Exactly. By making him suffer. Obeidence is not enough. Unless he is suffering, how can you be sure that he is obeying your will and not his own? Power is in infliciting pain and humiliation. Power is in tearing human minds to pieces and putting them together again in new shapes of your own choosing." (p.266)

정당의 목적이 국가 공동체 발전이 아니라 정권창출에 있다는 말을 들었을 때 처럼 충격적이었다. 순수한 힘을 찾는 사람들과 그 힘을 확인하는 '고통주기'라는 방법. 작가의 통찰을 통해서 보면. 평소 도무지 이해가 안가는 학대나 집단따돌림 등의 사회뉴스부터 정치뉴스까지 갑자기 이해가 간다.

힘을 찾는 것도 인간의 본성에, 인간적인 것들에 속할까. 섭취하고 배설하고 생각하고 그리고 유희하고 공동체를 이루고, 유대감을 느끼고, 공동체를 더 키워서 분업하고, 침팬지 가족 이상의 것을 이루고.... 규모가 커지면 필연적으로 발생할 수 밖에 없는 것들일까. 힘. 다른 사람에 대한 힘. Power over hum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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