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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게읽기/1984

BOOK TWO/ 책 속의 책

by 은지용 2021. 11. 25.

1984에는 책이 한 권 등장한다. (Signet, P.184~217) 주인공 윈스턴이 오브라이언을 통해 얻은 '그 책'은 공공의 적 엠마누엘 골드스타인이 쓴 것으로 전해진다. 윈스턴은 형제단 일원이라면 모두 그 책을 읽을 것이라 생각한다.

갑자기 적국이 바뀌는 통에 진리부 행정직 윈스턴은 모든 서류를 바꿔치기 하는 삽질에 연이은 야근을 한다. 1984에서 과거는 과거가 아니라 현재의 연속이기 때문에. 적국은 변하지 않고 언제나 같아야 한다. 몇날며칠 연이은 야근에 몸이 젤라틴처럼 퍼질 때 쯤 일이 마무리됐고 그는 '그 책'을 들고 드디어, 그만의 프라이빗한 채링턴씨 상점 위층으로 간다.

폭풍업무 후, 프라이빗한 공간에 와있고,
줄리아가 곧 올 것이고, 한정된 고독 속에,
바깥에서 적당한 소음이 들려오는,
늦은 여름의 늦은 오후,
내가 사는 사회 얼개를 이야기하는 사회과학 서적을 읽는 만족감.
창문으로 스며드는 노란 빛이 그가 꿈꾸는 golden country가 가까이 온 것 같은 느낌을 주기도 했다.

민음사 번역본으로 읽을 때 매우 몰입도 좋고 윈스턴의 만족감이 아주 잘 전해졌으나. 원서로 보니 뭔말인지 잘 모르겠고, 뼈 때리는 강도가 좀 덜했다. 그래서 자꾸 번역본으로 돌아가서 읽게 된 부분이기도 하다.

그런데 이 책. 읽을수록. 왠지 내부당원 지침서 같다.
책은 당의 슬로건 가운데 War is Peace, Ignorance is Strength, 그리고 Doublethink에 대해 적나라하게 얘기한다.

고전에서 하지 말아야할 무지막지한 요약을 해보자면 ->

세상엔 하이,미들,로우 (the High, the Middle, the Low) 세 계급이 있다. 로우는 언제나 로우고, 미들은 언제나 하이를 꿈꾸며, 하이는 언제나 하이를 유지하고자 한다. 미들이 로우를 자기 편으로 내세우면서 하이를 뒤집은 적도 있으나, 일단 하이가 되면 로우는 즉각 로우의 자리로 돌아가게 된다. 인류 역사상 계속 수없이 반복되온 역사다. 이는 자이로스코프(일종의 팽이)가 그 균형(equilibrium)을 항상 유지하는 것처럼 지속되어 왔다.

이 시대의 전쟁은 대승리나 끝이 없다. 적당한 전쟁은 지속되어야 지배체계를, 당의 평화를 공고히 할 수 있다. 그래서 전쟁은 곧 평화다(War is peace). 전시체계는 미들이나 로우의 생각을 멈추게 하며 그들의 권한을 저항없이 하이에게 넘기게 하는 수단이자, 적당한 가난을 유지할 수 있는 수단이기도 하다. 계급은 약간의 특권을 -그들이 입은 옷의 질감, 음식, 거주지 등의 차이로- 줌으로써 구분되도록 한다.

또 적당히 가난을 유지해줘야 사람들이 아이 낳고 살아가기 급급해서 내가 사는 세상에 대해 의심하고 사고하는 것을 멈출 수 있다. 로우나 미들의 교육수준이 낮고 과거로부터 단절되어야, 내가 우주공간에 있는 것처럼, 어디가 위인지 아래인지도 모른채 있을 수 있고, 당의 지배체계를 공고히 할 수 있다(Ignorance is Strength).

cut off from contact with outer world, and with the past, the citizen of Oceania is like a man in interstella space, who has no way of knowing which direction is up and which is down.

이 시대 세 개의 초국가(superstate) 사람들은 서로 국경을 넘을 수 없다. 비교대상이 없어야 나의 상태를 가늠할 수 없기 때문. 더 나은 세상이 있다는 것은 꿈도 꿀 수 없어야 하기 때문이다. Indeed, so long as they are not permitted to have strandards of comparison, they never even become aware that they are oppressed.

빅브라더는 피라미드의 정점이며, 영국 사회주의당은 절대 선 이어야 하며 오류가 있을 수 없다. 그러나 현실은 사실상 그러기 힘드므로 사람들의 현실감각을 통제해야 한다. 당의 필요나 지시에 따라 사실을 다르게 인식하거나 잊어버릴 수 있는 사고체계, 이것이 이중사고(Doublethink)이다. 적국이 갑자기 바뀌어도 동요가 일지 않는다. 전쟁을 관장하는 평화부 Ministry of Truth, 고문을 담당하는 애정부 Ministry of Love, 빈곤을 유지시키는 풍요부 Ministry of Plenty와 같은 부서 명칭이나 당의 슬로건도 이 같은 이중사고를 표방한다.

과거를 자꾸 수정하는 것은 당의 무류성을 유지하는데 꼭 필요하기 때문이다. 여기에 이중사고가 필수적이다. By far more important reason for the readjustment of the past is the need to safeguard the infallibility of the Party.

Oceanic society rests ultimately on the belif that Big Brother is omnipotent and the Party is infallible. 'Infallibility'가 '교황청의 무류성(오류가 없슴)'을 지칭하는 단어이기도 하고. 'Omnipotent'가 '전지전능한'이란 것도 그렇고. 1984가 말하는 지배체계의 본질은 어딘가 사람의 종교적 특성과 닮았다.

책 속에 BB가 영생할 것이라고 논리적으로 유추해볼 수 있다는 문장이 나온다. 내용도 문장도 아이러니 그 자체인데. 여기서 뜬금없이 '단군'이 떠올랐다. 천년을 살았다고 전해지는 '단군'은, 당연히 '단군'이라는 직책을 이어받은 수많은 사람들로 해석된다. 사람들이 모여살고, 규모가 커지면서 필연적으로 발생하는 계급, 종교, 문화 이런 것들이 새삼스럽다.
정치와 종교는 확실히 닮은 구석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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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중사고는 1984에서 이름붙여졌지만, 여기에만 있는 특이한 개념이라고는 볼 수 없다.
이중잣대와 비슷한데, 좀 더 나아가 의식과 무의식을 아우르는 개념으로 보인다.

십자군 전쟁에 나서는 기독교인의 비장함은 옳고 이슬람교도의 비장함은 무지이다./ 십자군 전쟁에 나서는 이슬람교도의 비장함은 옳고 기독교인의 비장함은 무지이다.

어떤 사실을 대할 때 즉각적으로 나는 사라지고
내가 숭배하는(?) 그것의 입장이 되어버리는 것. 그리고 그 전환조차도 잊어버리는 것...? Blackwhite
어라, 잠깐만, 왜, 하는 질문이나 멈춤에 죄책감을 느끼고 시도조차 하지 않는 것...? Crimestop

내가, 우리가, 이런 인식조차 없이 현실을 받아들이고 있을 때 과연 누가/무엇이 가장 이득을 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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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읽기하는 단톡방에서 누군가가 1984 신어에는 '그냥'이란 단어가 없을 것 같다고 했다. 나도 그렇게 생각한다. 비슷한 단어도 없을 것이다. 단톡방에서 또 누군가 한나아렌트의 '전체주의의 기원'에 대해 얘기했다. 그래서 찾아보니 흥미로웠다. 사람들이 계속 생각하고 질문해야 한다고. 그래야 민족주의나 전체주의의 덫에 걸리지 않는다고. 나치의 홀로코스트를 유대인에 대한 범죄로 보기 전에 인류에 대한 범죄라는 시각으로 바라봐야 한다고.

오늘 '왜'와 '그냥', '왠지'를 품고 또 마음산책 다녀오는 나는. 우리는. 다행인걸까.
늘어나는 세금과 줄어드는 생활비에 어떻게 대처해야할까를 고민했던 나는. 우리는. 불행한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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