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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게읽기/1984

BOOK THREE/ 마더 빅브라더

by 은지용 2021. 12. 29.


They slapped his face, wrung his ears, pulled his hair, made him stand on one leg, refused him leave to urinate, shone glaring lights in his face until his eyes ran with water; but the aim of this was simply to humiliate him and destroy his power of arguing and reasoning. (p.241)

아. 이 부분을 읽을 때 뜨끔했다. 내가 혹시 집에서 가족들에게 논쟁하거나 말대답할 여유를 없애고 있진 않나 생각이 들었다. 아이를 바르게 자라도록 한다는 미명하에, 보호자라는 감투에 취해, 혹시 겁박한 적은 없던가 생각이 들었다. 안전을 위해 캠코더로, 전화로, 빅브라더처럼 아이를 감시했던 것은 아닐까 생각이 들었다. 너무 나간 생각일수도 있지만. 사실. 엄마가 항상 지켜본다는 인식은 아이에게도 있지 않던가.

그런데 아이에게는 역시 어떤 규칙을 가르쳐줘야 하지 않던가. 여럿이 모여 살 때 지켜야할 예의 같은 것. 이런 저런 선을 나도, 아이도 지킬 수 있어야 할텐데. 그런데 그 선은 누가 정하는 것일까. 그날 버럭했던가. 그래서 더 그런 생각이 들었던가. 버럭하면 아이를 옴짝달싹 못하게 생각도 못하게 만들지는 않았나. 등등 생각들이 꼬리를 물며 따라나왔다.

거대 정당은 사람들을 미취학 혹은 초등 저학년 아이처럼 취급하는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개인 경험을 떠올려보자면, 아이가 아기였을 때 내가 단지 젖소 또는 인류존속을 위한 도구가 된 것 같은 우울감도 오지만 그에 따른 막강한 힘도 느낀 적이 있다. 아이의 모든 것이 나에 의해 좌지우지될 수 있을 때 였다. 몹쓸 육아서적들을 봐서 나의 작은 행동이, 시간맞춰 우유 안주거나, 필요한 걸 제 때 반응 못하면, 아기에게 부정적인 것이 각인될까 어쩔까하며 전전긍긍하던 그 때 말이다...

막무가내 싸이코패스 등을 다루는 말도 안되는 사회뉴스를 보며 내 아이가 저런 사람으로 자라면 안되지 했더랬다… (그냥 나만 잘하면 되었던건데, 그리 끙끙댈 필요 없었는데…그 땐 몰랐다. 특히 첫째면 더 모른다)

그런데 혹시 내가 가끔 그런 끔찍한 모습은 아니었을까 생각했다. 생존 보장 -> 감정 안전 -> 이성 발달의 순서를 무시하고 아이에게 이성만을 강요하진 않았나 싶기도 하고. 횡설수설. 뜨끔하니 더 횡설수설하게 된다. 한편으론 내가 그럴 리 없다는 확신도 있다.

만약 빅브라더가 실재하는 인물이라면, 그를 좀 바쁘게 하면 감시망을 빠져나갈 수 있을지도 모른다. 마더 빅브라더에게 책, 산책, 친구, 혹은 무한 데이타 인터넷 같은 컨텐츠를 선사하면, 다른 가족들이 숨 쉴 틈이 생길 수 있듯이.

물론 1984의 빅브라더는 그렇게 존재하는 인물이 아닌 것으로 보인다. 그의 숙적 골드스타인도.

동네 서점 책읽기 모임에서 1984를 처음 접했을 때 아이 셋 있는 누군가 '내가 우리집에서 빅브라더 같다'는 말에 크게 공감했던 바, 이렇게 횡설수설을 덧붙인다.

시간이 꽤 지났지만 아직도 강렬한 느낌을 주는 멘트다. 그 멘트가 뇌리에 마더 빅브라더로 각인되었다. 외출해서도 캠코더로 지금 아이들이 뭘 하고 있나 수시로 확인한다며. 물론. 아이가 어릴수록, 힘이 약할수록, 마더 빅브라더가 될 가능성은 높아진다. 상대가 약하면 약할수록.

집안 분위기에 따라 파더 빅브라더도 가능하지 않을까. 경제력도 힘의 중요한 원천 중 하나이니까.

참 별 생각을 다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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