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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게읽기/1984

BOOK ONE/ 이분증오 일상

by 은지용 2022. 2. 9.




1984에서는 2분증오라는 루틴이 나온다.

책 속 사람들은 업무 중간에 반드시 매일 2분씩 다같이 모여, 당이 준비한 어떤 영상을 보며 함께 광분한다.
영상은 조금씩 달라도 큰 맥락은 같아서 공공의 적 골드스타인을 폄하하고, 적국의 군사에 분노하며, 빅브라더에게 구원받는 흐름을 담고 있다. 고대 희생제의 같기도 하고, 얼핏 부흥회 같기도 한 모습이다. 훨씬 짧고 폭력적으로 만들어 일상화했지만 말이다.

주인공 윈스턴은 이 2분 증오를 매우 탐탁치 않게 인식하지만, 가장 마음에 안드는 부분은 앉아 있다보면 자기도 같이 광분하게 된다는 점이라고 말한다. 마치 전류가 흐르는 것처럼 내 의지와 상관없이.

The horrible thing about the Two Minutes Hate was not that one was obliged to act a part, but that it was impossible to avoid joining it.....
A hideous ecstacy of fear .......

flow through the whole group of people like an electric current, turning one even against one's will into a grimacing, screaming lunatic. (p.14 Signet, 부분 부분)

미움과 증오가 힘의 원천인 세상 얘기로 치부하고 넘어가기엔. 좀 껄쩍지근하다. 어딘가. 신문 뉴스 보며 혀를 차는 옛날 아빠의 모습이나, 출근 후 포털 뉴스를 훑어보며 지지정당 아닌 곳 사람들의 이야기에 피를 토하며 비판하고, 국가의 미래를 걱정하는 어느 상사를 떠올리게 한다.

1984 그들의 루틴이지만 2022 우리의 루틴과 어딘가 통하는 것 같다.

대선 시즌이 되니, 미움이나 증오를 기점으로 '헤쳐모여'하는 각 정당들의 논리가. 1984를 더욱 떠올리게 한다.

이쪽은 저쪽이, 저쪽은 이쪽이, 그쪽은 이쪽과 저쪽이 잘못된 기준을 갖고 잘못된 사고를 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슬쩍 슬쩍 자신들의 기준점을 이동하면서, 기준점을 움직였다는 것 조차 잊는, 이중사고doublethink를 몸소 실천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탈출불가능한 미로에 스스로를 가두고도 정신승리하는 모습. 나한테만 그렇게 보이는 건가. 그럼 나한테 문제가 있는 것일텐데...

친구에게서 특정그룹을 미워하는 말을 듣고 화들짝 놀라 끄적였다. 분노할 것엔 분노해야 하는게 맞는데. 요즘 그녀가 책을 좀 멀리하더니 다소 일방적인 분노가 그녀를 침범했나. 평소 유머스럽고 온화한 친구이기에 더 놀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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