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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기일기/늘푸른지

비 오는 안면도, 숨은 ○○ 찾기

by 은지용 2010. 6. 30.


충남 태안군 안면도는 서해안 고속도로 개통과 꽃 박람회 개최 이후, 많은 사람들이 찾는 인기 관광지다. 휴가철이면 안면도를 관통하는 77번 국도가 몸살을 앓을 정도로 유명해졌지만, 사실 이 맘 때 안면도에는 여전히 덜 알려진 여행 거리가 숱하다. 보물찾기 하듯 국도 옆 사이 길을 더듬어 가면 그 끝에 한적한 바다가, 마늘 밭에는 귀한 육쪽마늘을 발견할 수 있다. 길가 간이 농산물집하장이나 노점에는 제철 농산물이 가득하다. 무엇보다 바다 속에는 우럭, 꽃게 그리고 고래가 있다.




*비 오는 여행길





고속도로를 빠져 나와 막 안면도에 진입하는 천수만 A, B방조제에 들어섰다. 양 쪽으로 시선 둘 곳을 찾지 못할 정도로 탁 트인 공간이 나타난다.

왼편으로 평평한 물 밭이, 오른편으로 끝없는 논 밭. 잠시 차를 세워 철새들의 터전이기도 한 시선 가릴 낮은 건물 하나 없는 너른 풍경을 감상하다, 내친김에 농로로 들어서 걷기로 했다. 흙을 밟는 느낌이 괜찮다.


하늘은 잔뜩 내려앉아 곧 비가 내릴 것 같은데, 저기 멀리 논에서 일하는 분들은 아랑곳하지 않는다. 아닌 게 아니라 방조제를 다 건너고 안면도의 시작을 알리는 큰 소나무를 지나칠 때쯤부터, 추적추적 비가 내리기 시작한다.


이 날에는 5월치고 꽤 많은 비가 내렸다.




한꺼번에 퍼붓는 소나기는 아니었고, 부슬부슬 몇 날 며칠 내리는 게 꼭 장맛비 같았다.

비가 내려 세상이 젖어 들면서, 도로변 나뭇잎의 초록은 맑은 날 보다 그 색이 더 농염해진다. 기온도 살짝 떨어졌다.


그러자 평소 지나치기 쉬운, 국도 변 농산물 노점상의 고구마 굽는 연기가 자꾸만 눈에 들어온다. 요즘이 (5월말 6월초) 호박고구마 철이란다.


물이 들락날락하는 드르니항 입구를 지나 백사장항쯤 가니, 길가 식당의 꽃게탕이라는 글씨가 자꾸 눈에 띈다. 이쯤 되면 적당히 차를 대고 꽃게탕에 걸쭉한 안면도탁주 한 사발 들이키지 않고 못 배긴다. 요즘 암꽃게는 산란기를 맞아 살도 오르고 알이 꽉 차 그 맛이 일품이다.



*숨은 ○○ 찾기

안면송도 식후경이라, 꽃게탕으로 배를 채우고 안면도 자연휴양림으로 향했다.


안면도의 소나무는 키 큰 적송으로 예부터 궁궐용 목재로 쓰였다. 적송이지만 바다 인근에서 발달해 해송의 형질도 갖고 있어, 안면송이라는 별칭이 있다고.


휴양림의 대부분이 소나무이지만, 크고 작은 활엽수도 가득하다.
지나치게 높지도 낮지도 않은 산책로를 걷다 보면, 2000원의 입장료가 전혀 아깝지 않다.




비 오는 날의 숲길은 예상치 못한 상쾌함으로 가득했다.
비는 나뭇잎이 대신 맞고, 그저 후두둑 빗방울 떨어지는 소리만 들려온다. 그 소리가 걷는 이의 마음을 편안히 해주는 자연의 음악 같다.



숲길을 따라 헤매다 어찌저찌 동네 어귀까지 긴 걸음을 하게 됐는데, 마늘 밭이 나타났다. 서산과 태안 일대는 난지성 마늘인 육쪽마늘의 본산으로 6월이면 본격적인 출하가 이뤄진다.



밭에서 한 주를 뽑아봤다.
흙이라는 인큐베이터 안에서 자줏빛을 띠며 익어가는 육쪽마늘이 마냥 신기했다. 잘 자라라고 격려하며 다시 흙 속에 심어줬음은 물론이다.



이번에는 숨은 해변을 찾아 나섰다.

찾는 법은 간단하다.
할미 할아비 바위 조망과 꽃박람회 개최지로 유명세를 톡톡히 치른 꽃지 해수욕장에서 좀 더 남쪽으로 내려가면 된다.




영목항으로 곧게 이어지는 77번 국도로부터 옆으로 빠지는 여러 갈래 길을 다 참견 하면, 조약돌이 많은 샛별해수욕장에 이어 긴 해변의 장삼, 항아리모양의 장돌, 큰 바위 굴이 있는 바람아래 해수욕장까지 들를 수 있다.



특히 샛별해수욕장에서 비포장 도로를 따라 작은 산을 넘어 좀 더 남쪽으로 가면, 아는 사람만 찾아가는 조용한 바닷가 ‘쌀 썩은 여’가 있다. 한양으로 쌀을 실어 나르는 뱃길이었던 이곳은 무슨 이유에서인지 배가 자주 침몰했다는 후문이다. 꽃지의 할미 할아비 바위와 함께 안면절경으로 꼽힌다.



안면도의 남단 영목항에 도착, 신선한 해산물 난전까지 보고 다시 북쪽으로 방향을 바꿨다.
숙박업소는 꽃지와도 가깝고 휴양림을 품은 승언리 일대에 흔하다. 대부분 깨끗한 편이며, 휴양림 내의 ‘숲 속의 집’이나 인근 ‘휴양림통나무집’ 등이 조용하다. 휴양림은 진짜 조용하고 저렴하며, 통나무집은 친구 부모님 집이라는 점을 미리 밝혀둔다. (신문에는 물론 뺐지만)




돌아가는 길에 안면읍내의 시장에 들렀다.
시장은 ‘안면도 장터’라는 간판을 걸고 ‘ㅁ’자 형태의 상가건물과 주변 난전으로 이뤄졌다. 건물 내부는 해산물이 주류이고 바깥쪽 작은 규모의 난전에 채소나 공산품이 많다. 하지만, 해산물은 몰라도 농산물은 안면읍보다 길가 노점상이나 태안읍, 서산, 홍성 쪽 시장이 더 풍부하다.



장터 안, 수족관 앞에 이제 막 물차에서 배달 된 큼지막한 우럭이 펄떡인다.
너무 커서 안 팔린다고 도로 가져가라는 가게 주인과 물차 주인의 실랑이가 벌어진다. 구경삼아 장터를 돌아보다, 난데없이 귀여운 고래인형을 지나쳤다고 생각했는데 다시 보니, 진짜 고래다.


고래!!!
식용은 아니고 나중에 화장품회사가 수거하러 오는데, 인근에서 심심치 않게 잡힌단다. 주인에 따르면 Kg당 5000원선이라니 부수입치고는 짭잘한 편이다. 아이들이 하도 신기해해서 냉동고에 바로 넣지 않고 잠깐 내놓은 것이란다.



비늘이 없는 것이 왠지 보통 물고기 같지 않다. 작고 깊은 눈에 웃음 짓는 듯한 표정이 여간 영물스러운 게 아니다.
여행 내내 숨은 뭔가를 보여준 안면도의 마지막 보물이 고래였는지도 모르겠다.





ps. 고래의 살짝 미소진 듯한 모습에, 그렇다고 이걸 고사지낼때 돼지머리대신 쓰는건 좀 그렇다고 생각했다. 누군가 이 생각에 대해, 정말 상상만으로도 그렇다며, 혹시 우리는 종 차별주의자일까 라고 반문했다. 정말 그럴까?  하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