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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기일기/늘푸른지

하회마을에서 헤매다

by 은지용 2010. 5. 30.
2010년 5월 안동 기행


봄의 한 가운데. 초여름을 향해 생동하는 산천을 만끽하며 한 숨 돌릴 수 있는 곳을 찾았다.
산천초목과 어우러진 한옥집에서 쉬어가며, 원기회복을 돕는 특산물도 손에 쥘 수 있는 곳. 마(산약)로 이름난 경북 안동이다. 하긴, 부산까지 내달려야하는 낙동강도 하회마을 즈음에선 마을을 휘돌며 쉬어가지 않던가.
이번엔 안동(安東)이다.



@ 한옥에서의 하룻밤


저녁 무렵의 마을은 평온했다.
햇빛도 땅에 눕다시피한 시간. 낮은 담 사이로 펼쳐진 안동 하회마을의 골목길 정경이 사람 마음을 푸근하고도 노곤하게 한다. 어디선가 밥을 짓는지 연기냄새도 난다. 입구에서 미리 전화해둔 한옥 민박집만 찾아 몸을 누이면 되는데.

헌데, 도무지 찾아갈 수가 없다.

집집마다 문 앞에 번지를 뜻하는 숫자가 적혀있건만, 주인 할머니의 설명은 '마을 한가운데에 있다'가 전부다. 다시 전화를 걸었다. 양진당이라는 큰 건물 근처인데 더 이상 못 찾겠으니 주소를 알려달라고.


할머니는 천진난만한 목소리로 거기서 은행나무 있는데 까지 위로 올라오란다.

대체 어떤 은행나무를 가리키는지 알 수가 있나?!!

나는 아파트에 산다. 2203호. 이 숫자는 집을 찾는 열쇠다.
오늘날 상당수 도시민들의 사정이 다르지 않을 터.
경북 안동 하회마을에는 이런 숫자 따위로 주소를 기억하지 않는 사람들이 버젓이 오늘을 살고 있는 모양이다.




다소간의 황망함과 함께 하루동안 동거동락할 한옥과 만났다.
그리고... 황망함은 곧 잊혀졌다. 소박하지만 나름 기와를 올린 기품 있는 집이었다.

마당 장독대에서는 어렴풋이 집된장 냄새가 났다.

머물게 된 방은 대청마루를 사이에 두고 안방과 마주보는 건넌방. 후원으로 난 문을 열면 작은 텃밭과 키 작은 꽃나무가 보이는 아늑한 공간이었다. 낮은 담과 넓은 하늘은 옆집과 함께 쓴단다.


밤 9시, 산책길에 나섰다.

어둠은 소리를 먹는다고 했던가. 온 사위가 조용하고 어둑하다. 하늘을 보니 별도 밝고, 시 한 수라도 읊어야 하나. 잠깐 고민하다 집에 돌아와 잠들었는데, 새벽녘 뜨끈한 구들장에 누운 채 창호지에 물드는 푸른빛에 시선을 빼앗겼다.



@ 숫자보다 인간적인 기억법



마을 고택 가운데 아침밥이 숙박비에 포함된 곳이 있다. 나와 하루를 함께한 집은 할머니 혼자 사는 곳이라 서비스가 힘들다. 대신 밥 하는 집을 안내받았다.

물론 이 집을 찾는 것도 녹녹치 않았다.


아침을 해주는 '대구댁' 아주머니는 강 쪽에 있는 탤런트 '류시원' 집 근처에 사신다. 숫자가 빠진 한 줄의 정보를 들고 2분 거리의 이 집을 찾는데 15분 정도가 걸렸다.

밥상에는 안동 간고등어가 빠지지 않았다.

그리고 무를 넣어 끓인 시원한 된장찌개, 각종 나물을 삶아 콩가루 양념 한 시골 나물반찬, 알싸하게 무친 깻잎김치, 부들부들한 손두부, 깍두기, 문어무침. 이게 전부였는데 고봉밥 한 그릇을 뚝딱 해치웠다. 서울에서 아침 반 그릇 먹기도 버거워했던 게 민망할 지경이었다.



날이 춥다며 선뜻 안방을 내준 '대구댁' 아주머니는, 알고보니 민박집 할머니와 동서지간. 하회마을은 류씨 동성마을이라, 상당수가 류씨 성을 가진 남자에게 시집와 눌러앉은 사연이 있었다. 듣고 보니,

서로 잘 아는 동네에서 숫자로 서로의 집을 호칭하는 것은, 어쩐지
몰상식적이며 또 비인간적일 것도 같다.




@ ... 걸어보니



이른 오전, 마을 어귀를 거닐다 강변의 솔숲에 들어섰다.

바람이 아직 세지 않아 그런지 솔잎 냄새가 그대로 머물러있다. 머리 속 잡스러운 것들이 사라지는 기분이다.
솔숲 바로 옆에는 마을을 뺑 둘러 벚나무 길이 펼쳐져 있다. 하얀 꽃잎이 흩날리는 벚꽃 길과 푸른 적송이 뻗어있는 숲이 이루는 대조가 시원하다.


솔숲 앞 낙동강변 모래사장에는 강 건너편으로 가는 나룻배가 기다리고 있었다.
마을을 한 번에 조망할 수 있는 부용대 오르는 길섶에는 서애 류성용 선생이 기거했다는 옥연정사가 있다. 물론 현재도 사람이 산다.

한 발짝 떨어져 마을을 바라보는 호젓한 시선이 마음을 여유롭게 한다.


마을 곳곳에 짚신이나 하회탈 인형과 같은 공예품을 파는 아기자기한 가게가 종종 있어 구경하는 재미도 쏠쏠하다.
입구 장터 주변에는 봉산탈춤 상설공연장도 설치됐다. 매주 토요일과 일요일 오후 2시에 공연이 있다. 이 시간쯤이면 마을에는 사람들이 넘쳐난다.


장터의 특산물 판매코너에는 안동마가 빠지지 않았다.
요새 파종이 한창인 마는 안동 구담과 북후 일대에서 흔히 재배된다. 특히 북후지역은 안동마(산약) 특구로 지정돼 관련 공원과 인상적인 벽화의 마 가공장을 볼 수 있다.

옛날에는 마의 맛이 기가막혀서, 백제 무왕이 적국 신라의 공주를 얻기 위해 '서동요'를 퍼뜨릴때 아이들에게 준 것이 마였단다. 다양한 가공식품을 맛볼 수 있는 지금의 우리에게도 마가 그렇게 맛있다고는 할 수 없겠지.

하지만 원기회복에 특효라는 점은 예나 지금이나 같지 않을까.



@ 안동지역 농특산물 구매 팁.

  안동의 특산물 산약(마)는 안동의 북쪽 북후면 산약특구나 하회마을 입구에서 구입할 수 있다. 하지만 구입할 양이 7kg 이상이라면 서안동 IC인근의 안동종합유통단지 내 농산물도매시장 채소코너를 추천한다. 10kg 한 박스를 소매판매점의 잘 포장된 3kg가격대인 2만~3만원 사이에 살 수 있다.

  마 뿐 아니라 안동 사과나 참외, 딸기 등의 과일도 매우 싱싱하고 저렴하다. 그 날 경매를 통해 넘어온 것을 소매단위로도 판다. 다소 큰 판매단위가 부담이라면, 다른 손님들과 함께 사서 나눠갖는 것도 방법이다. 실제로, 시장에서 서성이다보면 이런 제안을 해오는 사람이 꽤 있다.

  서안동 IC에서 예천, 하회마을 방향으로 가다보면 있다. 도로 표지판과 간판이 아주 큼지막한 것이 특징. 왠만해선 보지않고 지나치기 힘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