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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게읽기/Demian

어른스러운 친구

by 은지용 2022. 6. 19.

 

 

'나'는 동경해 마지않는 다른 세상의 아이들과 종종 어울렸다.

 

한 번은 다리 아래에서 영웅적 사과도둑 행세를 했다. 이야기를 마치고 박수를 기대했건만, 지독한 일에 휩쓸려버렸다. 프란츠 크로머가 우리집 현관에서 나를 협박하고 없는 돈을 내놓으라고 했다. 이미 신을 걸고 맹세했기에, 이제와서 아니라고 해봐야, '나'는 유죄이다. 내가 훔쳤다고 말한 사과는 선악과였다.

 

둘로 확고하게 나뉘어 있던 세상은 더 이상 분리되지 않았으며,

부모님은 더이상 나를 지켜줄 수 없게 됐다. 나는 안전하지 않았다.

 

일생일대의 죄를 짓고 들어왔는데, 아버지는 내 신발에 묻은 더러움을 야단쳤다. 그 때 나는 그런 아버지에게 우월감을 느끼고 냉소를 짓고, 이 때문에 더 죄책감에 시달린다. 결국 누구에게도 말 못하고 저금통을 헐어 프란츠 크로머에게 돈을 갖다주고, 그렇게 '일탈'은 계속되며, '나'는 그에게 예속된다.

 

'나'는 괴로움에 지랄맞은 상태에 빠지게 된다. 중2병 상태. 부모에게 차갑거나 화내고, 가만히 내버려두라하고, 부모는 도대체 뭐가 문제냐며 어르고 화내고 한숨쉬는 상황이다. '나'는 악귀가 들렸다고 판단되었다. 요즘같으면 호르몬 불균형이나, 그 나이 때 보통 겪는 그렇고 그런 현상이라고 진단될 상황. 그러나 내부적으로는 인과관계가 너무나 분명하다. 헤르만 헤세가 섬세하게 풀어가는 '나'의 마음은, 지금의 나에게는 한숨을 불러일으키지만, 내 안에 있는 과거의 나는 구구절절 머리흔들며 공감한다.

   

Cold and deeply exhausted, I had left them.

No, no! I don't want anything.

My condition at that time was a kind of madness.

To my father, who was often irritated and asked me what was matter, I was completely cold.

 

제대로 된 고해가 하고 싶었다. 그러나 내 인생 전환점이자 운명적 사건인데, 부모에게 얘기했다가 이 일 자체가 순간의 일탈로만 여겨질까봐 말을 못했다.

 

도대체 헤세는 어떻게 이런 디테일을 기억하고 있었을까. 나도 그랬던 것 같다. 그리고 사실 부모한텐 순간의 일탈맞다. (이 녀석아! 왜케 일을 크게 키우냐. 잘못은 바로 잡고 앞으로 잘해야지~) 부모가 되고 보니 더 느껴진다. 공감은 어렵다. 인정은 더 어렵다. 당시 성당에 다니고 있던 나는 고해성사 때 어떤 근원적인 질문을 했던 것 같고, 역시나 바라던 해답을 찾지 못했던 것 같다. 희미한 기억이다. 

 

내 인생 최대의 위기 한 가운데에.

데미안이 등장했다.

프란츠 크로머에 이어 등장한 데미안.

두 등장인물 모두 어른같다고 묘사한 부분이 생각나서 찾아봤다.

 

프란츠 크로머.

실제로 '나'보다 나이가 조금 많은 청소년이고, 더 나이 많은 직공들의 걸음걸이와 말투를 흉내냈다. His manners were already those of a man and he imitated the walk and speech of yong factory workers. (chapter 1, Two realms) (..공장에서 일하는 사람. 공장에서 일하는 한 사람으로서 한 번쯤 생각해보게 되는 대목이기도 하다. 모든 사람이 가치있고 소중하다던 프롤로그 이야기는 공장에서 일하는 사람에도 해당되는 이야기일까....)

 

데미안.

역시 '나'보다 나이가 많다. 그리고 흉내내는게 아니라 진짜 어른 같았다고 한다. In fact, he did not strike anyone as a boy at all. 성씨는 소개되지 않은 점이 미스테리하고. '나'도 스쳐지나간 우리집 현관문 디테일을 알아보는 심미안이 참 마음에 들었다. (chapter 2, Cain)

 

 

고등학교 시절 나도 누군가, 나보다 나이 많은 사람과 어울리고 싶었던 소망이 있었다. 여기저기 무작정 걸으면서 지금 이 시기를 지나쳐 막 어른이 된 누군가를 만나 얘기하고 싶었다. 이 엄청난 세상을 어떻게 수월하게 받아들이는지 뭐 그런게 궁금했던 것 같다. 이제 오래되어서 기억도 잘 나지 않는데, 이 책이 자꾸 나의 기억을 건드린다.

 

물론, 당시 그런 기적같은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돌이켜보면 누구를 만났다해봐야 20대인데 뭐가 그리 달랐겠나 싶고. 훗날 내가 20대가 된 이후엔 종교단체에서 말을 무수히도 걸었더랬다...

 

우리집 아이들 주변에 좋은 어른 친구가 많았으면 좋겠다.

 

정말 저 시기에, 이 시기에,

부모가 해줄 수 있는 것이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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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에 수정. 데미안은 family name이다.

막스 데미안 Max Demian이 그의 이름. 처음엔 안나오고 뒤에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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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에 덧붙임. 나의 이름은 싱클레어. Sin + Clair이다.

데미안에 의해 2챕터에서 처음 불린다. You can trust me Sinclai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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