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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게읽기/Demian

진지하고 성실함

by 은지용 2022. 6. 21.

 

헤르만 헤세는 독일 사람이다.
게르만. 독일 사람.

데미안을 보다보면, 이 작가 참, 일본이나 한국과 통하는데가 있어 보인다 싶을 때가 있다.
부모나 공동체, 어떤 집단의 압박에 질식할 것 같았던 기억을 갖고 있달까.
그 속에서 개인의 신성을 섬세하게 터치해주는 느낌이랄까.

20대 끄트머리에 북미여행을 할 때 였다.
당시 나는 10여개월간의 캐나다 생활을 정리하는 기념으로 로키산맥 2주 캠핑프로그램을 구매했다. 팀버우프란 독일계 캐나다인이 세운 회사의 프로그램였던 것 같다. 지금도 있을까.

가이드는 미국인이었고, 첫 1주간은 하이킹, 다음 1주간은 카누를 타고 로키를 여행하는 레알 캠핑 프로그램이었다. 첫번째 주간 멤버는 미국인 1, 잉글랜드계 영국인 3, 영국인 한 명과 사귀는 회계사 뉴질랜드인 1, 독일인 2, 그리고 나로 이뤄졌다. 매일 텐트를 스스로 치고 접고 해야하는, 내 힘에 부치는 일정이었다. 나중엔 카누도 들었어야 하는데, 도저히 불가. 생존을 위해 가이드나 주변인들의 도움을 엄청나게 많이 받아야만 했던, 기억에 남는 경험이었다. 쨌든.

캠핑 프로그램 가운데 말타고 하이킹하는 반나절 옵션을 넣었었는데. 이게 일행 중 나만 신청한거였다. 다들 반응이 진짜 말 안타봤어? 읭? 이런 반응. 승마, 카누 이런 건 주말에 흔히 해보는거 아녔어?!! 뭐 그랬다.

나의 첫 Horseback Riding Hiking 하루 전, 생고생 캠핑 시작한지 며칠 지난터라 멤버끼리의 친근감이 무르익던 그 날 밤 모닥불타임에, "나는 내일을 위해 그만 잘란다" 하고 일어났다. 모두들 "그래 그래 굿나잇". 편안하면서 화기애애한 분위기였다.

1~2일 뒤에 두번째 주간이 시작되면서. 독일인1, 미국인1가 가고, 독일인6, 호주인1가 합류했다. 독일사람들이 대거 참여하면서 분위기가 확 달라졌다. 합류 첫날 모닥불타임에, 엊그제와 똑같은 멘트로 "나는 내일을 위해 그만 잘란다" 하고 일어났더니, 독일인 두 세명이 정색을 하며 하는 말:

"모두 다 있는데, 혼자 어디가려고?! 다같이 마셔야지! "

와. 이거 내가 직전에 다니던 회사에서 정말 많이 듣던 말이었는데.
근 1년여간의 캐나다 생활 때 들어본 적 없어서 까먹었던 말을. 로키 산속에서 독일사람들한테 듣네 싶었다.

카누여행 중 비가 내려 모두가 힘든 때가 있었다. 너무 축축하고 추웠고, 침낭으로 들어온 빈대에 다리를 속수무책으로 내주면서도 밤에는 코골며 잠드는 시간였다. 카누에 쓰레기도 이고지고 다녀야했고, 비가오니 사진기도 꺼낼 수 없었다. 우리 말고 아무도 없는 숲 속에서 두 팔의 노동과 물살의 힘으로 다음 목적지까지 가야만 했다. 비내리는 숲 속 강물 위에서 무스와 마주쳤던 것도 그 때였다. 일행은 거들떠도 보지 않고 혼자서 묵묵하게 목까지 차오르는 강을 가로지르던, 내 앞을 지나가던 거대한 무스. 프랙탈 구조의 산 같은 그 뿔. Magnificent creature 라는 단어 그 자체.... 지금 말하고 싶은 것은 어쨌든 모두에게 힘든 시간이 있었다는 것이다.

 

길에서도 멀리 떨어져있고, 우리 외에는 자연만 존재하던 곳. 그 때 맹활약을 한게 독일인들이다. 그들은 일사분란하게 수풀을 헤쳐 장작을 찾아내고, 머물 자리를 만들었다. 씩씩한 호주인 참가자도 나서서 음식을 만들었다. 직업이 요리사라고 했다. 가이드들은 그들 도움을 받아 금방 따뜻한 불을 지피고 쉴 곳을 마련할 수 있었다. (카누를 탈 때엔 독일인 가이드가 하나 더 붙었다)

나중에 모닥불 타임에 독일인들이 나한테 호소하길, 영국인들은 모두 장작을 찾아야할 때 담요덮고 쉬고 있었다고 뒷담화를 했.... (나도 그 영국인들과 같이 있었는데, 왜 나한테...;;;;) 영국인들은 맨날 그런다며.... 젊은이들보다는 나이가 조금 더 있던 부부의 불만이 더 컸다. 뭐 그렇다고 그들이 서로 반목하고 그러진 않았다. 웃으며 어울릴 수 있었고, 그 때 함께한 영국인들은 정말이지 유쾌했다. 그냥 나를 붙잡고 한 하소연에 그쳤고, 캠핑 끝날 땐 다들 아쉬워하며 연락처를 주고 받았다. 

영국인들의 마음은 실상 '내가 돈을 냈으니 가이드한테 어느 정도는 서비스 받아야 한다'는 입장에 가까웠다. 아침으로 종종 계란 콩조림 베이컨 토마토 같은, hearty food, full English breakfast 같은 것을 제공받았으면 했고, 중간에도 텐트가 아닌 오두막에 묵을 수 있기를 바랬다. 그러면서 그걸 안해주는 가이드와 회사한테 다소 비협조적이었던 것이었다. 하이킹만 하고 돌아갔던 미국인도 입장이 비슷해서, 본사에 전화해서 컴플레인도 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아마 비가 더 오고 캠핑이 어려운 상황이 되면, 본사에서 응당 무슨 조치를 취할거라 여기지 않았었을까 추측해본다.

 

당시 영국 멤버들은 지극히 현실적이고, 유쾌하면서도, 내가 지불한 금액에 대한 권리를 찾아가는게 당연하다는 분위기었달까. 이에 비해 당시 독일 멤버들은 대체로 매사 진지하고 성실했다. 당장 우리의 생존을 위해 내가 할 일을 찾는 것이 당연했고, 어딘지모르게 철학적인 분위기도 있었다. 너무 오래전 기억이고 표본도 적긴 하다. 그러나 내 마음에 깊이 각인된 영국사람, 독일사람 특징이다. 


다시 데미안으로 돌아가서.
헤세가 독일인으로서, 자연스럽게 함께 했을 분위기.

나보다 공동체를 우선시하는 그 분위기. 세상 진지하고 성실했을 사람들에 둘러싸여있었을 그 분위기를 언급하고 싶었다.

그리고 이 핑계로 글로 정리해보지 못했던 그 때의 경험을 조금 떼어내봤다. 

사진도 찾아봤는데. 사진은 그저 아련하고 즐겁기만 하다.

 

저 안에 무슨 음식을 해먹었는지 기억나지 않는다. 카누 시작한 후의 식사였을 것이다. 호주 쉐프가 나서서 가이드와 음식을 했고, 이 날 저녁 독일 청년들이 '혼자 어디가려고, 다 같이 마셔야지'했던 기억은 남아있다. 재미있는 기억이다.

 

카누여행 막바지. 유쾌한 영국인 아저씨 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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