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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게읽기/Demian

왜 여기보다 저기가 가치있어 보일까

by 은지용 2022. 6. 13.



나는 지금도 종종 의심한다.
여기는 내가 있을 곳이 아닐지도 모른다하고.
이쪽보단 저쪽이 더 가치있고, 만족스럽지 않을까 생각한다. 이쪽이 무엇이든간에 말이다.

어렸을 땐 훨씬 더 했다. 내 가족보다 다른 가족이 좋아보였다. 다른 집 부모는 자상하고, 형제 자매는 이야기가 잘 통하는데, 나는 그렇지 못한 것처럼 느껴졌다. 친구들은 심적으로 물적으로 가진 것이 많아 보였는데, 나는 그렇지 못한 것으로 단정했다. 지금은 현재 내가 하는 일 외에 다른 일을 동경하기도 한다. 마흔이 넘도록 직업에 대해 반복적으로 고민한다. 부끄럽지만. 고민만 한다.

왜 여기보다 저기가 내가 있을 곳 같을까.
왜 항상 진실은 저 너머에 있을 것만 같을까.
왜 파랑새는 지금 나한테 있지 않고 저기에 있을 것 같을까.
왜 '나'는 부모님이 금지하는 일들이 훨씬 가치있다고 단정했을까.

 

첫번째 챕터에서 주인공 '나'는 집 안에 있는 두 가지 세계에 대해 얘기한다.

 

하나는 신실하며 경건하고 바르고 따스하고 질서 있는 '어머니와 아버지의 세계'이다. 주인공 '나'는 좀 있는 집 자식이다. 아주 대단하진 않지만, 일반 공립학교가 아닌 학비가 좀더 비싼 학교에 다니는 것 같다. 그런 부모가 가림막이 되어주고 빛이 되어주는 세상이다.


또 다른 세상은 하녀와 시장과 거리의 세계로, 무질서하고 폭력적이지만 너무나 매력적인 영웅과 방황의 장소이다. 질서의 세계와 대비되지만, 두 개의 영역은 서로 맞닿아 하나의 집 안에서도 공존한다. 하녀 리나는 부모와 함께 기도할 때와 부엌에서 일하면서 상인과 거래할 때 완전히 다르다. 거칠다. 말투도 다르다.


괜찮았다. 두 영역은 서로를 침범하지 않았고, '나'는 한 걸음이면 그 매력적이고도 무질서한 세상에서 엄마 품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추운 겨울 뜨끈한 아랫목에 이불 뒤집어 쓰고 귤 까먹을 수 있는 장소와 시간이 있다면, 창문 활짝 열고 코끝 찬바람 걸친채 마당의 매서운 추위를 감상할 수 있는 것 처럼?! '나'는 질서의 세계에 소속된 채 무질서의 영역을 가끔 탐험하며 비교적 편안한 유년시절을 보냈다.

 

그러다 열한살쯤 두 세계의 경계가 허물어지는 사건이 발생한다.

프란츠 크로머. 다른 세상에 속한 그가 '나'의 집 현관에 발을 들이면서부터다. 그가 '나'를 '삥 뜯기 시작하면서' 달라졌다. '나'는 왜 그와 어울렸을까. '나'는 어쩌다가 그의 마음에 들기 위해 영웅 같은 도둑 흉내를 냈을까. '나'는 어쩌다 거짓말을 하고 신을 팔고, 저금통에 손을 댔을까. 왜 '나'는 부모 반대편의 세상을 겁없이 소환했을까.

왜 날 비참하고 불편하게 할 그 세상이 그토록 매력적으로 보였을까.

 

이 부분이 발목을 잡았다.

그냥 반대편이 본래 매력적인거니까, 남의 떡이 커보이기 마련이니까, 애들은 본래 그러니까 하고 넘어가기에 뭔가 마음에 걸리는 것이 있었다. 나는 이런 길에 이르렀다 : 아마 내가 속한 곳이 내가 이뤄낸 세상이 아니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현재의 질서는 내가 만들어낸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나는 나의 세상에 있지 않다고 느꼈기 때문일 것이다. 아직 나는 내 고유의 공간을 완성하지 못했는데, 나를 보호해주는 세상 마저 실망하여 적대적이 될까봐, '나'는 차마 엄마에게 말하지 못했을 것이다. 아마 그럴 것이다. 나라도.

서술자인 '나'의 이름은 아직 나오지 않는다.

이것은 나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작가가 바라는 바도 그것일 것이다.

각자의 이야기로 읽히기 바랬을 것 같다.

읽다보면 '나'가 내가 되어 있다.

 

내가 아직도 저편을 더 매력적으로 여기고, 여기말고 다른 곳을 찾는다면. 여기에 속한 것 같지 않다고 느끼고 있다면.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기가 나에게서 돌아서면 절대 위험하다고 느낀다면. 곰곰히 생각해볼 일이다. 왜 그럴까.

 

나는 아직도 나 자신으로 크지 못한 것은 아닐까.

 

부모가 지은 신전에서 자라나, 자라면서 균열이 생기고 전쟁도 벌어져 폐허가 됐지만. 혹시 다시 그 폐허 속에 들어가 나 자신을 연명하고 있는 것은 아닐지. 폐허는 아닐지라도 낡은 건물에서 나도 내 아이를 키우고 있는 것은 아닌지. 부모가, 과거가, 나의 시원이 지어준 신전과, 아니 그 땅과 어우러지는 나만의 집을 어떻게 지어볼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그 길에 이를 수 있을까.

책의 맨 첫 부분에 쓰인 글이 다시 보인다;

 

 

내 속에서 솟아 나오려는 것,
바로 그것을 나는 살아 보려고 했다.
그러기가 왜 그토록 어려웠을까?

 


I wanted only to try to live in accord with
the promptings which came from my true self.
Why was that so very difficul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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