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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게읽기/Demian

Jung. Frau Eva

by 은지용 2022. 7. 17.


데미안을 보다보면 내가 엄청난 존재로 느껴진다.
헷세가 인간에 대해 갖고 있는
따뜻한 시선이 느껴진다.

프롤로그에서 "한 사람 한 사람은 그저 그 자신일 뿐 아니라 일회적이고, 아주 특별하고, 어떤 경우에도 중요하며, 주목할 만한 존재이다. 세계의 여러 현상이 그곳에서 오직 한 번 서로 교차되며, 다시 반복되는 일이 없는 하나의 점이다. 한 사람 한 사람의 이야기가 중요하고, 영원하고, 신성하다"고 언급했다.

그 때도 생각했다. 정말?
모든 사람이 그렇게 귀한가?
지하철에서 만나는 이름 모르는 피곤에 찌든 그 얼굴들도? 마냥 화가 나있는듯한 그 얼굴도? 먹방이나 예능방송보며 혼자 키득키득하는 저 사람도?

(이것에 대해선 모두가 인간이 되라고 자연이 던진 돌이지만, 파충류에 멈추거나 상하반신이 다른 괴상한 생물이 되기도 한다고 덧붙였다. 그러니까 인간의 형상을 하고 두발로 걷는다하여 모두 인간은 아니다.

그가 생각하는 인간은 self자기자신을 알고자 부단히 노력하는, 인식의 불씨가 점화된 생명을 말할 것이다.

그렇다면 피곤에 찌든 얼굴을 하고 있어도, 때때로 유투브보면서 혼자 키득키득 시간 죽이고 있어도. 진정한 나를 찾고자 부단히 노력하는 사람이라면, 깨어있고자 하는 사람이라면, 영원하고 신성한 존재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아마도... 그것도 때때로?)

'나', 싱클레어는 혼자 떨어져 진학학 기숙 중고등학교에서 악의 대장인양 행동하다가, 베아트리체를 손이 닿지 않는 길잡이별 삼아 자신을 가다듬는다. 남의 시선 아랑곳하지 않고. 그러다 베아트리체도 시들해지고, 어쩔줄몰라하며 그냥 걷는다.

여기저기 걷다가 우.연.히 .어느 교회에서 오르간 연주를 듣는다. 그렇게 피스토리우스를 만났다. 베아트리체가 하늘의 별이라면 피스토리우스는 내 옆의 모닥불, 횃불같은 존재가 되어준다.

Just then I found a strange refuge
- "by chance," as they say -
though I believe there is no such thing.
If you need something desperately and find it,
this is not an accident;
your own craving and compulsion leads you to it. (p.84 Harper)

나의 필요와 충동이 그것으로 이끈 것이라고. 나의 능력이 이렇게 대단했나?

그렇다고 믿어보기로 한다.
데미안을 절반 이상 읽어오며 난 이미 헷세의, 싱클레어의 말에 공감하고 있다. 내가 지금 데미안을 읽고 있는 것도 우연은 아닐 것이다.

이렇게 묻혀있는 무엇을 파내는 느낌이 드는 것도,
닿을듯 말듯, 알 듯 모를 듯, 잡을 수 있을 것 같고, 완전히 이해된 것 같은데 뒤돌아서면 손에 아무것도 없고, 여전히 아무것도 모르겠기도 한, 그 무엇인가에 다가가고는 있는 것 같은 느낌. 책을 읽는 내내 안개와 구름속을 헤매이며 무릎을 치고, 갸우뚱하고, 옛날의 유치한 기억이 떠올라 손발 오그라들기도 한다. 그런데 그게 나의 에너지가 되는 것도 같다.

나의 에너지를 깨우는 기도이자 주문같은 책을 대하고 있는, 지금 이 순간도 우연이라기보다 인연인 것이다. 아마도.


---

나중에 보니 칼 구스타프 융의 이야기가 데미안의 기저에 깔려 있다. 데미안은 융의 교재가 아닌가 싶었다.

데미안을 함께 읽는 북클럽에서 공유해준 융에 대한 자료를 보면; 융은 프로이트처럼 의식과 무의식에 대해 말하지만, 오이디푸스 컴플렉스로 모든 것을 설명하는데 동의할 수 없었다.

V-club 동영상 화면 캡쳐. 융을 알면 데미안이 더 잘 보인다.


그는 의식에 있는 나의 사회적 역할/가면/페르소나. 엄마 페르소나, 자식 페르소나, 거래처를 대할 때, 같은 회사 사람들을 대할 때, 다 다른 페르소나를 쓴다고 한다. 그것은 사회생활을 하는 인간에게 반드시 필요한 것. 단 페르소나가 다가 아니라 그보다 깊숙한 곳에 아주 중요한 것이 있다고 말한다. 그러니까 페르소나에 목숨걸지 말고 그 이면에 빛을 비춰봐야 한다는 것.

무의식 층층 그 깊은 곳 아래에는 자기자신 self가 있다. self에 이르기까지 내가 절대 허용하고 싶지 않은 모습의 '그림자shadow'가 있고, 나와 닮은 듯 다른, 성별 등 모든 면에서 대칭점에 떨어져있는, 나의 '아니마/아니무스'가 있다. 무의식에 빛을 비춰 그것을 바라보는 것 만으로도 괜찮다고 한다.

존재를 인정하는 것 만으로도 self에 이르는 길을 가는 것이라고 한다. 내가 나의 그림자를 지나치게 무시하면 무의식은 자신을 봐달라고 이런 저런 일들을 일으키기도 한다고. (이게 집단 무의식을 통해 일으킨다는 것인지, 좀 신비로운 느낌이 들어서 확실히 손에 잡히지가 않는다, 융은 과학자/의사인줄 알았더니 종교인/철학가에 가까운 사람같다, 어쩌면 융을 교주로하는 종교도 있지않을까 싶다)

고대부터 원형의 형태로 통합된 궁극의 존재.
(태극기 한 가운데 있는 음양의 모습처럼)
내가 그 상태에 이르면 진짜 나 자신을 찾는 것.
종교적으로는 깨달음의 상태,
또는 그리스도와의 합일 상태,
모든 것을 수용할 수 있는 상태,
내 안의 신성이 발현된 상태.
이렇게 이해했다.

v-club에서 공유해준 융 동영상 (별 다섯개)
1. 김필영 5분뚝딱철학
2. 카모마일클리닉 '칼 융 분석심리학 -BTS도 영향받은 집단무의식과 원형, 콤플렉스의 개념'
3. 김윤주 한양사이버대 교수 강의 "자기실현 개념에서 본 성숙한 인간상" (무려 한 시간반) ---

이야기의 뒷부분에. 에바부인 챕터를 비롯하여 우주로 날아가버린 마지막 두 챕터에서 나는 엄청 당황했다.

다시 앞으로 돌아와 곰곰히 생각해보면.

도무지 현실의 인간이라기 보기 어려운 데미안의 엄마, 에바는 내 안의 성스러움, 에너지넘침, (고대) 신격을 지칭하는 것 같았다. 큰 키, 남자인것도 같고 여자인것도 같고, 나이를 알수 없고 등 에바부인은 실제로 여신같은 외모로 묘사되어 있다.

싱클레어는 데미안을 브릿지 삼아 에바에 도달했다. 아니마를 알아보고, 함께 하는 충만함을 느낀다.

Eva는 영어의 Eve이고,
Eve는 히브리어 life, living one에서 유래됐으며,
full of life, mother of life를 뜻하기도 한단다.

"I have a few friends," she said with a smile,
"a few very close freinds who call me Frau Eva. You shall be one of them if you wish." (p.124)

에바가 싱클레어에게 나를 에바부인이라고 불러도 됩니다 하는 얘기였는데. 책을 덮고, 끄적여보는 와중에, 유럽 제일 높은 알프스 산봉우리 이름 Jungfrau가 떠올랐다.

찾아보니 frau는 여자앞에 붙이는 칭호. 융프라우는 말하자면 젊은 처녀를 뜻한다고 한다. 항상 눈과 구름에 덮여있어서 그 모습을 잘 보여주지 않아서 붙여진 이름이라던데. 헷세는 실제로 융 상담을 받았다던데. 융프라우. 프라우 에바. 지나친 연결일까? 싱클레어가 여자였다면 아담같은 산신령을 만났을까? 머리에 묻은 빗물에서 눈물맛이 나고, 입이나 이마에서 별을 쏘는?

아니지 데미안은 family name였지. 에바가 엄마니까, 에바가 있어서 데미안이 있는 것이다. 에바는 남성적이면서 여성적인 통합된 존재이고. 싱클레어가 여자였어도 남성을 포함하고 있는 엄마를 만났을 것 같다.

확실한건, 융을 알면
데미안이 더 잘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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