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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기일기

Crying in H Mart

by 은지용 2022. 12. 11.

H마트에서 울다.
미셸 자우너. 정혜윤 옮김. 문학동네.
Michelle Zauner. Vintage.

"Are you Chinese?"
"No."
"Are you Japanese?"
I shook my head.
"Well, what are you then?"
(p.95/ Vintage)

나는 그 아이에게 아시아 대륙에는 두 나라만 있는 게 아니라고 알려주고 싶었다. 하지만 너무 당황한 나머지 아무 대답도 못했다.

내 얼굴에, 원래 살던 곳에서 추방된 존재로 읽어내게 하는 무언가가 있었던 것이다. 마치 내가 무슨 외계인이나 이국적인 과일이라도 되는 것처럼. "그럼 넌 뭐야?"는 열두살인 내가 가장 듣고 싶지 않은 말이었다. 왜냐하면 그 말은 내가 눈에 띄는 사람이고, 존재를 식별할 수 없는 사람이고, 집단에 속하지 않는 사람임을 기정사실화하기 때문이었다. (p.164)

 

I wanted to inform her there were more than two countries that made up the Asian continent but I was too confounded to answer. There was something in my face that other people deciphered as a thing displaced from its origin, like I was some kind of alien or exotic fruit.
(p.95/Vintage)

 



미셸 자우너의 <H마트에서 울다>는 그녀가 25살 때 암으로 돌아가신 엄마에 대한 회고록 형식의 책이다.

 

아테나의 부엉이에서 원서읽기 일일 워크샵으로 진행해서 지난주 내내 부리나케 읽은 책. 영문으로만 읽는데 속도가 나지 않아서 번역본으로 읽고, 인상적인 부분은 원서에서 찾았다. 알고보니 이 책의 첫 챕터 제목도 crying in H mart인데 그것만 읽어가는 것이었다..야튼. 아테나의 부엉이는 번역가 이다희님이 진행하는 외국어책 토론 공간이다.

엄마와 딸 이야기는 취향이 아니다. 나는 엄마가 내 반쪽이라는 작가의 의견에 동의하지 않을 뿐더러. 딸이 쓰는 엄마 회고록은 신파의 불순한 의도를 지녔으며 뻔하다고 생각했기에, 정말 아테나의 부엉이가 아니었으면 난 아마 소개글만 보고 목록에서 뺐을 것이다. 읽어보니 웬걸, 꽤 괜찮았다.

어디에도 속하지 못한 변방의 이야기였달까.

 

엄마와 딸 관계를 애써 외면하면 이쪽일까 저쪽일까, 이리갈까 저리갈까 고민한 기록이 보인다.
아시아인으로서 미국에서 살아가는 이야기.
미국인으로서 한국 이모집에 오면 겪었던 이야기.
한국인도 아니고 미국인도 아니면서 동시에 한국인과 미국인인, 어정쩡한 경계에 끼인 채 방황하는 에피소드 같았다.

H마트도 대체로 도시 외곽에 위치한다. 우리나라로 치면 경기도 화성시 발안 정도?

엄마가 죽은 이후 H마트만 가면 운다고 작가는 이야기를 시작했다.

엄마가 해주던 음식이 그리워서, 작가에게 한국음식에 대해 알려줄 가족이 없는데 과연 자기가한국계인가 싶어서. 등등.

그녀의 엄마는,

한국인처럼 생기지 않은 아이에게 전형적인 한국음식을 먹여 키웠다. 작가는 적당히 익은 신김치에 바삭하게 구운 삼겹살, 뜨거운 뚝배기 김치찌게를 좋아한다. 찜질방에서 때도 밀고, 한국에 오면 자장면을 배달시켜서 먹었다. 노량진 수산시장에서 산낙지도 먹어봤더라.

그녀의 엄마는,
아이코트에 생긴 보풀을 뜯어내며 잔소리를 하고
외모에 특별히 관심이 많고 (많은 한국인처럼)
유행에 민감하고 (많은 한국인처럼)
아이가 나무에서 떨어지면, 달려와 안심시키기보다,
'엄마가 나무에 올라가지 말라고 했어 안했어!'하며 역정을 낸다 (많은 한국인처럼).
그리고 보통의 많은 부모처럼 아이가 음악을 하는 것을 매우 탐탁치 않아했다, 가난하게 살까봐.

그녀의 엄마는,
그녀가 열심히 일하던 식당에서 해고됐을 때 위로보단 '접시 나르는 일은 누구나 할 수 있는거잖아'라고 했고.
집 안에 인문고전을 갖춰놓거나 박물관 견학을 시켜주기 보다, 그 돈으로 순대, 생선 내장, 캐비어 등 세상 최고의 산해진미를 맛보게 했다.

My childhood was rich with flavor-blood sausage, fish intestines, caviar.
They loved good food, to make it, to seek it, to share it, and I was an honorary guest at their table. (p.23/Vintage)

그녀의 엄마는,

2014년 암으로 자택에서 사망한다.

 

그녀는,
엄마를 상실하고 한국음식을 요리하기 시작한다. 그렇게 자신이 발 디디디고 설 기원 Origin을 회복하며, 스스로를 구원한다.

 

책은,

2021년 미국 베스트셀러중 하나가 됐다. 이 책이 한국인으로서의 정체성에 관한 것만 이야기했다면 이렇게까지 히트를 치진 못했을 것이다. 미국 베스트셀러를 한인2세들만의 호응으로 만들 순 없을테니까.

엄마와 딸의 이야기가 그 정도로 강력한 보편정서 였을까. 호밀밭의 파수꾼이나 데미안 같은 처절한 10대와 그 이후의 나에 대한 이야기가 인기의 원동력이었을까. 다른 기원origin을 갖고 있는 수많은 영미권 사람들이 공감해줬기 때문이었을까.

그 모두일테지만, origin과 관련된 마지막 이유가 제일 마음에 든다.

 

나만 이런게 아니구나 머 그런 깨달음.
나의 불편함이 이것이었구나 싶은 깨달음.

그들이 겪는 정체성의 경계와 모호함은 한국인이 한국 안에서 겪는 고민과는 또 달라 보였다. 어렸을 때, 저렇게 훌륭한 문학작품/노래/영화/그림이 있는데 내가 뭘 더 할 수 있을까-좌절했던 적이 있다. ㅎ 10대의 고민일 뿐 지금은 더 하지 않지만, 그녀는 좀 달랐다.


처음 든 생각은 내가 저렇게 할 수 있을까였고, 두번째로 든 생각은 이런 걸 하는 아시아 여자가 이미 있으니 내가 설 자리는 이제 없겠다는 것이었다…중략…같은처지의 백인 남자는 어떨지 유추해볼 능력도 없었다.

그 남자가 이를테면 스투지스의 라이브 공연 DVD를 보면서, 이미 이기 팝이 있는데 음악계에 또다른 백인 남자가 설 자리가 있을까 하고 생각하진 않았을 텐데 말이다. (p.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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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게 이 책이 좋았던 또 다른 이유는,

너무나 익숙한 한국문화를 다른 시선으로 바라보게 해준다는 점이다.

미역국은 한국에서 산모들에게 권장하는 영양소가 풍부한 해초수프인데, 한국에서는 생일날 자신을 낳아준 어머니를 생각하며 이걸 먹는 전통이 있다던가, 뻥튀기가 스티로폼 원반처럼 생긴 음식이라던가, 태반 화장품의 태반은 누구의 태반이란건지 모르겠다는 등. 내가 미처 생각하지 못한 시선으로 '낯선 곳에서 나를 바라보듯' 이야기를 풀어간다.

한국 문화 가운데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음식이다.

 

사실 중국이나 일본의 문화와 뚜렷하게 구분되는 것을 찾기가 쉽진 않다. 지붕 처마 선의 차이, 말하는 어법의 차이, 이런 것들은 좀 외부의 시선으로 볼 때 너무 미묘하달까. 어쨌든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모두 유교의 영향을 받았고, 한자를 쓴다. 스타일의 차이도 존재하지만 그것은 시대에 따라 극복되기도 하니까 차이로 내세우기 빈약해보인다. 그 와중에 도무지 구분안할래야 안할 수 없는게 입맛과 음식이다.

 

그 음식에 대해 충분히 이야기하고 있는 요 책은, 언젠가 어느 미국인이 물었던, 일본에 관한 <국화와 칼>처럼 한국에 대해 말해주는 책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대한 하나의 답이 될지도 모르겠다. 또 '나를 인류학'해보고 싶다고 열망했던 나에게, 이렇게 쓰면 되겠다 싶은 하나의 사례가 될 것도 같다.

서로에게 상처를 입히고 으르렁대던 10대의 시간이 진정된 이후 어느 날, 그녀의 엄마 정미가 얘기한다. 너 같은 사람은 처음이라고. 그들은 서로를 낯선 시선으로 바라보면서 이미 프라이빗한 인류학의 새로운 모델을 실천하고 있었던 걸까.

"Isn't it nice how we actually enjoy talking to each other now?" I said to her once on a trip home from college, after the bulk of the damage done in my teenage years had been allayed.
"It is," she said. "
You know what I realized?
I've just never met someone like you."
(p.168/vintage)

 

너 같은 사람은 여태 한 번도 만나본 적이 없다.

내가 무슨 다른 도시에서 온 이방인이거나, 저녁식사에 초대한 친구가 데리고 나타난 특이한 손님이라도 되는 것 처럼 들렸다. 나를 낳아 키우고 나와 18년을 한집에서 살았던, 내 반쪽인 여자의 입에서 나오는 말이라기엔 너무 이상하게 들렸다.(p.285)

 

도무지 이해가 안되는 구석이 있는 우리집 아이들도 '너 같은 사람은 처음이다'란 마음으로 바라보면 마음이 갑자기 편안해진다.

 

지금 휴일 반나절 이 글 쓰고 있다고 나에게 죄책감을 은근히 강요하는 남편이나, 아침에 이도 안닦고 도서관으로 나온 초등 아들딸의 모습. 가족들의 말도 안되는, 세상에나, 싶은 면면들도 어느 정도 내려놓고 피식-할 수 있는 여유가 생긴다. 그래, 너 같은 사람은, 너희 같은 사람들 정말 처음이야.

 

조금은 연구하는 마음으로, 조금 내려놓고, 애정은 유지하고,

가족을 다시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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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외 기억하고 싶은 구절...

나는 가장 고상해보이는, 가장자리에 아이비 문양을 돋을새김한 청동 묘비를 골랐다. 우리는 그 위에 엄마의 이름, 생년월일, 사망일 그리고 '사랑스러운 엄마이자 아내이자 단짝'이라는 문구를 새겨달라고 했다...(중략)... 자애로운loving 엄마는 남에게 아낌없이 베푸는 사람이지만 사랑스러운lovely 엄마는 온전히 자신만의 매력을 지닌 사람이니까. (p.2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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