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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기일기

직업의 팔할은 우연

by 은지용 2022. 4. 17.


뭐가 되고 싶냐는 어른들의 질문에 대답하는 법.
직업에 관한 책이다. 믿고 보는 알랭드보통.

직업에 대한 실질적이고도 근원적이면서 명쾌하고 친절한 이야기이다. 도저히 쓰지 않을 수 없었다.


처음 접근은 초4가 된 아이를 염두하고 구매 했는데, 와 이거, 나 혼자 보고 또 보고 있다.

책은 ‘왜’라는 질문이 얼마나 중요한지 이야기한다. 나의 직업을 찾는데 꼭 필요한 질문이며 익숙해져야 하는 근원적이고 불편한 명제가 바로 그것이다.

직업은 무엇일까?
돈받고 하는 일이다.
그렇다면 왜 누군가는 나에게 대가를 지불하고 그 일을 시킬까?
누군가가 스스로 해결하지 못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세탁소는 우리가 빼기 힘든 얼룩을 특수 약품과 기계를 써서 빼준다. 억대 연봉 프로그래머가 치매에 걸린 노모를 돌봐줄 요양사를 고용하는 것은 프로그래머가 그 돌봄일을 못하기 때문이다. 뭐 엄밀히말해 노모를 돌보는 것이 다른 가족 부양이나 성취감 면에서 덜 효율적이라고 판단하기 때문일 것이다. 우리 모두는 서로의 빨래를 대신 해주고 있다나 뭐래나.

과거에는 직업을 굳이 선택한다는 개념이 없었다. '나' 라는 소중한 존재가 대두된 것도 인류역사상 그리 오래되진 않았다. 천직, 소명, 신의 시대를 거쳐 지금은 분업, 선택, 즐거움과 느낌의 시대 아닌가.

이러한 인문학적 통찰 뒤에 책은 직업이 새로 생겨나기도 하고 없어지기도 하는 점을 명시한다. 실제로 증권거래사, 반려견의 발톱 등을 관리해주는 직업, 마피아 게임 진행자가 생겨나는가 하면, 필름 현상직이나 윤전기 기사는 거의 사라졌다. 그리고

새로운 직업을 발명하는 사람을 작가는 이렇게 부른다 ; 사업가.

‘사람들의 해결되지 않은 문제를 궤뚫어 보고, 해결방법을 개발해, 그 방법을 사람들에게 확실히 알리는 사람’이 곧 사업가란 것이다. 이 서술이 나에겐 매우 색다르게 느껴졌다. 사업가는 돈벌이에 혈안이 된 것 같은 부루주아 이미지가 내 속에 심어져 있던 것일까. 해결방법을 다른이들에게 확실하게 알리는 일을 한다라…사업가에 대한 이미지가 확 달라지고 명쾌해지는 기분이었다. 내가 저 아이디어에 착안해 사업가에 대해 설명했다면 아마도 아래처럼 애매하게 얘기했을 것 같다. ‘사람들의 문제를 알아보고, 해결방법을 찾아, 실행에 옮기는 사람이 사업가’라고.

이 책에서의 설명은 이토록 나의 머릿속보다 구체적이고 근원적이면서도 명쾌하고 친절하다.

책에서 명쾌하게 짚어주는 또 다른 사실 하나는 대부분의 어른들도 계획된 인생을 살고 있지 않다는 것이다. 어렸을 때 장래희망으로 꼽혔던 축구선수, 대통령, 법관, 발레리나, 가수가 흔한 직업은 아니다. 왜 계획과 다를까? 실제 인생은 우연과 현재의 연속이기 때문이다. 어른이 되면서 시작한 어떤 일을하다보니 그게 연결고리가 되어 지금의 일과 자리에 있게된 경우가 대부분이다. 우연히 말이다. 나나 내 주변도 그렇다.

마흔이 훌쩍 넘은 지금도
직업에 대한 고민은 계속된다.
뭐하고 먹고 살 것 인가에 대한 고민 말이다.
뭐하고 먹고 사는 것이 좋은 것일까.

책은 역시 내가 좋아하는 것을 찾고 거기부터 출발해야 한다고 한다.

그리고 나는 ‘왜’ 그것을 좋아하는지 질문하고 답을 찾아야 한다고 일관되게 얘기한다. 다른 사람에 맞춰 직업을 선택하면 나중에 분명 후회하게 되니까.

직업선택의 팔할이 우연이라면 나머지 이할은 재미. 나의 쾌락중추에 진지해져야 좋은 선택이 가능하다.



P.148—— 그렇다면, 이 책을 읽는 내내 맴도는 문제로 다시 돌아가게 되는군요. 바로 ‘도대체 내가 좋아하는 것은 무엇일까?’하는 문제 말이에요. 사실, 그 답을 제대로 말할 수 있는 사람은 별로 없어요.

자신이 무엇을 재미있다고 느끼는지 자세하게 설명하는 것은 아주 어려워요. 영화를 엄청 재미있게 봤는데 왜 재미있냐는 질문을 받아본 적이 있다면 어떤 느낌인지 알 거예요. 사람은 보통 재미난 이유를 이해하는 것보다 재미를 느끼는 데 더 익숙하거든요.

한 걸음 물러서서 즐거운 감정이 어떻게 생겼는지 확실히 알아채는 데는 시간이 걸리지요.하지만 시간이 좀 걸려도 그런 감정을 파악할 수만 있다면 다음 단계로 나아갈 수 있어요. 사실 자신이 무엇을 좋아하는지 이해하려고 애쓰는 것 말고는 달리 선택지가 없어요.

우리는 재미에 관해 진지해질 필요가 있어요.


책은 여러가지 즐거움을 제시한다. 주목받는 즐거움, 이해하는 즐거움, 기술의 즐거움, 질서의 즐거움, 가르치는 즐거움, 돈벌이의 즐거움, 아름다움의 즐거움, 자연의 즐거움, 창작의 즐거움, 독립의 즐거움, 남을 돕는 즐거움 등. 각각의 즐거움에 대해 구체적으로 적어두고, 나에게 해당되는 것이 얼마나 되는지 표시해볼 수 있는 활동지가 책 속에 있다.

색연필을 가지런하게 두는 것을 좋아하는 등 질서의 즐거움이 큰 사람이라면, 마트 진열대를 효율적으로 정리하는 직업이나 철도 물류 엔지니어 일에서도 재미와 성취를 찾을 확률이 높을 것이다.

책의 뒷부분에 나오는 대인관계 능력과, 선생님과 학교에 대한 이야기도 매우 흥미로웠다. 직장생활에서 꼭 필요한 능력과 선생님의 능력에 대해 색다른 관점을 제시한다. 익숙한데 말을 잘한걸까. 이런 맛에 사람들이 자기개발서적을 찾는 걸까. 어찌보면 뻔한 것 같은 이야기이지만, 아주 잘 엮어서, 신선하게 제시해준다. 이 이야기가 필요한 사람에게는 더 피부에 와닿는다.

P.176——직장에서는 대인 관계 능력이 꼭 필요해요. 다른 사람의 요구를 신경질적으로 받아들이지 않고, 고객과 동료를 즐겁게 대하고, 싫어하는 사람에게도 적당히 친절하게 대할 줄 알고, 주변 사람들이 무슨 걱정을 하는지 기분 상하지 않도록 조심스레 파악하고, 자신이 잘못한 것을 솔직하게 인정할 줄 알아야 직장에서 살아남을 수 있어요. ((지금의 남편에게 꼭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

P.177——
잘 가르치기 위해서는 좋은 선생님이 가진 다양한 기술을 활용할 줄 알아야 해요. 친절과 권위, 매력과 공손함, 상대방의 관점을 이해하지 못한 사람에게도 공감하는 능력과 가끔 농담을 버무려 부드럽게 구슬리는 능력 말이에요.

역설적이지만, 가르치는 기술이야말로 학교에서 가장 잘 알려줄 수 있는 기술인데 아무도 알려 주지 않아요. 대신 우리에게 엉뚱한 걸 시키죠. 가장 좋아하는 선생님을 한 명 골라 연구하고 똑같이 따라 하라고요! 그렇다고 학교에서 가르쳐 주는 것들이 전부 터무니없으니 무시해도 된다는 뜻은 아니에요.

새로운 생각과 기술, 근면, 노력과 인내, 어른에 대한 존중, 주위를 정돈하고 시간을 지키는 능력 같은 것들은 학창 시절에만 배울 수 있는 중요한 덕목이에요. ((아이가 학교에서 배우고 익혀야 하는 것이 이것이구나!!))


직업에 대해서만 3번 이상 여기에 긴 글을 쓴 듯 싶다.

돌이켜보면, 십대 땐 막연하게 그림과 음악이 좋았고, 이십대 땐 먹을거리에 대한 사회 얼개가 궁금해 접근한 직업에 번아웃되고 방황과 여행으로 힐링하다가, 삼십대 땐 육아에 파묻혀지내며 책을 가까이하게 되었고, 사십대 되어선 이 직업으로 계속 먹고 살 수 있을까 다시 진지하게 생각해보게 된 것 같다.

아름다움의 즐거움, 이해하는 즐거움, 자연의 즐거움, 독립의 즐거움, 돈벌이의 즐거움…. 이 정도가 나에게 에너지를 주는 원천이 될까.

고민은 계속되지만.
뭔가 한 걸음 전진한 기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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