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읽기일기

1984

by 은지용 2021. 6. 1.

천천히 한달여에 걸쳐 읽었다.

다 읽고 나니 호메로스의 오디세이가 생각난다.

오디세이가 집으로 돌아가는 긴 여정을 그렸다면

1984는 인간 정신이 완전히 몰락하는 여정을 그린 느낌이랄까.

 

책 속 세상에서는 당의 지시로 '홈트'를 하다가

프로그램 운영자가 나를 지적하기도 한다. 더 힘차게 하라고. 

곳곳에 설치된 텔레스크린을 통해 나의 표정, 행동, 잠꼬대 마저 누군가의 감시를 받는다.

단어의 갯수는 점점 줄고 있고,

역사적 사실이 자꾸 바뀌며,

사람들은 바뀐 사실조차 금방 잊는 '이중사고'를 한다.

어찌된 일인지 여러모로 물자는 부족하고,

지구상에는 3개의 초국가만이 유지되고 있다.

다른 국가의 사람은 절대 만날 수 없다, 내가 중간계급인 외부당원인 이상.

 

병약한 중간계급 외부당원 윈스턴, 에너지 넘치는 줄리아 (외부당원), 어딘지 모르게 신뢰를 주는 듯한 오브라이언이 (내부당원) 주요 등장인물이다. 이들 사회의 최고 지도자는 빅브라더이고, 공동의 적은 체제전복을 꾀한 것으로 알려졌으나 현재는 죽었는지 살았는지 모르는 상태의 골드스타인이다.

 

이 서사시 같은 여정은

어디에나 붙어서 나를 지켜보는 빅브라더 포스터에서 시작해서,

숨어서 일기를 쓰는 행위,

모두가 한 자리에서 한 대상을 죽도록 미워하며 광란하는 '2분 증오',

기관총 세례를 받기 전 아무 소용없는 줄 알면서도 아이를 감싸 안는 엄마의 행동,

사색, 산책 혹은 방황,

채링턴씨의 고물상,

숲 낭떠러지변 아무도 보지 않는 곳에 핀 부처꽃,

숲속에서 노래하는 개똥지빠귀,

반란과 일탈을 꿈꾸며 우리끼리 분기탱천하는 시간,

낡은 방 안에서 책을 읽다 지는 해를 바라보는 감성과 자기 만족 그리고 유대감,

체포, 감방, 고문, 101호실을 거쳐

빅브라더 포스터 앞에서

끝난다.

 

기술을 등에 업은 권력은 우리 생각보다 무시무시할 수 있다.

 

 

-----

 

2023년 11월 3일 덧붙임.

블로그 1984 관련 글.

 

https://thefinger.tistory.com/category/%EA%B8%B8%EA%B2%8C%EC%9D%BD%EA%B8%B0/1984

 

'읽기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직업의 팔할은 우연  (1) 2022.04.17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  (0) 2021.07.03
멋진 신세계  (1) 2021.04.29
검사내전  (0) 2020.06.11
그건 네 잘못이 아니야 왜냐면  (0) 2019.01.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