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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기일기

멋진 신세계

by 은지용 2021. 4. 29.

Brave New World.

 

올더스 헉슬리 <멋진 신세계>를 봤다. 역시나 혼자의 힘이 아닌 여럿이 함께 하는 동네책방모임을 통해 완주했다.

다 읽은지 몇 주가 지났다. 아직 여운이 가시지 않는다.

 

행복에 대해 다시 보고

고통에 대해 다시 볼 수 있어 좋았다.

 

공동체의 안정과 번영에 대해 다시 보고

개인의 고독에 대해 다시 볼 수 있어 좋았고.

 

편안하고 안락한 생활과

고통스럽지만 성취하는 삶에 대해 생각할 수 있어 강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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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가 그린 미래의 영국에서는,

 

아이를 국가가 인공수정으로 계획적으로 낳고 기른다. 수정 직후부터 각 계급에 따라 키, 외모, 학습태도, 어떤 사물에 대해 갖는 태도 등을 학습시킨다. 이를테면 계급이 낮은 계층의 태아에는 알코올을 노출시켜 지능이 떨어지도록 유도하는 것과 같은 행위가 자연스럽게 이뤄진다. 어떤 아이들에게는 책에 대한 부정적 경험을 심어주고, 어떤 아이들에게는 미래에 갖게될 직업에 대해 긍정적 경험을 심어준다. 모두가 모두를 소유하는 공동체가 중시되면서, 가족은 해체된지 오래이고, '엄마'라는 단어는 입에 담기 곤란한 욕이 되었다.

 

제조업에서 일하는 키 작은 나로서는 도무지 '인생'에 대해 생각해보거나, 음악을 듣고 책을 보며 지적사치를 부릴 짬조차 주어지지 않는 세상이다. 아니, 음악도 책도 없는 세상이다. 다같이 추는 춤과 촉감영화는 존재한다. 촉감영화는 왠지 포르노 느낌이랄까. 아이러니하게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두가, 아니 대부분이 행복하고 안분지족적 삶을 살고 있다.

 

지속적인 소비가 중요해서, 사람들은 헬리콥터로 이동하고, 에스컬레이터 공놀이를 하며, 계속 부속품이 필요한 생활을 한다. 자동화가 이뤄진 미국 포드 자동차 생산을 기념하여, 날짜를 포드 이전과 이후로 구분하여 계산한다. 이 곳에서 신은 포드님이다. 

 

이거 이래도 되는걸까라는 의구심, 계속 이렇게 살아도 될까라는 고민, 개인적인 고독에 대한 탐구, 자아성찰의 욕구, 예술혼 같은 것은 마음의 안정을 주는 알약 '소마'로 진정시킨다. '소마'는 국가에서 배급받는다. 나이듦에 대한 고민과 어떤 자각의 실마리를 지우기 위해 지속적으로 약물을 섭취한다. 평생 30대의 외모를 유지하다가 어느 순간 갑자기 요양원에서 죽어, 모두에게 유용한 화학성분인 '인'으로 돌아간다. 죽음은 전혀 심각한 소재가 아니다.

 

대부분이 행복과 안정을 최고의 가치로 삼으며 공동체 생활을 하고 있고, 자신의 계급(현재)에 만족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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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대에도 '야만인'은 있다. 보호구역에서 따로 가족을 이루며 살고 있는 부족사회가 등장한다. 그 곳의 인물 'John'이 어쩌다 '멋진 신세계'에 발을 들여놓게 되며 일은 벌어진다.

 

책의 전반부에서 유전자일때부터 고착화된 계급사회와 그 유지장치에 놀랐다면, 후반부에서는 존이 시도하는 작은 일탈과 그 파장의 우스꽝스러움과 보잘것 없음에 씁슬해진다. 행복하고 안정되었으며 빈틈없는 탄탄한 사회에 던지는 오래된 언어. 

 

John은 영어를 세익스피어로 배웠다. 신, 사랑, 어머니에 대한 옛 언어를 사용하는 그가 사회에서 겪는 일이 안쓰럽다. 후반부 그의 고통섞인 시도는 잘 이해가 안되는 면도 있었다. 그러면서도 그의 질문과 생각이 너무나 원초적이고 당연한 것이어서, 그게 유머스럽게 느껴지는 책 속 현실에 눈물이 난다.

 

책 속 현실이 지금의 현실과 딱히 다르다고는 할 수 없어 더 울림이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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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원하는 것은 무엇일까.

 

부동산 까페에서 언급되는 '민도 있고, 대단지 커뮤니티 갖춘 아파트'가 이 곳 '멋진 신세계'와 얼마나 다를까. 나 역시 그런 곳에 살 것을 추구하는데. 불안한 생활보다는 안정되고 싶은데. 아이들이 행복했으면 좋겠다고 기도하는데. 과연 가축화된 생활에서 오는 행복과 무슨 차이가 있으며, 그런 행복이라면 추구할 가치가 있을까. 최고에 오른 운동선수들이 행복해서 연습하는 것은 분명 아닐텐데. 그러나 고통스럽기만 한 것도 아니지 않을까. 당연히 그 사이 어딘가 합의점을 추구해야겠지만, 그게 과연 존재하긴 할까?

 

엄살 심한 첫째에게 편안한 삶이 정말 좋기만 한 것일까에 대해 얘기할 때 '멋진 신세계'를 인용하게 될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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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 11월 3일 덧붙임.

블로그 내 멋진 신세계 키워드 글 모음.

 

소마 만들어보기 https://thefinger.tistory.com/161

현재의 꽃만 장미처럼 피었다 https://thefinger.tistory.com/162

늙어서 그래요 https://thefinger.tistory.com/1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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