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제목: 왜냐면…
책은 누가 썼나: 안녕달 글·그림
언제 읽었나: 2018년 가을 읽고 쓴 것 같음. 호랭이7살 우동이5살. 책은 2017년생.
그래서:
실수해도 괜찮아
그런 것 쯤은 깨끗이 빨고 햇볕에 널어둘 수 있거든
‘왜냐면…’(안녕달 글·그림, 책읽는곰 펴냄)은 서점 베스트셀러코너에서 쉽게 찾을 수 있는 그림책이다. 2017년 4월 처음 출판된 이 책은 4개월 만에 4쇄를 찍을 정도로 인기를 누렸고, 2018년 상반기 전국 공공도서관에서 유아부문 대출 1위를 기록한 바 있다.
우리집 호랭이와 우동이는 말할 것도 없다. 이후 안녕달 작가의 시리즈 책을 여러권 봤고, 메리라는 이름의 강아지와 나름 친해졌다. 사실 아이들이 최고로 꼽는 작가의 책은 ‘할머니의 휴가’다. ‘왜냐면…’을 지난해 가을 한우리 독서지도사 수업을 잠깐 들으면서 과제로 써봤기에 이 책을 대표로 적어둔다...
작가 안녕달은 은은한 파스텔톤 색감으로 이야기한다. 표지의 글씨체는 둥글고, 그림에는 연필로 쓴 손 글씨 대화가 동반되어 편안한 느낌을 준다. 그림 옆에 끄적여둔 듯한 연필 손 글씨는 마치 작가가 우리 집에 와서 적어두고 간 것 같고, 지우개로 지울 수 있을 것처럼 생생하다. 우리집 호랭이와 우동이는 누가 낙서했다며 지우개로 지워보려했다. 안녕달의 다른 작품에서도 눈에 띄는 특징이다.
이야기는 유치원생 주인공 아이의 엄마가 선생님으로부터 종이봉투를 건네받으며 시작한다. 유치원 연두 빛 줄무늬벽 현관에서 건네받은 봉투 안에는 알 수 없는 초록색 물건이 들어있다. 후에 이는 화장실 실수를 한 아이의 바지로 밝혀진다.
엄마와 아이는 집으로 향한다. 매일 반복되는 고잉홈. 오늘은 소나기가 내린다.
엄마는 노란 우산을 펼쳐들고 장화 신은 아이와 발랄한 대화를 나눈다.
“엄마 비는 왜 내려요?”
“하늘에서 새들이 울어서 그래.”
“새들이 왜 울어요?”
이야기는 이렇게 흘러간다. 하원 길 일상 속에서 아이들이 흔히 하는 질문에, 범상치 않은 엄마의 답변이 검정글씨와 파랑글씨로 주거니 받거니 펼쳐진다.
현실과 상상의 동문서답.
이게 묘하게도 그림책 속 일상과 맞아떨어진다. 집 가는 길에 마주치는 물고기, 새, 효자손 든 할아버지, 동네 목욕탕, 떡볶이 가게, 옷가게, 고추 가게가 꼬리를 물며 엄마와 아이의 대화를 증명한다.
연결된 단서들은 봉투 안에 담겨있던 아이의 바지가 젖게 된 사건으로 통합된다. 아이는 사실 놀이터에서 놀다가 소변을 지렸다. 저런. 보통 이러면 화가나겠지만... 동시에 혹시 내가 너무 다그치면 이게 아이의 발달에 치명적 결함이 되진 않을까 걱정도 한다. 화내고 후회하는 경우가 대부분 이런식이지만....
다만 이 책에서 엄마와 아이가 나눈 대화는 아이의 화장실 실수를 전혀 다른 이야기에 붙여놓게 된다. 길에서 나눈 엉떵한 대화 덕에 그 사건은 더 이상 아이의 화장실 실수에 머무르지 않는다.
그것은 말이지, 네 잘못이 아니야. 바지를 고추 가게 옆에서 사왔고, 그래서 바지가 맵다고 울었기 때문이야. 물고기가 새들을 더럽다고 놀리고, 그래서 비가 내리는 것처럼 말이지.
사건은 엄마의 혹은 작가의 재치있는 상상으로 전혀 다른 이야기로 변신했다.
책은 바닷가 마을 아이의 집으로 돌아와서 끝을 맺는다.
넓은 바다가 보이는 방. 아이와 엄마는 대자로 뻗어 편안하게 낮잠을 자고 있다. 열린 방문 너머 마당에는 아까의 바지가 빨랫줄에 걸려 햇볕을 쬐고 있다. 소변이 묻은 바지를 빨았고, 또 맵다고 운 바지에게 물을 줬다.
하원길에 내린 소나기는 그쳤고 무지개가 떴다. 마당 너머는 너른 바다다. 그 까짓 실수 한여름에 지나가는 소나기 같은 것일 수 있고, 어떤 소나기 뒤에는 무지개가 뜬다. 바다가 아이의 부끄러운 실수를 포용해주고 괜찮다 말해주는 것 같다.
소변을 지리는 것은 누구나 한번쯤은 겪을 만한 유년기 실수이다. 겪어봐서 아는데 이는 큰 수치심을 안겨주는 무시무시한 경험이다. 굳이 화장실 실수가 아니더라도 사람은 누구나 실수한다. ‘왜냐면…’에서 보여주는 상상의 힘은 그러나 그 부끄러운 실수를 깨끗하게 빨고 햇볕에 널어, 무지개로 바꿔놓을 수 있다.
무지개가 속삭인다.
아니 바다가 속삭이는 건가. 아무튼 말이지.
괜찮아, 실수해도 괜찮아. 그건 네 잘못이 아니야. 왜냐면…
그리고 이야기는 끝없이 이어진다.
영화 빅 피쉬가 생각난다. 팀버튼 감독의 빅 피쉬.
자세한 내용은 기억이 가물가물하지만, 주인공 아버지의 허풍에 나도 신물이 날 즈음 아버지가 돌아가셨던 것 같다. 그 장례식에 등장한 아버지 이야기 속의 실제 사람들이 너무나 강렬하다.
아버지의 이야기는 사실 말이 안 됐다. 입만 열면 거짓말.
그러나 마지막 장면을 보면, 그게 사실을 전하는 아버지의 방식이란걸 알게된다. 팀버튼은 바보야 이렇게 얘기한거잖아 그것도 몰랐냐 하며 마지막 장면을 편집했을까. 누군가가 상처받지 않길 바라는 애정듬뿍 방식. 이 책에 대한 감상평을 끄적이다보니, 내가 엄마로서 사실을 전하는 방식을 조금 유연하게 하는 것에 죄책감이 덜어진다.
그래 나만 그런게 아니지..
2019년 1월 나이 마흔이 지난 어느 토요일 다듬고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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