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부분의 게시판이 그렇듯이, 정보보단 지-극-히- 개인적인 감상 넘치는 글입니다.)
국립중앙박물관 3층 <그리스가 로마에게, 로마가 그리스에게> 전시관에 다녀왔다.
공간은 신화의 세계, 인간의 세상, 그림자의 제국 등 3개의 테마로 구분되어 각각 그리스 로마신이 새겨진 물품이나 조각, 사람들이 사용했거나 유명인물 조각상, 장례문화 관련 유물을 전시되고 있었다. 그리스와 로마는 같은 신화를 공유한다. 사고하는 밑바탕이 유사하다. 같은 신들에게 이름만 다르게 붙였다. 한국 중국 일본의 문자가 같은 한자를 기반으로 하지만, 소리는 다 다른 것처럼. 아마 그리스, 로마 두 지역 사람들은 서로 닮았다는 말을 좋아하지 않겠지만. 그 둘은 분명 많은 부분이 연결돼 있다. 그리고 고대는 현재와 연결돼 있다. 우리 깊은 곳 어딘가에 존재하는 고대 사람들. 그들을 짐작해 볼 수 있는 전시였다. 나는 이번 전시를 3가지 테마로 나눠 기억할 것 같다;
술, 몸, 그리고 신.
* 술 마시는 심포지엄
심포지엄이라는 단어가 눈에 들어왔다. 어느 유물 묶음에 붙어있던 이름표가 '심포시온과 심포지엄'이었다. 여러 사람들이 모여서 연구한 바를 발표하는 요즘의 학술 심포지엄이 아니었다. 정책 입안 전에 분위기 조성 차원에서 실시되는 토론회도 아니었다. '심포시온'은 '함께 마시다'라는 뜻으로, 술 마시며 떠드는 연회를 지칭했다.
심포지온에 참석한 남성들은 디오니소스를 경외하며 왁자지껄한 연회를 시작했다고 한다. 디오니소스는 술과 광기의 신. 질서의 반대편이다. 무질서가 리드하는 시공간에서 의견을 교환한다. 바쿠스가 아니라 디오니소스라 불리는 것을 보니 그리스 문화인가보다. 설명 패널 아래 쓰여 있던 '디오니소스 신이 심포지온의 좌장으로서 적당한 음주에 대해 말하다' 인용문이 인상적이었다.
나 디오니소스는 분별 있는 자들에게 세 크라테르의 술만 준비한다. 첫 크라테르의 술은 건강을 위해, 두 번째는 사랑과 쾌락을, 세 번째는 수면을 위한 것이다. 세 크라테르를 모두 비우면, 현명한 자들은 집으로 돌아간다. 네 번째로 가면 내가 어찌할 수 없고, 품행이 나빠진다. 다섯 번째를 마시면 고함이, 여섯 번째는 무례와 모욕이 나온다. 일곱 번째는 싸움이 오간다. 여덟 번째는 가구를 부순다. 아홉 번째는 구토, 열 번째는 광기와 인사불성이다.
에우불로스의 희극 중 한 부분 / 디오니소스 신이 심포시온의 좌장으로서 적당한 음주에 대해 말하다.
관련 유물은 크라테르라고 불리는 술동이와 여러 가지 정교한 그림이나 모양이 장식된 술잔들이었다. 전시장 내 여러 인사들이 이번 전시 유물 같은데 한 가지를 선택해 스토리텔링해주는 코너가 있었는데. 거기에 이 술잔에 대한 얘기가 있었다. 아주대학교 문화콘텐츠학과 소속이며 와인을 아주 좋아한다던 누군가의 영상이었다 (그녀 이름이 기억나지 않는다.) 그녀의 스토리텔링에 따르면 심포지온에 참여한 사람들은 긴 소파에 한쪽 팔을 걸치고 반쯤 누워 술을 마셨단다. 또 바닥에 어느 정도 술 찌꺼기가 묻어 지저분해야 좋다고 느꼈고, 술잔을 던지는 놀이도 있었다고 한다. 작고 납작한 냄비 형상의 잔, 카일릭스는 이 던지기 놀이를 위한 것이었단다. 허참.
대부분의 그리스 로마시대 풍습이 그러했던 것처럼 이런 자리는 남자 시민에게만 허용됐다. 여자나 노예 등 시민이 아닌 사람들은 당연히 참석할 수 없었다. 참석하려면 엔터테인먼트의 한 요소로서 자리를 장식하는 정도. 나와 동행은 '역시 부리는 사람이 있어야 누릴 수 있는 문화'라며 혀를 찼다. 술잔을 던지면 포도주가 옷에도 묻을테고, 물들기도 하고, 바닥은 끈적끈적했을 텐데. 유쾌하고 찬란하기까지 한 문화이건만, 집안의 끝없는 청소와 빨래를 하는 입장에서 이 심포지온을 유쾌하게만 보기가 불편했다.
어쨌든 술잔은 세심하게 장식됐고, 예뻤다. 술을 마시는 행위는 언제나 물음표로 남아있다. 술을 마시고 떠들었다는 것은 더더욱 물음표다. 나는 술 마시는게 일단 신체적으로 힘들다. 술을 마시면 진심을 얘기한다는 말도 썩 믿음이 가지 않는다. 오히려 과장하게 되는 것 같다. 취중진담보다는 취중과담. 목소리는 술을 마셔야 커지긴 한다. 내 목소리를 증폭시켜 토론을 하려면 확실히 술을 마셔야 했던 걸까. 술을 마시면 감정적으로도 좀 더 확장되고. 나의 경계가 느슨해져서, 개인보다는 우리, 무리에 취하는 것 같기도 하다. 그리고 부끄러움을 덜어낼 수 있다. 좀 더 원시수프의 상태에 가까워지는 것 같다.
술을 마신다는 것은
그런 원시상태로의 회귀를 뜻하는 것일까.
술 깬 후 부끄러움이 두 배로 몰려오더라도.
* 고대의 몸
몸에 대한 인식도 물음표다. 그리스 로마 시대에는 술의 도움 없이도 인간 본연의 몸을 드러내는 것에 대해 관대했던 것 같다. 망구 내 느낌이다. 전시장을 들어서면서 늘어서 있던 여러 동상들을 보면 맨 몸이 거의 다 드러나 있지 않던가. 신화 속 인물을 표현한 예술품들은 이상적인 신체비율에 맞춰 거의 나체로 만들어진 것 같은 느낌이다. 옷을 입어도 시스루 패션 같다. 술이 담기는 술잔, 영혼이 담기는 인간의 몸. 유교 문화권에서 자란 나에게 이런 문화는 충격적이다 못해 민망하다. 박물관에서 볼 수는 있지만 실생활에서 향유하기에는 불편하다.
몸뿐 아니라 인간의 감정에도 솔직하고 관대했던 것 같다. 그리스 비극을 보면 감정이 솔직하다 못해, 심하게 과장되어 있어 보인다. 술에 취한 것처럼. 아빠가 딸을 죽이고, 엄마가 딸의 복수를 위해 남편을 죽이고, 아들이 엄마를 죽이고 등등. 심지어 신들도 폭풍 같은 감정에 어쩔 줄 모르고 실수를 저지른다. 바람피우는 제우스나, 고작 들판에서 노니는 판한테 분노하는 아폴론처럼. 신들도 인간처럼 감정이 날뛴다. 우리나라 고대에도 이런 문화가 있었을까. 유교 문화권에서 흔적이 싹 사라지긴 했지만, 혹시나 하는 생각이 든다. 확인할 수 있는 얘기는 아니다.
아름다운 신체에 관심이 많았던 고대 그리스 만큼이나, 로마 시대도 인간 몸과 감정에 충실했다. 많은 동상과 조각이 만들어져 곳곳을 장식했다고 한다. 트로이 목마 속에 그리스 군사가 숨어있다고 경고한 예언자가 뱀에 물려 죽임을 당하는 얼굴상을 보면서는 그 관심이 지나친 것 아닌가 싶었다. 도대체 이 두상을 왜 집에 두고 싶어 할까. 저 괴로워하는 얼굴을, 그것도 진실 때문에 괴로워하는 얼굴을. 희로애락 선악미추 모두 인간을 이루고 있음을 되새김질했던 걸까. 로마사람들이 SNS를 했다면, 자랑할 거리나 예쁘고 멋진 것 외에 지금 우리 눈에 괴롭고 감추고 싶은 것도 올렸을까.
카이사르 흉상을 보면서 가까운 어르신을 보고 있는 착각이 들었다. 입가가 특히 닮았다고 생각했다. 주름살 때문인가. 여자를 표현한 귀부인의 동상 입가에도 주름살이 살아있었다. 당시엔 주름을 성취의 흔적이라고 생각했단다. 다른 감정들처럼 감추지 않았다. 지금은 보톡스나 각종 시술로 모두가 지우고 싶어하는 주름살인데. 얼굴에 늘어가는 주름살을 보며, 이것이 성취의 흔적이 될 수 있는가 생각해 본다. 그런데 무슨 성취? <명상록>의 마르쿠스 에우렐리우스 황제의 흉상은 영화 <ONCE>의 남자배우랑 닮았었다. 살짝 멍한 표정. 방랑자 혹은 철학가라는 제목이 붙은 두상도 참 요즘 사람 같았다.
지금 살아있는 얼굴들이었다.
로마는 전쟁에서 얻은 그리스의 예술 작품을 로마로 가져가 집 안이나 공공장소에 두어 로마가 강하다는 것을 보여 주려 했습니다. 갈수록 그리스 작품을 원하는 사람이 많아지면서 로마 사람들은 그리스 작품을 똑같이 따라 만들기 시작했습니다. 따라 만드는 것은 로마가 그리스 문화를 즐기는 방법이었습니다.
로마는 사람의 얼굴을 따라 만든 초상에 관심이 많았습니다. 그리스 미술과는 다르게 겉모습을 최대한 실제와 비슷하게 만들려고 했습니다. 이런 특징은 로마 미술의 강점이 되었습니다. 황제와 존경하는 사람의 초상을 만들었으며, 초상에 얼굴의 표정이나 주름, 옷이나 머리 모양 등을 자세하게 담았습니다.
전시회 팜플렛 중에서
* 신과 함께 쓸과 함께
전시를 통해 알게 된 사실 : 조각상이 주름이 많이 진 로마 전통의상 토가를 입고 있으면 시민계급의 사람이고, 망토는 군인, 나체는 초월적 존재를 뜻했다고 한다. 몸에 유난히 관심이 많다고 생각했는데, 그 많은 나체 형상들은 대부분 신을 나타낸 것이었다. 아프로디테(베누스), 제우스(주피터) 등. 혹시 그래서 몸들이 유난히도 예뻤던 걸까. 아무나 벗을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이번 전시에서 제일 충격적이었던 것 중 하나 : 그 많은 조각상들은 본디 채색된 것이었다.
처음부터 클래식하게 하얀 대리석으로 장식되었던 것이 아니다. 유행의 첨단을 달리도록 알록달록하게 색칠되어 있었다. 관련 내용이 영상으로 상영되고 있었는데, 뜨아. 그 모습이 흡사 점집에 있는 불상이나 삼신할머니상을 떠올렸다. 사람들의 시선을 확 잡아끄는. 나의 학생시절 언젠가 남산 도깨비문화원에 관람하러 들어갔다가 당황했던 기억이 떠오른다. 관람하는 곳이 아니라 점집이었다. 아직 있나...? 그리스 로마 신화 속 신들이 우리 주변의 측신, 조왕신, 영등할망, 도깨비 등의 모습으로 친근하고도 촌스럽게 다가왔다. 여러 신과 함께 사는 것은 엄청나게 고귀한 경험이 아닐지도 모른다. 그냥 그렇게 사는 것일지도. 유일신과는 차원이 다르네.
쓸과 함께 : 엄지작가라는 다소 엉성한 모임이 시작된 후, 그 모임의 목적에 부합하지 않은 자리였다. 시간 되는 사람만 나왔다. 쓸과 나. 새로웠다. 그래서 더 적어둔다. 주말 오전 잠깐의 번개 같은 만남. 그 느낌이 증발되기 전에. 비가 오락가락하고 조금은 시원했던 여름날. 같이 걷던 국립중앙박물관 대나무길과 오랜만에 과호흡 올 정도로 떠들었던 기억을. 많이 떠들었는데 담백함만 남아있다. 나이 들어 맺는 관계는 담백할 수 있어서 더 좋다. 그리스 로마 유물도 당대에 만났다면 실생활이었겠지. 지금 색이 바랜 후 만나니 관조할 수 있어서 참 좋다. 고전의 맛은 관조의 맛일까. 살아남은 것들에 대한 관조. 고대가 현대에게, 현대가 고대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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