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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기일기/늘푸른지

가평, 얼음 아래 세상으로부터

by 은지용 2011. 4. 27.

 

 

<2011. 2. 경기 가평>

 

벌써 며칠 째 한강이 얼어붙어있는지 모른다. 이런 날씨엔 따뜻한 구들장 아래에서 뒹굴기만 해도 좋을 법 한데, 굳이 밖으로, 밖으로 나가는 사람들이 있다. 가평은 이런 ‘센’ 사람들을 위한 곳 중 하나다. 하긴, 얼음을 깨고 하는 송어낚시나, 눈 내린 잣나무 숲길 산책, 차디찬 캠핑장 공기를 녹이는 모닥불 체험은 여름에 할 수 없는 것들이다. 스키 말고도 추위를 즐기는 방법은 많다.

 


@ 얼음 아래 세상으로부터


한 때 북한강으로 유유히 흐르던 냇물이 꽝꽝 얼어붙었다. 단단해진 물방울은 그 위에 사람들이 가득 올라가도 흩어질 생각조차 하지 않는다. 새로 개통된 신청평역 앞 냇가 이야기다.

1월 내내 송어잡이가 한창이던 이 곳에는 정말 많은 사람들이 얼음에 난 작은 구멍을 바라보며 강태공이 됐더랬다.

 

송어낚시는 간단하다:

1 두껍고 단단한 얼음에 작은 구멍을 낸다
2 가짜 밑밥을 얼음아래로 올렸다 내렸다 하며 송어를 꾀어낸다
3 기다린다
4 기다린다
5 기다린다…

 


낚시터에서 서성이길 한 시간 가량 했지만, ‘심봤다’를 외치는 사람을 만나기는 어려웠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자리를 뜨지 못한다.
하염없이 얼음 아래 세상으로부터의 소식을 기다리는 이들의 얼굴에는 ‘혹시나’하는 기대가 어려있다.

 


얼음 밑으로 통하는 작은 창 옆에 붙박이가 된 채, 찬바람 아랑곳 없이 일말의 가능성에 모든 것을 거는 모습이 조금 낭만적인 것도 같다. 송어는 전리품으로 한 사람당 3마리까지 낚시터 밖으로 갖고 나갈 수도 있어, 기다림에 대한 보상은 두둑한 편이다.

 


나는 그러나 낭만을 저버렸다.
한 시간 서성이고 나선 그만, 낚시터 옆 포장마차에 들어가 송어회를 주문하는 만행을 저질렀다. 변명을 하자면, 단돈 2만원이면 미리 잡아둔 큼지막한 송어를 눈 앞에서 잡아주는데 수많은 중생이 그 유혹에 넘어갈 수 밖에 없을 것이라고 하겠다.

 

조금 쉽게 모습을 드러낸 송어는 각종 야채와 초장, 콩가루가 버무려진 대접과 함께 나왔다.
송어회는 그냥 먹어도 좋지만, 새콤달콤 양념된 야채에 콩가루를 살짝 찍어 먹어도 좋다. 포장마차 주인장의 추천은 양념야채에 송어를 슥슥 비벼먹는 것으로, 이것도 매우 좋다.

 

얼음 밑 세상의 맛은 의외로 달콤했다.
기름이 결결이 밴 주홍빛 송어는 맛이 연어와 비슷한 듯도 했다.
몇 시간이고 기다려 직접 잡았다면 더 맛있었을까.


 

 

 


@ 한겨울에 외박하는 사람들

 


얼음 위에서 몇 시간이고 송어를 기다리는 사람들보다 더 낭만적이거나 혹은 독한 사람들도 있다.
캠핑하는 사람들이다!

 

이 날은 낮 최고기온도 영도를 넘어서지 않았다.
모든 것이 얼어붙은 날씨건만, 캠핑의 명소, 가평 자라섬으로 모여드는 캠핑족을 막지는 못하는 모양이다.
이 날 캠핑장에도 텐트가 여럿 세워져 차갑고 명징한 겨울공기를 즐기는 이들이 꽤 있었다.

 

물론 캠핑장에는 따뜻한 화장실과 샤워장, 세탁실 등 시설이 잘 갖춰져 있긴 하다.
텐트 뿐 아니라 캠핑카도 잘 갖춰져있다. 하지만 역시 한겨울에 건물 밖에서 자는 것은 춥지 않을까 싶은데, 캠핑 마니아들은 그저 해보지 않았으면 말을 하지 말라고 입을 모은다.


밖에서 해먹는 밥, 처음 만나는 옆 텐트 사람들과 저녁 모닥불 앞에서 주거니 받거니 하는 이야기는 무조건 해봐야 아는 캠핑의 묘미라나.

하긴 서울로 돌아가기 전 들른 캠핑장에서 본 장작더미와 그 모닥불에 모여 옹기종기 이야기하는 사람들의 모습에 유난히 온기가 돌긴 했다.

 

 


@ 잣나무 숲 멈춘 숨

 


온기 도는 풍경으로 치면, 난롯가에서 햇빛 쬐며 마시는 따뜻하고 진한 대추차 한 잔도 빠지지 않는다.
그것도 운치있는 한옥에서라면 더 좋다.

 

이 날 송어낚시 직후 잣나무 숲 찾아가던 길 들른 ‘취옹예술관’의 찻집에서 그렇게 몸을 녹였는데, 겨울 가평을 찾는 이들에게 적극 추천하고 싶은 바이다.

가평에는 개성 있는 크고 작은 찻집과 미술관이 부지기수.
길 가다 마음 끌리는 곳으로 그저 들어가면 된다.

 

해 지기 전 잣나무 숲에 도착했다.
잣은 산이 많은 가평 특산물 중 하나로, 축령산 자락 행현리 일대에는 잣나무 숲만큼이나 잣 가공장과 잣 두부 전골집도 흔하다.

잣나무 숲길도 흔해 2~4시간짜리 다양한 트레킹 코스가 있으며, 가평군에서도 산책길을 개발 중이다.


서울시 학생 교육원 뒷산을 조금 걷다가 되돌아오는 1시간이 안되는 산책코스를 돌기로 했다.
서쪽 지평선으로 눕는 해에 마음이 급해졌기 때문이다.

 


시간이 길지 않아도 좋은 것은 좋은 법.

 


숲에 발을 들여놓자 얇은 잣나무 가지 가지에 쌓였던 눈이 바람에 흩날린다.


늦은 오후의 주황색 햇빛을 받아 반짝이는 눈가루는 조용한 숲 속에 흩뿌려지는 금가루 같았고, 숲 속 정령이 움직이며 떨구는 작은 빛 알갱이 같기도 했다.


그 모습에 동행과 나누던 이야기도, 발걸음도 멈췄다.
그 순간,


추위 때문인지 공기는 청량했고 인적이 없었으며, 계곡 물도 얼어붙어 조용한 숲 속이 한꺼번에 마음을 파고 들어왔다.
멀리서 새가 우는 듯도 했다.


카메라에 담지 못한 그 때의 그 얼어붙은 침묵 속 숲 속은,
잣나무 침엽수림 향기와 함께 마음에만 새겨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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